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영양제" 의사가 내민 쪽지…건기식 추천하고 '뒷돈'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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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처럼 병원에서 처방전이 아닌 안내문(쪽지)을 통해 건기식을 추천받는 것을 '쪽지 처방'이라고 한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쪽지 처방 제품이 같은 성분의 다른 제품보다 1.5배 이상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일 뿐 아니라 가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쪽지 처방은 개원가를 넘어 대학병원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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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에서 상급종합병원까지 퍼져
"특사경 제도 등 전담 관리 필요"
#. 30대 임산부 A씨는 최근 서울의 한 산부인과 의원에서 의아한 경험을 했다. 2층 진료실에 들어서자 '영양 상담실'이라는 별도의 공간에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 책상을 놓고 의사처럼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건기식을 팔아도 되나" 의문스러웠던 것도 잠시, 진료를 받고 주치의가 내민 '임신 준비 종합영양제'란 쪽지에는 영양 상담실에서 파는 건기식이 제조사, 상품명까지 그대로 적혀 있었다. A씨는 "의사가 종합영양제, 비타민D, 유산균은 꼭 필요하다며 동그라미를 쳐줬는데 안 먹을 수가 없다"며 "그렇게 중요하면 약으로 처방하는 게 더 안전하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A씨처럼 병원에서 처방전이 아닌 안내문(쪽지)을 통해 건기식을 추천받는 것을 '쪽지 처방'이라고 한다. 제품명(성분명)을 적어 환자가 특정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인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추천하는 건기식을 필수 약품으로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쪽지 처방은 단순히 '추천'을 넘어 처방한 의료진에게 뒷돈이 주어지는 리베이트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됐다. 실제 적발된 사례도 있다. 202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적발한 A사의 경우 쪽지 처방의 대가로 판매 수익의 50%가량을 의료진에게 바쳤다. 규모도 상당하다. 같은 해 대한약사회가 약사 20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5년간 쪽지 처방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약사가 559명(27%), 들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559명(25%)으로 절반이 넘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쪽지 처방 제품이 같은 성분의 다른 제품보다 1.5배 이상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부당한 고객 유인 행위일 뿐 아니라 가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로는 건기식 리베이트를 제공한 회사나, 이를 받은 의료진 모두 처벌이 어렵다. 건기식 리베이트 금지 내용을 담은 의료법·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지난 국회에 상정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2년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신유형 리베이트'로 분류해 방지 규정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지만, 국회와 정부의 외면 속 '쪽지 처방'은 여전히 성행하는 상황이다.
쪽지 처방은 개원가를 넘어 대학병원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대한약사회 설문에서 쪽지 처방을 받은 약사에게 어느 의료기관에서 받았는지 물었더니 의원(365명)이 가장 많았고 상급종합병원(190명)과 병원급(166명)이 뒤를 이었다. 최근에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안과 전공의들이 특정 제약사의 눈 영양제를 3000여명의 환자에게 집중적으로 처방한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의료비 상승의 숨은 원인으로 제약사·의료기기 업체의 리베이트가 지목되는 가운데, 급성장하는 건기식에도 동일한 잣대를 대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게 인다.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6조 2022억원으로 5년 전보다 27% 확대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리베이트는 의사의 '모랄헤저드'(도덕적 해이)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며 "약이나 의료기기보다 근거가 한참 부족한 건기식을 환자에게 추천하는 것은 '숨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리베이트 방법이 다양한데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경찰 등은 수사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며 "'특별사법경찰제도(특사경) 도입을 통해 정부 차원에서 리베이트 전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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