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개혁 논의 범위 좁히고 단계적으로 가야”

조문희 기자 2024. 9. 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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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5인이 평가한 윤석열표 연금 개혁] “합의 안 된 자동조정장치, 빼는 게 바람직”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윤석열 정부표 연금 개혁의 남은 시간은 1년에 불과하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 때문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이 연금 개혁 논의 자체를 기피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학계에서 지금을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배경이다. 본격적인 선거철이 시작되기 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연금 개혁 정부안을 토대로 논의의 초점을 모아야 할 때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논의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과 기업, 청년층의 각 전문가 5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대별 차등화 OK, 자동조정장치는 '글쎄'

"논쟁이 첨예한 이슈는 빼고 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연금 개혁 정부안에 대해 "기존 국회 논의와 현재 상황을 감안했을 때 적절한 타협안"이라면서도 "자동조정장치 등은 이번 연금 개혁 논의에선 빠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자동조정장치는 한국처럼 연금 재정이 불안정한 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고안한 자동조정장치 도입 방식은 물가상승률에 경제·인구 변화 상황을 연동하는 것이다. 연금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 이미 시행 중이며, 나라별로 운용되는 방식과 적용되는 계수는 다르다. 일각에서는 정부안대로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받는 연금액이 최대 20% 깎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 도입 모형과 시기에 따라 삭감액은 달라질 수 있다"며 "최종안은 국회에서 결정될 것"이란 입장이다.

김수완 강남대 교수는 "얼마나 내고 얼마나 받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지난 국회에서부터 여러 차례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합의점이 무르익었지만 자동조정장치는 그렇지 않다"며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고 전문적인 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안고 가서 개혁을 늦추느냐, 배제해서 개혁을 기한 내에 완수하느냐에 대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논쟁 사항인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다. 김수완 교수는 "보험료를 올리는 속도에 차이를 두겠다는 것일 뿐 결과적으로 전 세대가 13%의 보험료율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면서 "지금 이 시점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대 간 배려를 추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오건호 위원장도 "가입기간이 짧은 중장년층에 대한 보험료 감면 특혜와 같은 보완 조치가 있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평가와는 별개로,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 역시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야권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세대별 보험료율 차등화가 실제로 청년 세대에게 유리한 제도인지 검증해 봐야 한다"며 "(차등화 조치 도입으로) 보험료가 빠르게 오르는 중장년 세대의 경우 기업들의 보험료 부담 가중으로 고용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곧 청년 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논의의 판을 좁힐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연금 모수 개혁과 함께 퇴직연금, 국민연금을 아우르는 3층 연금 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을 이야기했는데, 그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면 공무원·군인·사학연금 같은 다른 공적연금까지 다 개혁해야 하는데 불가능하다"며 "논점이 커지고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면 개혁은 더 멀어질 것"이라고 했다. 또 "젊은이의 부담을 줄이자는 대원칙 아래 단계적으로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원샷원킬'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병철 에프앤가이드 퇴직연금사업부 대표도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으니 개혁하자는 논의는 중간 단계를 많이 건너뛴 것"이라며 "퇴직연금 민간사업자를 묶어놨던 규제를 먼저 풀어서 자정 작용을 기대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하는 사람이 있는 한 퇴직연금은 어차피 고갈되지 않는다"며 "국민연금 고갈을 늦추려는 목적으로 퇴직연금을 활용하자는 얘기만은 나와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안 수정이 불가피하겠지만, 어떤 안으로든 개혁안이 통과될 것이란 게 전문가 5인의 공통된 전망이다. 연금 개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결국 시점의 문제라는 것이다. 개혁 논의를 미룰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만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김수완 교수는 "정부안의 핵심 내용은 그동안 학계와 정치권에서 논의됐던 게 대부분 반영되어 있고, 설익은 결과물이라고 평가절하할 순 없다. 현실을 고려한 최선의 안이다"고 했다. 이어 "국회에서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통과되어야 한다. 개혁 논의가 흐지부지된다면 국회가 책임을 완전히 방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라진 '청년'…연금 개혁 논의 주체 돼야

이근면 전 처장은 "연금 개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다. 개혁하지 않으면 다 함께 죽자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연금을 살리는 게 중요한데, 이번에 개혁되지 않으면 결국 국민연금 폐지론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에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정치인이 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청년층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공통적이었다. 김효주 대한민국청년포럼 대표는 "연금 재정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담보로 하는데도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도외시되고 있다"며 "현 10~40대와 그 자녀들이 이해관계의 중요한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 입장에서 볼 때, 연금 개혁 논의는 대개 얼마나 받을 것인지에 매몰돼 있고 미래 세대가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하고 그 몫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면서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을 조합한 단순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세대, 미래 세대에 필요한 비용과 부담, 책임 등의 객관적 정보가 솔직하고 상세하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전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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