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고종이 유독 이완용을 총애한 이유는?

1882년 25살 때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마다
열리는 특별과거시험인
증광시 문과 시험에 합격해서
관직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완용의 양아버지 이호준은
흥선대원군 측근이었잖아요.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은
청나라에 납치되어버리고요.

하지만 이완용의 양아버지 이호준은
상황 돌아가는 판을 읽고
흥선대원군을 손절하고는
명성황후 민비 측에 붙습니다.
이때부터 변절을 배웠나봐요.
이완용이..

1895년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있자
이완용, 이윤용, 윤치호,
민상호, 이범진 등이

고종을 경복궁에서 빼내어
안전한 미국공사관으로
피신시키려고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고종은 이때의 일을 잊지 않으며
이완용 등 이때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다음번엔 미국이 아닌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하죠
고종의 아관파천 때도
이완용이 도와주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완용의 외교노선은
굳이 따지자면 친미파였습니다

고종이 유독 이완용을 총애한 것도
이완용이 너무 강경한 친일이나
친청의 노선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친미파도 강경친미파가 아닌
온건친미파여서
러시아에 대해서도
이완용은 우호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