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기사가 등장했다 보수언론에서도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 ⑥]
김건희 여사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김건희의 사람(천공·이종호·명태균), 김건희의 혐의(주가조작 연루·명품 백 수수), 김건희의 공간(관저), 김건희의 학력(논문 표절), 김건희 가족과 관련된 정부 사업(서울-양평 고속도로)과 재산 축적 과정 등 현직 대통령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이미 현직 대통령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대통령 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권 때 한 차례 대통령을 움직이는 숨은 권력으로 인해 좌절을 겪고 비용을 치렀다. ‘비선’ 논란이 갈등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은 자취를 감추면 손해 보는 쪽은 공동체의 시민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민주주의 핵심에 가닿는 중차대한 질문이다. 이번 호 〈시사IN〉이 거의 모든 기자를 동원해 ‘김건희 통권 특집호’를 내며 윤석열 정권의 명실상부한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를 들여다본 이유다.
이제 인터넷 황색지나 유튜브 채널 외에도 모든 언론이 김건희 여사를 주시한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하락 때문만은 아니다. 사안의 무게가 변했다. 개인 이력 중심의 가십성 의혹에서 정치가 연루된 스캔들로 옮아갔다.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들의 보도 양태도 달라졌다. 외신도 한국 대통령 부인의 비리 의혹을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2018년 3월께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끌던 시기다. 당시 김 여사에게 의혹을 제기한 쪽은 대부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었다. 주로 보수 매체가 이를 전했다. 2018년 3월30일 〈조선일보〉는 ‘법무부, ‘검찰 패싱’하며 윤석열 뒷조사했다’라는 제목의 단독 기사를 보도했다. 법무부가 윤석열 지검장 부인과 처가의 금전 거래와 관련된 여러 의혹을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보도 후 법무부 대변인실은 “내사를 진행한 사실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같은 해 4월2일에는 〈중앙일보〉가 ‘윤석열 부인, 비상장주식 미래에셋보다 20% 싸게 계약’이라는 단독 기사를 냈다. 지금도 김 여사 의혹의 핵심적 쟁점이 되고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상세히 보도한 기사였다. “코바나컨텐츠 대표이사 김건희”라는 이름은 그해 4월12일 〈미디어워치〉가 보도했다. 보수 논객 변희재씨가 이 매체 대표다. 2019년까지도 김건희 여사나 윤 대통령 처가 관련 의혹을 주로 제기한 쪽은 보수지였다.
2020년부터 상황이 변했다. 그해 10월에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총장 가족이 연루된 4개 사건에 대해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코바나컨텐츠의 기업 협찬 관련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의 수사를 총괄했다. 진보 매체는 김건희씨 관련 보도를 늘리고 보수 매체들은 논조를 바꿨다. 2020년 2월17일 〈뉴스타파〉의 ‘윤석열 아내 김건희-도이치모터스 권오수의 수상한 10년 거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연달아 김씨의 의혹을 보도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이전과 사뭇 다른 기사를 여럿 내놓았다. 가령 2020년 11월10일 ‘이성윤 무리수, 윤석열 아내·나경원 압수수색 영장 기각당해’라는 기사에서 이 매체는 코바나컨텐츠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두고 “한마디로 ‘과잉 수사’” “이성윤 지검장이 폭주하고 있다”라고 썼다.
