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표류기 기록 남겨 남보다 7배 넘는 난파 보상 받은 하멜...기록, 관찰, 돈 관리 등 세 가지가 부의 원천
‘부자들의 자녀 교육’에선 경제부 차장이자 경제학 박사인 방현철 기자가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의 손관승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부자들의 자녀 교육은 세계적인 갑부들의 경제 금융 교육법을 나침반 삼아 보통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간입니다.
이날 주제는 ‘하멜표류기’를 쓴 하멜과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배울 수 있는 경제 금융 교육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은 1653년 태풍으로 타던 배가 난파를 당해 13년 28일간 조선에 머물렀습니다. 당시의 일을 기록으로 남긴 게 ‘하멜표류기’입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를 떠나 아시아까지 오게 된 하멜은 왜 배를 탔을까요? 손관승 작가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시대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다’였다”며 “하멜도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는 리스크 테이킹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멜이 탄 배는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소속이었습니다. 동인도회사는 암스테르담에 본사가 있었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인 바타비아에서 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손 작가는 하멜이 동인도회사에서 배운 세 가지를 기록 정신, 관찰하는 법, 그리고 돈 관리법이라고 정리했습니다. 특히 돈을 엄격하고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하멜과 함께 난파됐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36명이었습니다. 선장은 태풍에 휩쓸리는 와중에 숨을 거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멜이 난파 선원들 가운데 리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돈 관리 등을 투명하게 하고 함께 나눈다는 공감의 원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멜은 기록을 제대로 하면서 금전적인 이득도 얻었습니다. 하멜표류기는 사실 동인도회사에서 난파돼 있던 동안 밀린 임금 등 보상금을 받기 위한 근거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하멜보다 먼저 네덜란드로 돌아간 동료들은 2년치 보상금밖에 받지 못했지만, 하멜은 맨 마지막에 네덜란드로 돌아갔음에도 그들의 7배가 넘는 15년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두 꼼꼼히 기록해서 보상의 근거 자료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부의 원천은 ‘기록’에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손관승 작가는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내는 등 해양 경제 강국이 된 바탕에는 청어 잡이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청어는 네덜란드의 국민 생선이지만 상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청어를 상하지 않게 손질하는 법을 개발하면서 네덜란드는 장기간 바다에 나가 고기 잡이를 할 수 있게 됐고, 선단을 키워갈 수 있게 됐습니다. 결국 동인도회사까지 만들어 아시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네덜란드 인구의 절반이 직간접적으로 동인도회사와 관련이 있었다고 합니다.
손 작가는 네덜란드의 상업 정신이 현재도 이어지는 사례로 ‘킹스데이(국왕탄생일)’를 들었습니다. 킹스데이인 4월 27일이면 네덜란드 전역에서 아이들이 여는 벼룩시장이 열립니다. 부모와 아이들은 같이 벼룩시장을 준비하지만, 실제 하루 종일 판매를 책임지는 건 아이들 몫입니다. 아이들은 이날 흥정하는 법을 배우고, 돈을 버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들은 하루 80~90유로 정도의 수입을 올리면서, 상업 정신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부모는 아이들이 파는 걸 지켜보기만 할 뿐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손 작가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해양 경제 강국을 만들어낸 네덜란드에서 여러 가지 경제 교육의 팁을 찾을 수 있다”며 “하멜과 하멜의 고향 네덜란드에서 좌절했을 때 이길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배우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손 작가는 영상에서 전남 강진의 돌담길에 남아 있는 하멜의 흔적 등도 소개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방현철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