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위기’ 홍도분교에 새 학생들이 왔다
신안군·원주민, 새 주민 정착 지원… 신안군 실험은 성공할까?
너울이 심했다. 전남 목포에서 홍도까진 배로 2시간40분이 걸렸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멀미 때문에 힘들었다. 여행 떠난 게 아니라 이사하는 길이어서였을까? 낯선 바다 풍경을 보다 화들짝 놀랐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이지?”라고 자문했다.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옆에 있는 두 아이를 보고 정신을 다잡았다. 경남의 한 중소 도시에 살던 ㄱ(42)씨는 2024년 2월27일 그렇게 ‘홍도’로 갔다.
경남 도시에 살던 가족이 전남 신안 홍도로 이사
홍도를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하는 ㄱ씨는 ‘워킹맘’들이 그러하듯, 두 아이를 학원으로 돌렸다. 두 자녀 모두 별문제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2023년 교우관계로 힘들어했다. ㄱ씨는 “내가 일하기 때문에 생긴 공백”이라고 생각해 1년간 휴직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그러다가 전남 신안군 홍도의 작은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봤다.
홍도분교는 1949년 개교한 학교다. 한창 때 학생 수가 120명이 넘을 때도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섬 밖으로 나가는 주민이 많아졌다. 현재 홍도1구는 211가구에 358명이 산다. 그나마 “겨울에는 뭍으로 나가 있고 관광 성수기에 섬으로 들어오는 이가 많은 실정”이다. 급기야 2023년 6학년생 3명이 졸업을 앞둔 상태였는데 입학할 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하게 됐다.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 폐교를 막기 위해 신안군이 나섰다. ㄱ씨는 신안군이 2023년 홍도분교에 입학하거나 전학하는 학생의 부모에게 빈집을 수리해 제공하고 월 320만원 수준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기사를 읽고, `홍도에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안군에 홍도분교 전학과 이주 문제를 전화로 문의한 첫 번째 예비 지원자였다. ㄱ씨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최종 결심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생태적 환경에서 지내게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홍도에 가면 반려견을 키울 수 있다고 하자 반색했다. 몸집은 작지만 귀엽고 활발한 성격의 반려견 포메라니안을 식구로 맞았다. 반려견의 이름을 꿈 몽(夢) 자를 따 ‘몽이’로 지었다. ㄱ씨는 “홍도에 가서 아이들이 몽이와 함께 뛰어놀면서 꿈을 키워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신안군은 두 차례의 서면 심사와 현장 방문 등을 거쳐 ㄱ씨 가족 등 세 가족 9명을 선정했다.
홍도의 새 보금자리는 빨간 벽돌집이었다. 신안군은 비어 있던 집을 수리해 ㄱ씨 가족에게 무상으로 지원했다. 방 2개에 욕실 2개, 거실이 딸렸다. 작은 마당도 있어 몽이가 뛰어놀기에 좋았다. ㄱ씨는 “홍도1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이다. 바다가 보여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학교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있었다. ㄱ씨는 “이웃인 이장님이 우리 가족을 많이 챙겨주신다. 전복이랑 생선, 반찬, 채소도 갖다주신다. 동네 분들도 좋다”고 했다.
2024년 3월4일 홍도분교엔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학교 교문엔 ‘홍도에서의 새로운 시작, 입학과 전입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이 걸렸다. 홍도분교는 세 가족의 자녀 6명이 입학과 전학을 오면서 폐교 위기를 면했다. 1학년에 1명이 입학했고, 나머지 5명은 2학년(2명), 3학년(1명), 4학년(1명), 5학년(1명)으로 전학했다. 홍도분교 교사는 3명이다. 입학식 겸 개학식엔 마을 주민들도 참석해 축하했다.
세 가족 이주로 홍도분교도 폐교 위기 벗어나
신안군은 ‘작은 섬 학교 지원 조례’에 따라 세 가족의 보호자 1명씩의 일자리를 지원했다. 간호사로 일했던 ㄱ씨는 흑산면 홍도보건지소에서 근무한다. 다른 두 가정의 보호자 2명은 홍도분교에서 교사들을 보조해 교실 운영을 돕는 ‘복식학급 강사’를 맡고 있다. 홍도1구 주민들도 세 가족에게 이불, 가전제품 등의 선물을 전달하는 등 정착을 돕고 있다. 김선태(64) 이장은 “홍도 사람들이 정이 많아 세 가족과 잘 어울려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세 가족이 홍도 새 식구가 된 후 사연은 그간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신안군과 신안교육지원청도 이들의 개별적인 연락처나 사진 등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신안군 쪽은 “홍도로 이사하신 분들이 각종 보도로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이들이 홍도로 이사한 뒤 근황이 궁금해 신안군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안군에서 ㄱ씨에게 이런 의사를 전달했고, ㄱ씨와 8월29일 통화했다.
가장 먼저 “홍도 생활 어떠시냐”고 물었다. ㄱ씨는 “그때 (결정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판단의 기준은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다. 반려견 몽이는 마당과 집 안을 오가며 아이들과 뛰어놀고 있다. ㄱ씨는 “아이들이 학원을 안 다니니까 너무 좋아한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선생님과 1대1 수업인데도 친구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지낸다. 방과후에 선생님과 피아노를 즐긴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성격이어서 별걱정이 없다. ㄱ씨는 “아이들의 학습 만족도도 높다”고 강조했다.
ㄱ씨 등 세 가족은 신안군에서 1명당 햇빛아동수당 연 80만원도 받고 있다. 신안군에 있는 1.8기가와트의 태양광발전 수익이 햇빛연금의 종잣돈이다. 신안군에 주소를 둔 18살 미만의 어린이·청소년 2888명 모두가 햇빛아동수당을 받는다. 다만 ㄱ씨 등 세 가족은 신안군이 주민(1만여 명)에게 분기별로 지급하는 햇빛연금(10만~68만원) 지급 대상은 아니다. ㄱ씨는 “햇빛아동수당을 지역 상품권으로 받아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말했다.
홍도엔 여름에 원추리꽃이 무리 지어 핀다. ㄱ씨는 비바람에도 잘 견디는 야생화인 원추리꽃을 보면 힘이 난다. ㄱ씨 가족은 홍도에 함께 이사한 두 가족과 만나 생일잔치도 함께 하는 등 이웃으로 지낸다. 아이들은 어느새 바다에 통발을 던진 뒤 문어와 고기를 끌어올리며 적응하고 있다. ㄱ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도록 두세 가정이 더 이주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 많아지도록 두세 가정 더 이주한다면
신안군은 지속해서 홍도분교 살리기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최미 신안군 교육지원팀장은 “세 가족이 잘 정착하도록 관심을 갖겠다. 다만 현재 홍도1구에 빈집이 없다. 또 자녀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자리를 발굴하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신안=정대하 한겨레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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