윤석열 전 총장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뽑히고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자 매체를 가리지 않고 김건희씨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외에도 양평 공흥지구 특혜, 논문 표절과 전시 이력 부풀리기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26일 김건희씨가 사과 기자회견을 여는 데 이르렀다. 보수 매체들은 이때 김씨를 비교적 감쌌다. 〈중앙일보〉는 12월27일 사설에서 “진정성 논란이 여전하다”라면서도 “기본적으로 후보 본인에 대한 검증보다 가족에 대한 검증이 과열되는 건 비정상”이라고 썼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처음부터 김씨가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적었다. 비슷한 시기 유튜브 채널과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퍼진, 김건희씨의 유흥업소 근무 이력 의혹을 적극적으로 부인한 것은 〈월간조선〉이었다. 2021년 9월호에서 김건희씨가 과거 교생과 미술작가로 활동하던 때의 사진을 공개하며, 이른바 ‘쥴리 의혹’은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직후 언론은 김건희 여사에게 우호적 관심을 드러냈다. 종합 일간지들이 김 여사의 패션을 집중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22년 3월19일 ‘김건희 패션 스타일 분석’이라며, 김 여사의 옷차림이나 신발, 머리 모양을 보도했다. ‘투표소 셔츠’ ‘순방 패션’ 등을 다룬 비슷한 기사가 다수 나왔다. 동물 애호 관련 미담도 연이어 전했다. 〈서울신문〉은 2022년 5월20일 김건희 여사가 발을 다친 유기견들의 구조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5월4일에는 〈서울경제〉가 김건희 여사 NFT가 출시됐다며, 수익금은 유기동물 구조단체에 전액 기부된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수언론이 등 돌린 기점
보수언론은 정치적 비판에 맞서 김건희 여사를 옹호했다. 〈조선일보〉는 ‘김건희 특검’을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특검”이라 비판하고(2022년 9월8일), 더불어민주당을 “김건희 스토킹 당”이라고 썼다(2022년 9월21일). 2022년 11월15일 〈동아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이승헌 〈동아일보〉 부국장은 “민주당은 김 여사를 향해 계속 십자포화를 퍼부어서 최대한 지지층의 반윤석열 부부 정서를 결집하고 중도층에게는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리마인드(상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보수 매체들의 논조 변화가 두드러진 것은 올해 초부터다. 결정적 계기는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이다. 〈동아일보〉의 지난 1월23일 사설 제목은 ‘결국 김건희 리스크가 부른 여권 내전’이다. “가사에 얽매여 국사를 그르칠 수는 없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도 2월8일 사설에서 전날 방영된 윤석열 대통령과 KBS의 신년 대담을 비판했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했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 수수 논란에 대해서는 사과보다는 해명 위주였다”라고 썼다. 10월 들어서는 ‘김 여사 문제 정리 못하면 정권 미래는 어둡다(〈중앙일보〉, 10월15일)’ ‘험악한 민심 전달 않고 “우리는 하나” 외치고 끝난 용산 만찬(〈동아일보〉, 10월3일)’ 등 한층 ‘센’ 제목의 기사들이 등장했다. 2023년까지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실 직원들을 초청해 도시락 오찬을 함께했다’ 등, 김 여사에게 유리한 내용을 ‘단독’ 보도하던 TV조선도 변했다. 10월13일 친한동훈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공식 정무 라인이 아닌데도 정무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건희) 여사 라인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중순께까지는 김건희 여사를 단독으로 다룬 해외 언론 기사가 드물었다. 다만 지난해 4월26일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윤 대통령과 함께 방미한 김 여사를 “잘 알려진 패션광(clotheshorse)”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표현에는 ‘유행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해 7월12일 나온 리투아니아 언론 보도가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동행한 김 여사가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숍에 방문했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방문한 것은 맞지만 물건은 사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1월21일에는 영국 〈데일리메일〉이 김 여사가 얽힌 논란을 다룬 적이 있다. “나이에 비해 뛰어난 외모와 우아한 스타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김 여사가 사실 “표절, 탈세, 주가 조작 논란에 휘말린 인물”이라고 썼다.
올해 들어서는 CNN, NBC, 〈타임〉, 〈인디펜던트〉 등 서구권 유력 언론 대다수가 앞다투어 김 여사 의혹을 다뤘다. 지난 1월25일 영국 BBC는 김 여사에게 가방을 선물하는 장면이 담긴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영상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같은 날 영국 매체 〈가디언〉은 ‘대통령 부인과 디올 백: 한국 정치를 뒤흔든 스캔들’이라는 보도에서 “총선을 앞둔 여당에게 위기”라고 썼다. 이 매체는 “최악 상황”이라는 〈조선일보〉의 1월23일 사설을 인용했다. 체코 언론 〈블레스크〉는 9월21일 김건희 여사를 ‘사기꾼’이라고 지칭했다가, 주체코 한국 대사관의 항의를 받고 삭제했다. 윤 대통령의 체코 순방 기간을 기점으로 나온 기사였다. 전 세계의 많은 언론이 점점 더 김건희 여사를 주목하고 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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