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거짓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낀적이 있나요?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누군가 거짓말을 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비언어적인 단서를 바탕으로 무의식적인 해석을 통해 상대의 의도와 감정을 파악합니다. 이러한 과정에는 어떤 추론 방식이 사용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는 시각적인 인상 형성의 한 부분인 무의식적 추론이 비자발적이고 이상적이며 반사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는데요, 1876년에 주장된 이 개념은 현대 연구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헬름홀츠는 무의식적 추론이 우리의 감각자료가 의식이나 마음에 의해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하위 감각신경시스템에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각 과정에 의식이 개입해서 영향을 주지 않는 무의식적 추론 방법은 인간관계에서도 작동합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지각하는 것은 감각 시스템에 의해 의식에 주어지는 것이며, 감각과정에 의식이 개입해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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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무의식적 추론’ 능력에 대한 개념은 100여 년이 지난 1995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개츠비 컴퓨테이셔널 신경과학연구소 소장 피터 다얀(Peter Dayan)과 인공지능 분야의 거장으로 구글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등의 <헬름홀츠 머신>이라는 논문을 통해서였습니다. 헬름홀츠의 개념은 딥러닝과 머신러닝을 위한 기본 알고리즘의 하나로 부활했습니다.

헬름홀츠 머신은 지각 시스템을 통계적 추론 엔진을 바탕으로 모델링하는 것으로, 데이터 세트의 숨겨진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공 신경망의 일종입니다. 헬름홀츠 머신은 학습된 모델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소수의 학습 아키텍처 중 하나로, 감각 자료의 원인에 대해 확률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무의식적 추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의 소비, 시장의 변화, 금융의 변동과 같은 다양한 경제 현상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제품의 가격, 브랜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 등 무의식적 추론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구매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는 경제 상황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편, 추론 과정에 대해 헬름홀츠와 다른 의견을 가진 주장도 있습니다. 현대 논리학과 언어철학의 기초를 제공한 철학자이자 수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는 지각의 과정에서 추론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논리적인 구조는 귀납법이 아니라 가설적 추론(hypothetical)에 의해 이뤄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가추(abduction)라는 용어를 제시했습니다. 특정한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설정해 그 이유를 결론으로 도출하면서 해당 사실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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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적 추론은 지각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뇌가 내부모델을 바탕으로 해서 외부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 개입하여 그 의미를 해석하고 조작해서 재생산해낸다는 겁니다. 우리가 단서를 통해 누군가의 기호를 파악하고, 범죄의 현장을 추적해 나가는 것도 가설적 추론에 의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설적 추론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 챗봇 '챗GPT'에도 적용되어 있습니다. 기존의 대화형 AI모델이 규칙이나 검색 기반의 방법에 의존했다면, 챗GPT는 긴 범위의 종속성을 모델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더욱 정교하게 이해하고 다양한 응답을 생성하게 됩니다. 가설적 추론은 지각의 과정에 추론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여러 단서들을 해석하며 의도와 감정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같은 사물과 현상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느낌과 해석을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다른 알고리즘과 규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과정들은 복잡한 뇌 신경망의 작동을 통해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시대를 거쳐 내려온 추론 방법이 오늘날의 과학 기술에도 적용되고 있다니 새로운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미래의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더 많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마음의 규칙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더 좋은 기술들이 개발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