쓰레기로 작품 만드는 이유? 무관심한 세상을 향한 경종

정인덕 기자 2024. 10. 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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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예술 시대 <6> 기후위기와 예술

- 환경문제 해결 앞장선 사람들
- 해안가 등 청소하고 창작활동
- 사회 경각심 일깨우는데 일조

- 부산문화재단 전시회 등 사업
- 다양한 민간단체도 의기투합
- 업사이클링 제품화 노력까지

예술이 기후·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동떨어진 요소들이라 접점이 없을 것만 같았다. 부산문화재단 조형수 생활문화본부 문화공유팀장은 이 질문을 듣고 난 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달 동구문화플랫폼에서 열린 ‘탄소 중립 아트展’을 찾은 한 관람객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문화재단 제공


“환경과 예술이 결합한 사례를 살펴보면 쓰레기를 줍고, 이를 작품화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심미적인 작품을 제작하다 보면 환경호르몬이 배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친화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통해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던 시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고, 더 많은 이들에게 환경문제를 알릴 수도 있어요. 인식 개선 등 간접적인 형태로 환경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봅니다.” 답변을 듣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예술이 환경으로 확장한다. 특히 부산에선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비치코밍’ 행사가 활발하다. 비치코밍은 해변(Beach)을 빗질(Combing)하듯 해양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모은 쓰레기를 재활용해 예술작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달 부산문화재단이 기획해 진행한 ‘2024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 행사에 함께 동행해봤다.

▮탄소제로 비치코밍

지난달 가덕도에서 열린‘2024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 부산문화재단 제공


지난달 27일 오전 8시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2번 출구 앞은 남색 반팔 상의를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부산문화재단의 비치코밍 행사 참가자들로 일본 나가사키에서 온 일본 대학생 20여 명, 부산지역 일어일문학과 재학생 10여 명을 포함해 장애·비장애를 막론한 시민, 예술가 등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자발적인 신청을 받은 후 심사를 거쳐 선발된 인원이다. 45인승 대형 관광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비치코밍 장소인 부산 가덕도로 향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버스 안은 행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저마다 짝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병수 부산문화재단 문화공유팀 차장은 행사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 행사는 최대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가용 대신 모든 인원이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행사에 사용하는 현수막도 폐종이박스를 활용해 직접 직원들이 꾸몄습니다. 다소 힘들 수 있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버스는 1시간가량 달려 가덕도에 도착했다. 각자 푸른색 망과 집게, 조끼 등을 하나씩 질서정연하게 받아 들었다. 경로는 외양포 마을에서 외양포 항까지였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거주민을 강제 이주시켰던 장소다. 일본군이 쓰던 포진지와 화장실을 살펴보고 설명도 함께 들으며 쓰레기를 주웠다. 참여한 시각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용할 만한 쓰레기를 수집했다.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플로깅(plogging)은 두 시간가량 이뤄졌는데, 가로 세로 2m 넘는 부직포 3개에 가득 담길 정도로 모였다.

플로깅 뒤에는 한·일 교류 환경 프로그램이 3시간 정도 열려 장애예술인 ‘파이프 라인’ 팀의 밴드 공연과 기후위기 OX 퀴즈 등이 진행됐다.

페트병 뚜껑을 활용해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공정 후의 깨진 병 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드는 등 업사이클링 체험활동도 이어졌다.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은 “항상 플로깅을 하다 보면 줍는 것보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생활로 돌아가서도 아껴 쓰고, 최대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일본 대학생들과 함께 교류하며 역사적인 장소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장애·비장애인이 어울려 함께 환경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던 행사”라고 평가했다.

다음날 부산문화재단은 동구 문화플랫폼에서 전시회 ‘예술로 그린 미래’를 개최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주제로 한 ‘탄소 중립 아트展’ 등이 열렸는데, 전날 플로깅 참여자들이 색칠한 나무를 퍼즐처럼 이어 붙여 지구를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부산에서 활동하는 시각 예술가들이 플로깅을 통해 수거한 쓰레기를 활용해 만든 회화나 전시 등 작품을 걸었다.

한 방문객은 “처음엔 전시 작품을 그저 감상하듯 봤는데, 활용한 재료가 쓰레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신기하기도 했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산문화재단은 2020년 텃밭 가꾸기 행사인 ‘이심전심’으로 환경과 문화를 결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비치코밍 형태로 발전돼 2021년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3, 4회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정윤 부산문화재단 생활문화본부장은 “관련 사업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경이 회복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비치코밍도 부산을 시작으로 점차 해외로까지 확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민간단체도 ‘예술과 환경의 결합’

이미지=아이클릭아트


부산문화재단 이외의 민간단체에서도 예술을 활용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최근 부산에서 오랜 기간 친환경 자원순환 문화예술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김정주 가치아트(Gachi ART)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2013년 지역 예술가 10여 명과 의기투합해 예술인 공동체인 가치예술협동조합을 결성했다. 가치아트는 8년째 사무실이 자리한 강서구 자원순환협력센터와 협력해 성인과 아이들에게 ‘새활용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있다. 재활용(리사이클링)은 쓰레기를 활용해 기능이 없는 작품 등을 만드는 것이라면 새활용(업사이클링)은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쓰레기를 기능이 있는 쓰레받기로 만들면 새활용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원활한 분리수거를 위해 ▷도자 ▷폐플라스틱 ▷폐목 ▷폐섬유 등 재료별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틀에 짜여진 형태의 일반 재활용 교실과 달리 재료를 흩어놓고 참여자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김 대표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새활용 제품을 만들려면 힘든 점이 많다. 지금은 재활용에 가깝지만 새활용 제품을 만드는 것까지를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며 “만족도가 높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부산에 있는 80여 개의 포구에서 플로깅을 하는 ‘사랑 海 부산’과 환경예술 전시인 ‘국제리사이클링 아트전’ 등을 오랜 기간 운영하고 있다. 그가 환경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대학에서 응용미술과 섬유미술을 전공했다. 졸업 후 화학약품으로 섬유를 가공하는 작업을 하다 우연히 딜레마에 빠졌다. 독성이 있는 재료를 사용해 전시를 준비하는 것에 그는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가치예술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자연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물질로 전시를 준비하는 게 과연 예술일까 싶었다.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활동이 뭘까 고민했다.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며 “지금까지 부산에 없는 것을 해보고자 25년 동안 노력한 것 같다. ‘미술가만의 잔치’가 아닌 시민과 함께 소통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가치아트’를 추구해 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을 통해 ‘같이의 가치’를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단체에 대한 지원에 관련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김 대표는 “문화단체가 지자체의 지원을 받게 되면 분명 동력이 생긴다. 다만 보고 등의 이유로 간섭 아닌 간섭이 생기거나 행정상 분류가 명확치 않아 힘든 상황을 겪기도 한다”며 “작은 걸음이지만 모이면 큰 변화가 만들어진다. 어떤 분야건 문화예술이 접목하면 풍요로워진다. 지자체에서 기후위기 해결에 예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확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 국제신문, 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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