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407곳 전수조사…면접조사 안 해 ‘눈 가리고 아웅’ 우려
대부분 서류 검토…장애인단체 참여 제한
정신병원에서 잇따라 드러난 격리·강박 사망사고와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전국 정신병원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확정했다. 다만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참여가 제한된 데다 보건소가 확인하는 서류조사 위주여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의 우려가 이어진다.
보건복지부가 18일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 등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계약을 지난달 23일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연구책임자 백종우 교수)와 체결하고 이달부터 12월까지 지자체(보건소)를 통해 입원 병상을 보유한 전국 407곳 정신병원을 행정 조사하기로 했다. 예산은 3500만원이며, 조사대상에는 최근 환자 사망 등으로 문제가 된 춘천예현병원, 부천 더블유(W)진병원, 서울 해상병원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복지부는 지난 7월 춘천예현병원에서 251시간50분 동안 격리·강박돼 있던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한겨레 보도로 알려진 뒤, 정신건강정책 자문기구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꾸려진 협의체를 중심으로 정신병원 전수 조사를 준비해 왔다.
확정된 조사항목은 병원 유형, 병상 수, 격리실(보호실) 수, 입원환자 현황, 인력현황과 냉난방 여부, 벽면 완충재 등 보호실 시설환경과 격리·강박 시행 건수 및 시간·수행 인력 등인데 대부분 서류 검토로, 병원 책임자 및 의료인력 면접 조사는 빠져있다. 연구용역팀이 설계해 만든 실태조사표 각 항목을 각 병원에서 먼저 기입한 뒤 보건소 담당자가 확인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보건소만을 통해 조사하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냐’는 한겨레 질의에 “보건소에서 조사할 때 복지부도 몇 군데는 함께 가볼 예정이고 (정신장애인) 당사자·가족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과거 보건소가 문제가 된 관할 정신병원을 대상으로 했던 조사가 부실했던 전례 탓에 우려는 지속된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와 강원도 및 춘천시 보건소 직원들은 2022년 251시간50분의 격리·강박 끝에 환자가 사망한 춘천예현병원을 방문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조사 뒤 작성한 2쪽의 보고서를 보면, 정작 사망사고로 이어진 격리·강박과 관련해선 “2024년은 연속 최대허용시간 초과사례 발견하지 못함”이라는 단 한 줄의 내용만 기재됐다. 지난 9월 전수조사 계획 초안이 나온 뒤,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이 보건소와 정신병원의 유착 가능성 등에 우려를 제기하며 조사 과정에 당사자 단체를 포함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온 배경이다.
적은 예산과 권한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자문 협의체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격리 및 강박에 대한 현황을 파악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나 이 실태조사가 결과가 또 인력이나 진료수가의 부족 문제로 왜곡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어 “3500만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짧은 기간에, 권한이 없는 연구조사를 통해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조사방식을 논의한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기선완 단장은 이에 대해 “보건소가 그동안 정신병원 관리·감독에 소홀했을진 몰라도 밀착·불법적인 관계라고 보긴 어렵다. 이참에 (보건소에)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의식을 주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 단체의 울분은 이해하나, 현재와 같은 자료수집 방식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수행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면서 “명백하게 문제가 드러난 병원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직접 방문해서 관할 보건소와 함께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이번 연구용역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격리·강박 책임자 처벌 강화 규정을 담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2016년 이미 인권위는 복지부에 격리·강박 실태조사와 대체프로그램 연구 개발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고, 복지부의 안일함이 정신의료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복지부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조사로 또다시 정신장애인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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