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반도체 업종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로 6개월 연장, 문제 없다?

※ 뉴스타파와 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KINN)가 21대 대선 팩트체크를 위해 뭉쳤습니다.
건강한 공론장을 위해 거짓이 사실로, 사실이 거짓으로 둔갑하지 않도록 감시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반도체 업계 주 52시간 (근로시간 적용 제외) 얘기 있지 않습니까. 제가 양쪽 얘기를 들어봤더니 별로 차이가 없는데 없는 차이를 만들어서 싸우고 있더라고요. 의심하고. (중략) 최종적으로 나온 안은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3개월 단위로 유연성을 확보하게 돼 있는 걸 노동부 고시를 바꿔서 6개월로 늘려달라. (중략) 결국은 노동부가 아마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6개월로 늘렸죠? 아무 문제 없잖아요. 6개월까지 변형, 탄력 근로제를 도입하면 사실 기존에 있던 문제 거의 다 해결된 거예요. 그런데 왜 이런 걸 가지고 싸웁니까, 쓸데없이.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대선 후보 초청 경제5단체장 간담회 (2025.5.8.)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말대로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14일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을 발표했다.
사용자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노동자 동의를 받으면 일주일 근로시간이 최대 64시간까지 늘어나는데, 이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을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만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지침이다. 재인가를 받으면 기간은 1년까지 연장된다. 고용노동부는 “기술 경쟁 격화에 따라 핵심 인력의 집중적 연구 개발이 필수적”이고 “반도체 연구 개발이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 이 같은 특례를 신설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정부 지침이 나온 배경에는 지난해 11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일명 반도체특별법)이 있다. 이 법안에 들어 있는 근로시간 특례 조항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령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간 서면 합의로” 근로시간과 휴일 근로 등에 대해 별도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조문이 반도체특별법 제34조에 적혀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반대 등으로 국회 입법이 어려워지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장관이었던 고용노동부가 법 개정을 우회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이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이다. 이 정부 지침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 이재명 대선 후보 발언처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반도체 특별연장근로, 과로사 인정 기준 ‘12주 평균 60시간’ 초과
노동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이다. “장시간 몰아치기 노동”이 계속되면 과로사 위험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은 지난 3월 12일 성명을 통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1년 내내 주 64시간씩 장시간 몰아치기 노동을 계속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지적하며 “김문수 장관은 노동자에 대한 계엄, 살인적인 노동시간 확대 시도를 멈추고 당장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산업재해로써 과로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담긴 고용노동부 고시에도 ‘주 64시간 근무’가 언급된다. 고용노동부 고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에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고 돼 있다.
심지어 업무 부담이 높은 일부 노동자에 한해서는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연관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고용노동부의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특별연장근로 대상인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노동자들은 △첫 3개월은 주당 64시간까지 △이후 3개월은 주당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이 6개월 주기는 심사를 거쳐 한 번 더 반복 가능하다. (기존에는 ‘3개월, 주 64시간’ 근무 주기를 두 번 반복했다.)

따라서 각각 3개월(12주)씩 주 64시간, 주 60시간, 다시 주 64시간, 주 60시간을 일하며 1년을 채울 수도 있다. 최소한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초과”라는 과로사 인정 기준에 해당하는 근로시간이다. 고용노동부 스스로가 정한 고시를 어긴 셈이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관계자는 과로사 인정 기준이 “(산재) 보상 기준”이라면서 “(과로사 인정 기준에 해당하는) 근로시간을 절대 넘으면 안 된다는 취지가 아니다. 그걸 넘는다고 해서 저희가 금지하거나 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특별연장근로 지침대로 일주일에 64시간씩, 3개월 동안 일하다 업무상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과로사 인정 기준 등에 따라 업무와 질병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단을 거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애초에 ‘주 64시간 근무’는 국제 기준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규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럽연합(EU) 등은 초과 근무를 포함한 평균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조항은 “직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EU 근로시간 지침)로 한다.
또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23년 기준 1,872시간으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742시간보다 130시간 더 길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OECD 38개국 중 5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특별연장근로 6개월’ 두 달째, 노동자들 “새벽까지 일해”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를 거의 유일하게 사용하는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받은 고용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올해 4월 10일 기준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2년 넘는 기간 동안 연구개발을 이유로 특별연장근로를 총 25건 신청했다.
