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가로수 심어 보행자 안전 책임진다?
박성훈 기자 2024. 9. 20. 15:51
지난 7월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의 차량 역주행 사고로 9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은 보행로에 서있다 갑자기 돌진한 차량에 속수무책으로 사고를 당했는데요.
서울시가 보행로로 돌진하는 차량에 의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겠다며 가로수 식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보행자가 많은 곳에 굵은 가로수를 심어 갑자기 돌진하는 차량을 막겠다는 겁니다.
서울 시내 8곳에서 우선 시행하고, 앞으로 3년에 걸쳐 총 2000그루를 심는다는 계획입니다.
가로수로 시민들의 보행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서울시의 주장, JTBC 팩트체크팀이 따져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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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가로수가 교통섬 보행자 안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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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나 교통섬같이 사람들이 멈춰서서 기다리는 장소에 가로수를 확대 식재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감을 낮추고 보행 안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월10일, 서울시 보도자료)
“횡단보도나 교통섬같이 사람들이 멈춰서서 기다리는 장소에 가로수를 확대 식재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감을 낮추고 보행 안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9월10일, 서울시 보도자료)
서울시는 보행자가 밀집하는 교통섬을 사고 취약 지역으로 판단했습니다.
교통섬은 넓은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보행자 안전을 위해 완충지대로 만들어 놓은 공간입니다.
이 곳으로 차량이 갑자기 돌진하면 보행자들이 피할 곳도 없이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고 본 겁니다.
따라서 올해 우선적으로 가로수를 심을 8곳 모두 교차로 내 교통섬입니다.
돌진하는 차량을 가로수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교통섬의 사고 위험성에 대해 확인해봤습니다.
서울시가 시범장소로 지정한 8곳의 교통사고 현황을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으로 전수 조사해 봤습니다.
2021~2023년까지 3년 간 서울시 종로구 서대문역사거리의 차량끼리 충돌한 사고는 21건, 차량이 사람을 친 사고는 5건이 있었습니다.
차량끼리 충돌한 사고는 대부분 교차로 한복판에서 발생했고, 보행자가 다친 경우 중 4건은 교차로 우회전 차선에서, 1건은 횡단보도 내에서 일어났습니다.
교통섬으로 차량이 돌진하거나 올라와 발생한 사고는 없었습니다.
광화문 광장과 연결된 세종대로 사거리 역시 차량끼리 사고 4건, 보행자 사고는 3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가운데 1건이 가로수 식재 예정 지역과 유사해 보입니다.
확인결과 이 사고 역시 보행섬에서가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발생한 사고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8월 28일 오전 10시경 길을 건너던 66세 여성이 승용차에 부딪혀 다친 겁니다.
이 가운데 1건이 가로수 식재 예정 지역과 유사해 보입니다.
확인결과 이 사고 역시 보행섬에서가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발생한 사고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8월 28일 오전 10시경 길을 건너던 66세 여성이 승용차에 부딪혀 다친 겁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사거리, 장안동사거리, 구로구 거리공원오거리 등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8곳의 교차로에서 총 58건(차량 사고 47건, 보행자 사고 11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교통섬 사고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8곳의 교차로에서 총 58건(차량 사고 47건, 보행자 사고 11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교통섬 사고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TAAS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19만 8296건, 이중 '보도 통행 중' 발생 사고 건수는 2632건으로 1.3%였습니다.
보행자 사고 중 가장 많은 것은 '횡단 중' 사고로 1만 3081건이었고 '차도통행중' 사고도 4507건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교통섬을 보행자 안전이 위협받는 곳으로 볼 순 없습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국토교통부가 지난 2020년 8월 발표한 '교통섬 개선 지침'에 따르면 “가로수로 인해 운전자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경우 제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통섬 내 가로수가 운전자 시야를 방해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대신 사고 방지를 위해 도로에 정지 표시를 하거나 방호 울타리 등을 보강하도록 권고했습니다.
또 국토부 측은 JTBC에 “교통섬에 가로수를 심는 건 차가 그 위로 올라가서 보행자를 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인데 (보행섬 관련 사고는) 우회전 차량 사고가 더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교통섬에 서있는 보행자의 안전을 가로수가 지킨다는 건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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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국토부 측은 JTBC에 “교통섬에 가로수를 심는 건 차가 그 위로 올라가서 보행자를 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인데 (보행섬 관련 사고는) 우회전 차량 사고가 더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교통섬에 서있는 보행자의 안전을 가로수가 지킨다는 건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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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가로수 지름이 두꺼우면 운전자와 보행자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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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며 "해외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나무의 직경이 클수록 차량 충돌에 견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며, 인공구조물 등에 비해 나무의 탄력성으로 충격을 흡수함으로써 보행자는 물론 운전자도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가 제시한 자료는 '차량-나무 충돌 사고 요인에 대한 심층 연구'(Factors related to severe single-vehicle tree crashes: In-depth crash study)라는 2022년 체코 교통연구센터의 논문입니다.
논문의 원문을 찾아 전체 내용을 전문가들과 검토했습니다.
체코에선 차량이 나무와 충돌하는 사례가 흔한 교통사고 유형이라면서, 차량의 고정물 충돌 사고로 사망자 7명 중 1명이 나무 충돌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갑성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논문에 대해 “(논문에선) 차량의 가로수 충돌에 관해 분석한 논문으로 차량 속도와 가로수의 너비 등이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점은 충돌 사고가 잦은 곳에서 차량의 속도를 제한해 사고를 예방하거나 사고의 빈도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가로수와 부딪혔을 때 운전자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이 크고, 나무의 크기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2000여 건의 가로수 충돌 사례를 분석한 결과 나무 직경 30cm일 때 15%였던 운전자의 치명적 부상 가능성이 60cm에서 26%, 110cm에서 70%로 증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무 충돌 사고에서 운전자의 생존성을 높이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전 한국도시설계학회장인 이제선 연대 교수는 “논문 11페이지에는 가로수 말고 가드레일을 써야 한다고 나온다. 또 나무를 심을 때 차량의 속도에 맞춰서 적당한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는 속도가 빠른 도로에서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 종을 바꿔 심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체코 농촌 지역에서 사람들이 운전하다 나무에 박는 사고가 잦은 모양인데 서울시가 자료를 거꾸로 이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시가 이 논문을 근거로 가로수 직경이 커질수록 보행자를 더 잘 보호한다고 말한 건 연구 내용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부정확한 근거 제시 사례가 또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보도자료에서 “다양한 교통사고 사례에서 보면 실제로 가로수에 충돌한 트럭이 중상자 없이 멈춰 선 사례가 있음을 볼 때 가로수가 가드레일 등의 교통시설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팩트체크팀이 구체적 사례에 대해 문의하자 '가로수 충돌 교통사고' 키워드 검색을 통한 인터넷 동영상 사례'라며 에둘러 말했습니다.
결국 두꺼운 가로수가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를 보호한다는 건 잘못된 논문 해석 등 근거가 부족해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료조사·취재지원 이채리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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