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선물하는 뇌의 휴식, 마음의 회복

정신의학신문 ㅣ 최준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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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음, 출근길 자동차 소음, 가정이나 직장에서 나누는 대화와 업무 보고, 귀가 후에는 TV나 유튜브 영상이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는 소음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소음을 접할 때 우리 뇌와 마음은 과연 어떤 상태일까요? 그리고 그 사이사이 찾아오는 ‘침묵의 순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최근 신경과학과 정신의학 연구들은 침묵이 그저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뇌가 정돈 및 회복되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실험에서는 침묵 시간을 가졌을 때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해마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인지적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우리 뇌는 ‘내재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 불리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 모드는 외부 자극이 줄어들고 조용한 상태일 때 활성화되는데, 이때 뇌는 경험을 정리하고 기억을 통합하며 감정을 재조정합니다. 마치 컴퓨터가 사용하지 않을 때 자동으로 데이터 정리를 수행하듯, 뇌도 침묵의 순간에 자기 점검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소음이 지속되거나 정보가 쉴 새 없이 입력되면 이 과정을 방해합니다. 계속해서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 대화 중에도 흘러나오는 음악, 계속해서 재생되는 유튜브 영상 등은 우리 뇌가 온전히 쉬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환경이 지속되면 신경 피로, 집중력 저하, 불면, 불안 증가 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정 시간 소음을 차단하 침묵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면, 뇌파는 안정적인 알파파 상태로 돌아가며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아집니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이 2분간 완전한 침묵을 경험했을 때, 2분간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혈압과 심박수가 더 빠르게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침묵이 몸과 마음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침묵은 정신과적 치료 장면에서도 환자 회복을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상담이나 치료 장면에서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감정을 소화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게끔 하는 통로가 됩니다. 마음이 조용해질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 안에 쌓인 두려움, 슬픔, 분노를 알아차릴 수 있죠. 그래서 환자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생각, 의미 등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한 치료의 과정으로 다뤄집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누군가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순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침묵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때로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적 연결이 침묵을 통해 오히려 깊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존재적 공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침묵은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자극이 많은 환경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침묵은 불편한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정적에도 스마트폰을 꺼내고, 집 안이 조용하면 TV를 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분들도 많은데요. 조용한 순간을 견디지 못해 끊임없이 자극을 찾고, 주의를 분산할 무언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항상 ‘경계모드’로 작동하게 되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또,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침묵을 회복하는 훈련은 곧 ‘마음의 청소’와도 같습니다. 처음엔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익숙해질수록 심리적 안정감이 커지고, 자존감과 통찰력이 회복됩니다. 그렇다면 침묵을 통해 뇌와 마음의 건강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루 5분이라도 조용히 앉아 숨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쓸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아무런 소리도 없는 상태, 침묵 그 자체를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2. 귀를 막거나, TV·음악을 끄고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연습을 해보세요. 처음엔 불안할 수 있지만, 그 불안이 지나면 차분함이 찾아옵니다.

3. 말을 아끼는 연습도 침묵의 한 형태입니다. 대화 중 잠시 멈추고 상대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것은 관계의 깊이를 더합니다.

4. 자연 속의 침묵을 경험해 보세요. 산길, 바닷가, 혹은 교회 예배당 같은 장소에서 경험하는 고요함과 차분함은 뇌에 강력한 안정 효과를 줍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침묵은 어색하고 불편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또, 많은 소음 속에서 침묵을 위해서는 때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용한 침묵을 느낄 새가 많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뇌와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침묵은 우리가 건강하게 사고하고 정서적으로 균형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심리적 영양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 단 몇 분이라도 모든 소리를 내려놓고, 그 조용함 속에서 자신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 뇌와 마음은 스스로 쉼과 회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삼성양재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최준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