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데 혈세 붓겠다는 발상: 층간소음매트 속 소음 [추적+]
검증 안 된 층간소음 저감 매트
설치ㆍ시공에 이자 지원한 정부
수요 없어 시행 2년 만에 폐지
보조금 직접 지원 사업으로 전환
수요 늘리기 위한 전환이라지만
여전히 성능 기준 없는데 괜찮나
매트 제조사에 혈세 퍼주기 지적
# 층간소음 저감 매트. 어린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이런 목적의 매트 하나쯤은 바닥에 깔아놨을 거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집과 갈등을 겪을 우려가 커서다. 문제는 매트의 성능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소음을 저감할 수 있어야 '층간소음 매트'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도 정해진 게 없다.
#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층간소음 저감 매트 지원 사업을 '보조금 형식'으로 바꿨다. '기준'도 정하지 않은 채 혈세를 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층간소음은 사회문제로 인식된 지 오래다. 아파트 층간소음 관련 건축기준이 만들어진 것도 벌써 22년 전이다. 더구나 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다. 층간소음 문제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층간소음을 해소할 만한 효율적인 방안은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건설사가 아파트를 제대로 짓기만 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지만, 역대 정부가 그걸 강제하지 않고 있어서다. 공사 중에 벽면이 흘러내리는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도, 뼈대가 없는 부실한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도 아무렇지 않게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현실만으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층간소음 해소 방안은 늘 본질을 비껴갔고, 엉뚱한 대책을 내놓기 일쑤였다. 층간소음 측정 방식 변경을 통한 건설 기준 완화, 혈세로 건설사를 대신해 층간소음 저감기술 개발, 직접적인 문제 해결 없는 상담서비스 제공 등은 대표적이다.
'층간소음 저감 매트 설치ㆍ시공 비용 융자 지원사업'도 이런 엉뚱한 층간소음 대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2022년 8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동주택 층간소음 개선 방안'에 담긴 사업인데, 발표 당시에도 따가운 지적을 받았다.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점, 피해자인 국민이 직접 돈을 들여 소음저감용 매트를 시공해야 한다는 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융자 지원이라는 점 등 때문이었다.[※참고: 당시 85㎡ 이하 주택 기준 부부합산 연소득 4000만원 이하는 무이자 융자, 8000만원 이하 유자녀 가구는 유이자(연 1.8%) 융자였다.]
당연히 "누가 이런 융자를 받아서 층간소음 저감 매트를 설치하겠느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국토부가 이 사업을 위해 책정한 2023년도 예산이 300억원(5년간 1500억원)이었는데, 국회의 심의과정에서 150억원으로 깎인 건 그래서다.
일부에선 예산이 줄어 층간소음을 해소할 정책이 탄력을 잃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집행액은 고작 1억1000만원(0.7%)에 불과했다. 올해는 27억원을 책정했는데, 9월까지 5억5000만원(20.4%)을 집행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이 때문인지 국토부는 이 사업을 표면적으론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층간소음 저감 매트의 설치 비용을 무이자 혹은 저금리로 빌려주는 방식에서 '보조하는' 방식으로 신규사업을 만들었다. 지원하는 방식만 살짝 바꿔서 사실상 같은 사업을 하는 셈이다.
2025년도 예산안에 잡힌 층간소음 저감 매트 설치 보조금 지원사업 예산액은 15억원이다. 아무래도 융자 방식에서 보조금 지급 방식으로 바뀌면 수요도 지금보다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할 층간소음 저감 매트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나 기준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 A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터넷에 '층간소음 매트'라고만 쳐도 다양한 매트가 등장한다. 개중엔 KC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곳들도 있고,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상 기준을 충족했다고 떠드는 곳도 있다. KC인증은 국내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의무적으로 받는 안전ㆍ품질 인증일 뿐이다. 매트 특성상 아이들의 몸이 닿을 수 있으니까 어린이제품 기준에 맞다면 좀 더 안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작 층간소음 저감 성능은 확인할 수가 없다. 성능 기준이 없어서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어야 '층간소음 저감 매트'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온갖 매트들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층간소음 저감 매트'라는 수식어를 달고 팔린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런 매트들이 층간소음 저감에 큰 효과가 없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1년 전 2013년 한국소비자원과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은 시중 매트 16종의 층간소음 저감 효과를 시험했는데,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16종 제품에서 경량충격음은 절반가량 줄었지만, 중량충격음은 평균 8% 줄어드는 데 불과했다."
경량충격음은 가볍고 딱딱한 충격, 중량충격음은 무겁고 부드러운 충격에서 기인하는 소리를 뜻한다. 층간소음은 주로 중량충격음에서 발생한다. A씨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극단적인 갈등은 주로 중량충격음 때문에 발생한다는 걸 감안하면 매트는 갈등을 줄이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당시 한국소비자원도 "층간소음 저감 제품의 인증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10년이 넘도록 그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도 "층간소음 저감 매트 설치비 융자 지원사업을 추진할 때도 그런 지적이 없지 않았다"고 기준을 갖추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해명을 늘어놨다.
"우리가 일일이 성능을 확인할 수 없는 데다, 성능을 공식적으로 측정하고 증빙해줄 기관도 마땅치 않다. 성능 기준을 만드는 게 한편으로는 특정 업체를 위한 차별처럼 보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성능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은 데다, 업체들의 눈치까지 봤다는 얘기다. 올바른 기준을 만드는 게 특혜 시비로 이어진다면 어떠한 기준도 세울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언급한 것처럼 국토부의 사업이 내년부터 융자 지원 방식에서 보조금 지원 방식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예산은 줄고, 지원 대상(만 4세 자녀를 둔 주거급여 수급가구ㆍ국토부 추산 6107가구)도 축소했지만, 혈세를 기준도 없이 지원하는 건 문제다. 성능이라도 괜찮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담보할 수 없다.
게다가 올해 예산은 적지만 향후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토부도 내년도 사업 집행률이 좋으면 지원 대상과 예산이 늘어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매트의 성능 기준과 관련해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는 만큼 방안을 충분히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과연 국토부가 층간소음 저감 매트에 생긴 커다란 구멍을 적기에 메울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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