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정한 금지선 넘지 않아야" 주장은 범주의 오류
기사내용 요약
금지선 개념 협상 깨지지 않도록 하는 최저선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광범위한 전쟁 적용 안돼
거꾸로 푸틴이 서방 조건 받아들이도록 압박해야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푸틴의 금지선은 무엇일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패배를 거듭하면서 서방이 제기하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는 애당초 잘못된 질문이며 초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영국 외교관 출신 국제전략연구소(IISS) 선임연구원이 미 뉴욕타임스(NYT) 1일(현지시간)자에 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
“금지선”은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뜻한다. 서방이 한계를 넘으면 러시아가 위험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의미다. 전쟁을 악화하는 인계철선이라는 뜻이다. 서방이 러시아의 금지선을 “존중”해 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금지선에 의해 서방이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금지선이라는 말은 한 나라의 대외정책에 고정된 것임을 전제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전무하다. 한 나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선은 빠르고 쉽게 변한다. 2012년 버락 오바바 미 대통령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이 “금지선”을 넘는 것이며 “압도적 대응”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시리아가 이후 몇 년 동안 사린가스로 수백 명의 시민을 살해했다는 보고가 나왔지만 미국은 침묵했다. 서방이 20년 동안 수조 달러를 쏟아 부었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2021년 8월 탈레반이 복귀한 것은 가장 선명한 금지선을 넘는 일이었지만 비용과 효과를 따지는 기준이 바뀌면서 한 순간에 금지선이 아닌 것으로 변했다.
금지선은 항상 이처럼 유연하고 변화가 많으며 임시변통적이어서 지정학 비석에 명문화된 것이 아니다. 국익이라는 것이 영원한 것일 수는 있으나 국익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과 의지는 임시적이고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적 힘, 위협에 대한 인식, 국내 상황, 보다 큰 국제적 흐름 등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외교는 적국의 금지선을 넘지 않도록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변화시키는 일이다.
다른 나라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임을 두려워해 미리 자제하는 건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전략일 수 없다. 반대로 모든 상황요인들을 잘 조율해 적이 자신의 목표를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금지선” 논리의 두 번째 문제는 상황 악화를 피하기 위해 행동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적의 위험과 어려움만 고려할 뿐, 우리 편의 위험과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 악화를 미리부터 추정하면 위험이 더 커진다. 상황 악화 행동은 선택의 결과일 뿐 다른 일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다. 비용과 효과를 따져서 하는 행동인 것이다. 적이 대가를 치를 것임을 분명히 인식시킴으로써 저지할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금지선에 사로잡히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자국의 국익을 “기본적”인 것으로, 적국의 행위를 “수용불가”로 규정함으로써 적국이 자제하도록 만들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외교에서 널리 쓰이는 수법이다. 상황악화를 우려하면 적이 엄포를 하도록 허용한다.
러시아의 “금지선”에 대한 우려는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서방은 러시아를 억제함으로써 핵금지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는데 따른 엄혹한 대가를 분명히 함으로써 가능하다. 러시아는 전쟁 발발 이래 여러 차례 핵위협을 하는 등 금지선을 주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지난 11월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을 탈환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헤르손 합병을 선언한 지 6주 뒤에 벌어진 일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의 엄포를 잘 물리쳐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금지선 개념은 원래 국가 간 협상에서 한 나라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저 조건을 의미한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협상이 깨지는 것이다. 협상에서는 금지선을 다른 나라가 인식하기 쉽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처럼 협상에 적용되는 개념을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보다 광범위한 지정학적 대결의 장에 적용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category error)’에 해당한다.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넘으면 자동적으로 러시아가 핵전쟁을 일으키는 행동 범주는 없다. 러시아는 금지선을 갖고 있지 않다. 매번 상대적 위험과 이익을 고려하는 여러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서방은 외교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방이 원하는 선택지를 러시아가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전에도 이런 식으로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소련은 며칠 만에 서방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금지선” 사고에 매몰됐다면 미국이 굴욕적인 타협을 했을 것이다. 쿠바에 미사일을 보내는 일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의지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논리는 같다. 1962년 미국은 니키타 흐루시쵸프 소련 지도자에게 어쩔 수 없이 쿠바에서 핵무기를 철수하도록 설득했다. 마찬가지로 서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지속하기보다 철수하는 것이 덜 위험하다는 것을 푸틴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국내의 결속이 약해지고 전쟁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푸틴에게 인식시켜 권력이 위태로워질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푸틴에게는 우크라이나 정복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가 더 중요하다.
미국은 다음 세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무기의 한계가 없음을 선언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자제를 선언하면 불리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러시아는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키는 등 갈수록 미국의 행동을 억제하려 시도할 것이다.
둘째, 미국과 협력국들은 시간이 러시아편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서방은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러시아를 패배시키고 제재를 강화할 것임을 강조해야 한다. 러시아가 치를 군사적, 경제적 대가로 어려움을 겪고 체제 위기가 닥칠 것임을 말이다.
셋째, 서방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러시아군이 질서 있게 철수할 경우 권력 붕괴와 러시아 해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서방의 목표가 아니며 그런 언급을 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다. 서방엔 이에 반대하는 의견이 일부 있다. 그러나 러시아 지도부가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인식하면 전쟁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외교적 “여건 조성 작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면 서방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러시아에게 최저 선택지를 강요할 수 있다. 금지선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정반대 전략이다. 사실 “금지선”이라는 표현은 전쟁 초기에 사용된 은유적 표현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강력하게 보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푸틴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출구”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러시아가 약한 것이 분명히 드러난 지금에 와서 러시아가 무모한 싸움을 벌이지 않도록 서방이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주장 모두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서방의 정책을 바꿔 러시아에 보상을 해야 한다는 꼴이다. 푸틴에게 “출구”를 제시해 서방 정책을 좌우하도록 해선 안 된다. 전략을 세우는 데는 느슨한 비유가 아닌, 강력한 사고가 필요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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