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3세' 신상열, 초고속 전무 승진...K라면 잇는 신사업 승부수는

농심은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상무)을 전무로 승진됐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그가 2021년 상무로 승진한 지 3년 만이다. /사진 제공=농심

농심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31) 미래사업실장(상무)이 최근 전무로 승진하면서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현재 농심은 높은 라면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신 전무가 사업 다각화에 성공해 경영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26일 농심에 따르면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전날 하반기 정기 인사를 통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신 회장의 장녀이자 신 전무의 누나인 신수정 음료마케팅팀 책임도 상무로 승진했다. 농심 관계자는 "미래사업실 전무 승진은 농심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1993년생인 신 전무는 2015년 농심에서 인턴사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2019년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후 그해 농심 경영기획팀에 입사했다. 2020년 경영기획팀 대리, 2021년 경영기획팀 부장을 거쳐 그해 11월 구매 담당 상무로 승진하며 농심 역사상 첫 20대 상무가 됐다. 현재는 지난 1월 신설된 미래사업실을 이끌며 농심의 신사업 전략을 총괄하다.

이번 인사는 신 전무의 승진을 통해 농심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른 경영 승계가 가속화됐음을 보여준다. 신 전무는 신 회장의 경영 노선을 따르며 일찍이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신 회장 역시 1979년 21세 나이에 농심에 입사해 15년간 경영 경험을 쌓고 1994년 임원으로 승진한 전례가 있다.

그룹 지분율에서도 신 전무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신 전무는 농심홀딩스 지분 중 오너 3세 중 가장 많은 1.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신동원 회장(42.92%)이며, 삼촌 신동윤 율촌화학 회장(13.18%)과 고모 신윤경 씨(2.16%)가 뒤를 잇는다.

신사업 성과 보여줄 시점

신 전무의 초고속 승진은 그룹 내 입지를 공고히 했지만 책임감도 더욱 커졌다. 경영 능력을 입증하고 신사업에서 성과를 내야만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농심이 추진 중인 신사업 분야는 △건강기능식품 △대체육 △스마트팜 △펫푸드 등이다. 신 전무는 이와 관련해 국내외 공장 설립 및 대규모 투자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중장기적 비전과 목표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신사업이라 가시적인 성과는 부족하지만 전망은 밝다. 펫푸드 시장은 국내 반려동물 가구 증가에 따라 2027년까지 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농심은 식품 제조 기반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스마트팜 분야에서는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농심은 내년 말까지 사우디 리야드 지역에 약 4000㎡ 규모의 스마트팜 시설을 구축해 운영할 계획이다.

신사업의 성패가 중요한 이유는 농심의 높은 라면 의존도 때문이다. 3분기 기준 농심 매출의 71%가 라면에서 발생하고 있다.삼양식품이 ‘불닭’ 시리즈 성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K라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높은 라면 의존도는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 K라면 열풍을 함께 이끌고 있는 삼양가 3세 전병우 헬스케어BU장(상무)가 차세대 먹거리 발굴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신 전무의 행보와 유사하다. 전 상무는 지난 9월 불닭브랜드본부장으로 승진했고 포스트불닭으로 ‘맵탱’과 식물성 식품 브랜드 ‘잭앤펄스’ 사업을 이끌고 있다. 1994년생인 전 상무는 신 전무와 컬럼비아대 동문이며, 두 사람은 같은 해인 2019년에 입사해 경영 전략이 자연스레 비교되고 있다.

농심은 2018년 사내 스타트업팀을 구성해 200평의 양산형 모델 스마트팜을 신설했고 2022년 오만에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처음으로 수출했다. 지난해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스마트팜을 수출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사진 제공=농심

신 전무의 또다른 과제는 인수합병(M&A)를 통한 외연 확장이다. 미래사업실은 M&A 및 신사업 발굴을 담당하는 조직이지만 아직까지 인수 소식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 구조에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대규모 M&A로 다각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농심도 식품 및 관련 분야에서 안정적인 M&A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 전무는 조직 내 신뢰를 쌓으며 안정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신중한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다. 철저한 분석과 타당성 검토를 바탕으로 M&A 대상을 물색하고 신사업 확장을 위한 전략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농심은 과거 M&A 경험이 부족해 신 전무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농심은 지난해 건기식업체 천호엔케어 인수를 추진했으나 매각가 산정에서 합의하지 못해 인수가 불발됐다. 농심의 인수 사례는 2020년 국내 e스포츠 팀 ‘팀 다이나믹스’(현 농심이스포츠)가 유일하다.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