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빚, 후대 떠넘기면 안 돼”… 국내 유일 경주 방폐장 르포

김범수 2023. 4. 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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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안정적 처리 기반 시급
중·저준위 방폐물 관리는 안전
동굴처분 시설 내 방사선량 ‘0’
자연 방사선량 못 미치는 수준
고준위는 ‘맥스터’에 임시 보관
월성은 이미 절반이 포화상태
한빛원전은 2030년 저장 불가
“영구처분 특별법 조속 제정을”

“빛(전기)을 쓰는 대신 빚이 남습니다. 사용후핵연료를 미래 세대의 빚으로 남기지 않으려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이 필요합니다.”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감포 앞바다에 위치한 국내 유일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1단계 동굴처분시설에 방호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후 들어갔다. 해안이 보이는 언덕에서 130m 지하에 위치한 이곳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부산물로 방사능 농도가 낮은 폐기물을 저장하는 시설이다.
경북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위치한 고준위방폐물 건식 저장시설인 ‘캐니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버스에 탑승한 채 지하 시설 내부로 들어가니 사방으로 뚫린 복도 끝에 직경 23.6m, 높이 50m 크기의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에 닿았다. 방폐물 처분고인 사일로(Silo)는 모두 6개. 200ℓ 드럼통에 방폐물을 넣어 이를 다시 콘크리트로 제작된 처분 용기에 16개씩 넣는다. 콘크리트 처분 용기를 사일로 내부에 차곡차곡 쌓는 구조다. 1단계 동굴처분시설은 2014년 준공한 후 2015년 7월부터 방폐물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 시설은 200ℓ 드럼통 기준 10만드럼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2월 말 기준 약 2만7000개의 드럼통이 이 시설에 쌓였다. 방폐물이 담긴 드럼이 사일로를 가득 채우면 쇄석으로 상층부를 덮고 시멘트로 봉인해 영구 보존한다. 이처럼 중저준위 방폐물은 방사능 농도에 따른 동굴처분, 표층처분, 매립형처분이 이뤄진다.

시설에 들어서기 전에 받아든 휴대용 방사선 선량계 수치는 0밀리시버트(mSv)다. 방사선 누출이 없다는 의미다. 생활 속 방사선량이 평균 0.117mSv인 점을 고려하면 자연 방사선량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동굴처분시설을 빠져나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관리하는 월성원자력본부 부지 내 고준위방폐물 건식 저장시설로 이동했다. 고준위방폐물은 중·저준위보다 더 많은 방사능이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 내에서 사용 후 수명을 다한 우라늄 핵연료로 섭씨 300도에 달하는 높은 열과 방사능을 내뿜는다.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과 달리 심층에 처리해야 하는 폐기물이다.
현재 국내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고준위방폐장 영구처분시설이 없어 임시저장만 가능하다.

월성 원전 안쪽으로 들어서니, 지상에 높이 16.5m의 흰 원통 모양의 기둥 300기가 줄지어 서 있었다. 고준위방폐물 저장시설인 ‘캐니스터’다. 캐니스터는 1기당 540다발의 고준위방폐물을 저장할 수 있다.

캐니스터 위쪽 언덕에 올라가면 ‘맥스터(조밀저장시설)’가 위치해 있다. 맥스터는 현재 부지에 14모듈이 건설돼 있다. 높이 7.6m의 건물처럼 생긴 맥스터는 1모듈당 2만4000다발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수 있다. 맥스터 두께는 1m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진도 7.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 비행기와 충돌해도 온전히 내부를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경북 경주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위치한 고준위방폐물 건식 저장시설인 ‘맥스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하지만 월성 원전의 맥스터 14모듈 중 벌써 절반인 7모듈이 포화 상태다. 각 원전 부지 내 저장하고 있는 저장시설도 가까운 시일 내로 포화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30년에 포화가 예상되는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월성(2042년), 새울(2066년) 원전의 저장시설이 포화 시기를 맞는다. 특히 원전 사용이 늘어나면서 고준위방폐물이 증가함에 따라 영구처분시설 건설은 더욱 시급한 상태다.

특별법을 제정해 영구보관이 가능한 방폐장 건립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방폐장은 혐오시설로 여겨지면서 지역 주민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국회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과 관련 김영식·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 3월 30일 경북 경주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내 고준위방폐물 건식 저장시설을 둘러보는 기자단.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한수원 관계자는 “후대에 원전 사용에 대한 빚을 남기지 않으려면 특별법을 제정해 방폐물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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