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야쿠자의 갱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멋진 세계> (Under the Open Sky,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어린 시절, 가족에게 버려져 보육원으로 보내진 '미카미 마사오'(야쿠쇼 코지)는 살아남기 위해 야쿠자의 길을 선택했다.
청소년 시절,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소년원을 밥 먹듯이 돌아다닌 '미카미'는 성인이 되어서도 교도소를 전전하면서 '전과 N범'의 야쿠자가 되어간다.
출소 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야쿠자 생활을 청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미카미'에게 문제가 생긴다.
자기 부인에게 해코지하려던 반대 야쿠자 조직원을 실수로 살해해 살인죄로 13년을 복역하게 된 것.
영화 <멋진 세계>는 만기 출소 후 나온 '미카미'의 세계(2017년을 배경으로 한다)를 담아냈다.
'미카미'가 나온 세계는 너무나도 변해 있었다.
자신이 믿었던 정의와 현실은 동떨어져 있었고, 일본 사회 내에서 '야쿠자'에 대한 인상은 '조롱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놓고 아직도 야쿠자가 돌아다니냐고 핀잔도 듣는다)
그러던 중 '미카미'에게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주겠다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찾아온다.
혹시라도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푼 '미카미'는 촬영을 허락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프로듀서 '요시자와 하루카'(나가사와 마사미)의 속내는 달랐는데, '요시자와'는 '미카미'의 자극적인 모습만 담고자 했던 것.
한편, 자신의 꿈인 소설가가 되기 위해 프로그램 제작사를 그만둔 '츠노다 류타로'(나가노 타이가)는 '요시자와'의 의뢰를 받아 '미카미'를 만난다.
'츠노다' 역시 야쿠자라는 편견으로 '미카미'를 만났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미카미'를 밀착 취재하면서, 아기처럼 무기력해지는 모습에 인간미를 느끼고,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미카미'를 옆에서 응원한다.
<멋진 세계>는 <복수는 나의 것>(1976년) 소설로 유명한 사키 류조 작가의 대표작 <신분장>(1990년)을 원작으로 한다.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책이지만, 실제 살인자의 출소 후 삶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써져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년) 스태프로 활동하면서 영화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일본의 가정 붕괴를 담은 블랙 코미디 작품 <산딸기>(2002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유레루>(2006년),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 수상작 <우리 의사 선생님>(2009년) 등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본래 문학을 전공했기에,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소설이나 에세이도 다수 집필해 문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자신의 영화는 직접 각본을 썼던 감독이 <신분장>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감독은 길에서 벗어난 사람이 다시 '평범한 삶'의 길로 돌아가는 것이 혹독한 모험이라 놀랐다며, 지난 30년 동안 사회 제도는 바뀌었지만, 전과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그 정도까지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일본의 모든 사람이 용서받지 못하는 세계가 무언의 불안과 질식을 마음에 품고 있다고 느꼈다고.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단순히 30년 묵은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지 않았고, 오늘날의 배경에 맞추기 위해서 '미카미'의 실제 인물뿐 아니라, 출소 후 전과자들의 삶, 현대 야쿠자의 세계를 꼼꼼하게 취재했다.
화의 제목도 <신분장>에서 <멋진 세계>로 바뀌었다.
'미카미'라 불리는 한 남자를 통해 이야기되는 세계와 사회에 관한 영화이자, 아이러니하고, 함정과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그려냈고,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아우르는 관대함이 제목에 녹여져 있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미카미'의 인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역사를 반추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미카미'의 출소 장면은 마치 군국주의의 흔적이 떠올랐고, 출소 이후 '미카미'가 바라본 풍경은 고도성장과 버블 경제 소멸을 거쳐 '잃어버린 30년' 시기인 현재 일본을 연상케 했다.
철저히 '갱생'과 '구원'이라는 주제가 담겨져 있지만, '미카미'의 인생은 '미화'되어 관객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미카미'를 향한 냉대어린 시선은 영화 곳곳에 등장해 관객에게 '미카미'에게 감화하거나, 그의 과거가 정당화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미카미'가 사회의 일원으로 재적응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일말의 연민을 주기도 한다.
문득, 과거 "건달들의 비참한 인생을 통해 단 한 명의 청소년이라도 건달의 길로 가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이 영화를 제작했다"라고 '포스터'에 밝힌 한 영화가 떠올랐다.
그 영화가 건달의 세계가 화려하고 멋지지만은 않다는 걸 강조했다지만, 여전히 미화와 우상화의 여지가 있는 장면을 넣었던 것과 달리, <멋진 세계>는 철저히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미카미'를 담아낸다.
글을 쓰면서도,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심을 곱씹으면서, 수정과 삭제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것은 <멋진 세계>만이 지닌 미덕이었다.
결말의 '복선'이 많이 존재했지만, 영화의 엔딩은 그래서 더욱 아려왔다.
특히 '미카미'가 아닌, 주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엔딩이 더욱 좋았다.
철저히 '미카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주변인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노린 감독의 의도는 아니었을까?
한편, <멋진 세계>는 <쉘 위 댄스>(1996년), <우나기>(1997년), <실락원>(1997년), <큐어>(1997년) 등 일본 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물론 몇몇은 비공식적으로) 영화 팬들을 찾았던 시기, '주역'을 맡았던 일본의 국민 배우 '야코쇼 코지'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토록 찬사를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소설을 먼저 읽었는데, 주인공이 말도 많고, 묘하게 교활하고,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다"라면서, "하지만 니시카와 감독의 시나리오 속에는 왠지 모를 '미카미'에 대한 애정, 따뜻한 눈빛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나도 시나리오에 있는 '미카미'라는 남자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2022/08/16 CGV 압구정
- 감독
- 니시카와 미와
- 출연
- 야쿠쇼 코지, 나가사와 마사미, 나가노 타이가, 록카쿠 세이지, 키타무라 유키야, 하쿠류, 키무라 미도리코, 야스다 나루미, 카지 메이코, 하시즈메 이사오
- 평점
- 7.6
Copyright © 알려줌 알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8-2024 ALLYEOZUM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