특별연장근로를 △2023년에 노동자 1,358명 대상으로 19만 5,552시간(특별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주 64시간’ 근무를 3개월 동안 지속) △2024년에는 노동자 1,686명에게 24만 2,784시간 요구한 것이다.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이 6개월로 늘어난 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9일 노동자 64명을 상대로 6개월의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고용노동부로부터 승인받았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이후 두 차례 특별연장근로 신청이 더 있었고 현재 7백여 명이 특별연장근로 대상자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선 후보 말처럼 ‘특별연장근로 6개월’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에게 문제는 없을까.
한기박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노동자는 특별연장근로 대상자로 일하고 있다. 한기박 씨의 지난달 근무 시간표를 확인해 봤다. 한 씨는 오전 6시에서 9시 사이 출근했는데, 오후 6시 이후 퇴근한 날은 전체 근무일 22일 중 9일로 절반에 가까웠다. 야근한 9일 중 8일은 오후 8시 이후에 퇴근했고 오후 10시가 지나 회사를 나선 날도 4일에 달했다.
한기박 씨는 “오후 10시 20분 차가 회사 셔틀버스 막차인데, 그것도 못 타서 광역버스를 타고 집에 갔더니 새벽 1시가 됐다. 이런 삶을 몇 달째 살고 있다”며 “회사 근처에 사는 동료들은 새벽 늦게까지도, 새벽 2시 넘어서도 여러 명이 일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해진 근로시간이 다 차면 재택근무 시스템을 이용해 집에서도 밤늦게까지, 주말에도 ‘무급으로’ 일한다고 한다.
각자 맡은 업무 과제는 수 주 또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넘게도 걸린다. 일례로 석 달 넘게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야근해야 할지, 소위 ‘피크 기간’이 언제쯤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게 과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반도체 설계도를 다른 업체보다 일주일이라도 더 빨리 생산하기 위함이다. 한기박 씨는 “이게 우리의 경쟁력이라는 게 회사 입장”이라고 했다.
지난 2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광장의 요구에 반하는 반도체특별법, 문제를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반도체 업종 노동자들도 한 씨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이날 변희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 노동자는 “삼성전자는 수많은 리더의 고과 평가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 아래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금도 법의 범위 내에서 연장 근로를 감내하지만, (반도체특별법 등으로) 노동시간 유연화가 정식으로 허용된다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추가 근로를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지침은 반도체 업종 특별연장근로 대상자를 “불가피한 경우 연구지원인력 및 생산인력까지 포함”한다고 정한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에서 일하는 이수옥 반도체 업종 생산직 노동자는 “24시간, 365일 업무용 노트북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면서 “이 회사에 다니는 27년 동안 주변인들만 해도 15명이 넘는 인원이 암, 뇌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는데…‘주 52시간제’ 이전으로 돌아갈까 우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에서 14년째 근무 중인 한기박 씨는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은 적이 있었다고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도입되지 않았던 몇 년 전, 한기박 씨는 한 달가량 야근을 하다 3일 정도 밤을 새웠다. 이틀째까지 정신이 몽롱하다 사흘째가 된 날에는 “심장이 엇박자로 잘못 뛰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침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속이 매슥거리고 어지러웠다”면서 “선배 한 분은 같이 야근하며 화장실을 가다 쓰러졌다”고 기억했다. 당시 또 다른 선배는 한 달에 100시간 가까이 연장 근로를 3개월째 하고 있었다. 주당 근로시간이 약 65시간, 3개월 동안 지속된 것이다.
한 씨는 주 52시간제로 인해 일정 수준 해결했던 반도체 업종의 과로 문제가, 이번에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이 확대되면서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주 52시간제 예외’ 기간이 늘어난 만큼, 회사가 제품 생산 기일을 더 앞당겨 업무 실적을 높이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반도체특별법 조기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있는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는 일명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은 빠져 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재명 후보는 반도체 연구개발 분야를 두고 최대 1년간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지 않게 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찬성하는 상황이다.
해당 고용노동부 지침이 고용노동부가 정한 고시를 스스로 위반했다는 점,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이 6개월로 연장된 현재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가 악화하는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아무 문제 없다”는 이 후보의 발언은 ‘거짓에 가깝다’고 판정하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 박상희 sacha@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