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은 뜯어보셨나요?” 라벨 제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회사 대표는 직접 뜯어봤을까요? 한 번만 해봐도 잘 안된다는 걸 알 텐데 말입니다.”서울 서초구의 30대 권모 씨는 일부 투명 페트병의 라벨 제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라벨 제거를 위한 ‘절취선(자르는 선)’이 있지만, 일부 제품은 ‘무용지물’이라는 불만이다.최근 시중에는 라벨 제거용 절취선이 부착된 투명 페트병 음료를 쉽게 볼 수 있다. 포장지에는 ‘이 부분을 뜯어 분리 배출해 주세요’ 또는 ‘절취선 라벨을 페트와 분리해서 재활용해 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보다 효율적인 재활용을 위해 소비자가 직접 라벨을 제거하도록 고안된 방법이다.

문제는 절취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부 제품은 절취선 부분을 잡고 뜯는 도중 라벨이 끊어진다. 처음부터 아예 절취선이 잘 뜯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가장 어려운 작업은 페트병 모양에 ‘굴곡’이 있을 때다.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본 결과, 라벨이 뜯어지다가 굴곡진 부분에 이르면 바로 끊겼다. 다시 시도해도 다음 굴곡에서 여전히 끊어졌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라벨을 완전히 벗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 수고스러운 작업이었다.

라벨 제거기를 이용한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절취선이 있지만) 라벨 제거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절취선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안쪽에 칼날이 들어간 ‘라벨 제거기’ 제품 사용이 추천되기도 한다.일부에선 환경보호보다 ‘친환경’ 이미지 부각을 위한 기업 목적이 앞섰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친환경 경영방식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작 환경보호엔 비효율적인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서아론 녹색소비자연대 전국협의회 국장은 “단순히 절취선만 넣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쉽게 라벨이 벗겨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소비자도 라벨 제거의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적어도 두세 번씩 끊어지는 라벨을 뜯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는 불편함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도 페트병 라벨 제거 테스트를 하다가 실무자의 네일아트가 벗겨지기도 했다”며 “절취선을 넣었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일부 기업의 태도는 소비자와 재활용 문제를 함께 부담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고민을 해결한 ‘원터치 제거식 라벨’도 관심을 모았다. 개그맨 장동민이 개발한 기술이다. 음료 뚜껑을 열면 저절로 라벨지가 한 번에 벗겨진다. 장동민은 이 특허 기술로 지난해 환경부가 개최한 환경창업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현재 ‘푸른하늘’ 대표인 장동민은 음료 업체와 협업한 특허 기술 제품을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또 시중에는 아예 라벨을 없앤 ‘무라벨’ 페트병도 등장했다.

투명 페트병에 라벨 제거 절취선이 삽입된 이유는 재활용 가치가 높아서다. 색이 없는 투명 페트병은 다른 페트병보다 재활용하기 쉽다. 새로운 페트병으로 재탄생되거나, 의류, 화장품 용기, 신발, 가방 등으로 쓰인다. 재활용이 되려면 라벨 제거가 필수다.서아론 국장은 “잉크로 도배된 라벨이 벗겨지지 않는다면 투명 페트병을 분리 배출해도 재활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제시하는 올바른 별도 분리배출 방법은 우선 투명 페트병 음료를 비우고 라벨을 제거한다. 페트병을 압축한 다음 별도로 마련된 ‘전용 수거함’에 버린다. 투명 페트병은 다른 페트병과 달리 ‘별도로’ 분리 배출해야 한다. 현재는 아파트뿐 아니라 ‘모든 주거 공간’으로 별도 분리배출 의무화가 확장됐다.서 국장은 “정부는 투명 페트병 별도 분리배출 시행의 단속 강화와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및 캠페인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에는 재활용이 거의 어려운 혼합 재질의 플라스틱 생산을 제한하거나 환경 부담금을 높게 책정하는 등의 규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