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합천의 산자락은 생각보다 고요하다. 호수를 따라 이어진 길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관광지 특유의 분주함 대신 차분한 공기가 먼저 다가온다.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바람 소리와 물빛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곳은, 도착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노레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숲 위로 천천히 올라가는 레일 끝에서, 누구나 한 번쯤 화면 속에서 봤을 익숙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가 아닌 세트장임에도 단번에 알아보게 되는 풍경이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이렇게 일상에서 갑자기 드라마 속 장면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공간이다.
모노레일 위에서 시작되는 여행
이곳의 여행은 걷는 길이 아니라 타는 길에서 시작된다. 입구에서 모노레일에 오르면 합천호가 발아래로 펼쳐지고, 산자락을 따라 난 레일이 시선을 이끈다. 약 7분간 이어지는 이동은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여행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춰준다.

천천히 올라갈수록 풍경은 넓어지고, 마음도 함께 느려진다. 이 짧은 시간이 이후에 펼쳐질 시간 여행을 위한 준비 과정처럼 느껴진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청와대 세트장
모노레일이 도착하는 곳에는 청와대 세트장이 자리한다. 실제 청와대의 약 68% 크기로 축소해 지어진 이 건물은, 멀리서 보면 세트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청기와 지붕과 하얀 외벽은 실제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내부 역시 대통령 집무실과 회의실까지 재현돼 있어, 단순한 외관 촬영용 공간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시간보다, 잠시 멈춰 서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간을 걷는 길
합천 영상테마파크의 중심에는 시대물 거리가 있다. 일제강점기 골목에서 출발해 개화기 양옥, 1970~80년대 거리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낡은 간판과 오래된 담벼락, 고풍스러운 한옥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22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는 설명은 직접 걸어보면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옮겨도 이미 하나의 장면이 완성돼 있다.

세트장을 지나 정원으로 이어지는 풍경
촬영 세트를 지나면 분위기는 다시 한 번 바뀐다. 약 15만㎡ 규모의 정원테마파크가 펼쳐지며, 분재온실과 야외 정원, 목재문화체험장이 차례로 이어진다. 축소된 명산과 기암괴석 조형물 사이로 소나무와 철쭉이 어우러진다.

특히 겨울에는 잎을 내려놓은 나무 덕분에 풍경이 더 단순해지고, 공간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조용히 걷기 좋은 계절이다.


입고, 만들고, 머무는 체험의 재미
이곳의 즐거움은 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의상체험실에서는 개화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복장을 대여해 세트장 안을 직접 걸어볼 수 있다. 공간에 대한 몰입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목재문화체험장에서 만들기 체험을 즐기기 좋고,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한옥체험관 ‘우비정’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5,000원으로 누리는 한 시대의 풍경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0원이다. 모노레일을 더해도 부담은 크지 않다. 운영 시간과 휴무일만 미리 확인하면, 가족 여행이나 드라마 팬들의 나들이로 충분히 만족스럽다.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화려함보다 시간의 밀도가 기억에 남는 장소다. 모노레일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과 세트장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발걸음이 하나의 흐름으로 남는다. 하루쯤은 화면 밖으로 나와, 직접 장면 속을 걷고 싶다면 이곳만큼 잘 어울리는 여행지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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