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약가인하 정책으로 제약사 매출 하락과 고용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제약바이오협회는 책임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최근 제약업계 관계자들과 약가인하를 주제로 한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인하 개편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제약사들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이 시행된다면 수익성 악화로 인한 매출 감소를 넘어 신약개발(R&D)의 동력마저 상실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위기 속에서 이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가인하에 선제 대응을 못한 채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협회가 대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도 책임지는 모습은 없어 보였다. 최근 협회는 2월 말 임기만료인 이재국 부회장과 엄승인 전무이사, 홍정기 상무이사 등 3인의 상근 임원을 재선임 했다. 이 밖에 박지만 대외협력본부장 상무를 상무이사로 선임했다. 박 상무는 이달 말 임기 만료로 퇴임하는 장우순 상무이사 대신 상근임원(등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암묵적 책임감마저도 잘 안보이는 인사라는 질책이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민간 단체로 제약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협회는 100% 제약사들의 피땀 어린 회비로 운영된다. 중견제약사의 경우 매달 500만~700만원, 상위제약사는 1000만~2000만원 사이의 운영비를 납부한다. 그러나 업계 안팎에서는 협회가 약가인하에 대한 대관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정부에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민심이 팽배하다. 막대한 회비를 내면서도 정작 현장의 절실한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약가인하 개편안대로 복제약(제네릭) 가격을 40%까지 낮추면 연간 최대 약 3조6000억원의 피해가 전망된다. 국내 제약사 평균 영업이익률이 6%인 상황에서 해당 개편안은 국내 제약산업 미래에 대한 포기와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약가인하로 국산 전문 의약품 생산이 줄어들면 향후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약사들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무턱대고 약가인하를 하는 것이 아닌 맞춤형 약가인하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실제 약가인하로 수익성이 떨어진 제약사들이 급여 의약품 대신 비급여 의약품 생산을 늘리면, 결국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할 약값은 오히려 약 13.8% 상승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제약사들의 ‘가교역할’을 수행하는 제약바이오협회가 단순히 정책을 수용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모든 복제약에 대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약가인하 대신 값비싼 항암제나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 등에 한해 인하 폭을 조절하는 협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특히 제약사들은 협회가 약가인하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결과론적 비판을 하는게 아니다. 안일한 태도에 대한 원성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실제 국내 여러 협회들은 회원사의 권익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거나, 고통을 분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및 수가 등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위해 집행부가 삭발식을 거행하거나 단식 투쟁을 하며 배수진을 쳤다. 과거 금융투자협회의 경우, 금융위기나 업황 악화 시 회원사들의 어려움을 감안해 협회 운영비를 감면해주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제약바이오협회는 약가인하로 생존을 고민하는 제약사들의 고통을 분담하기는 커녕 평시와 같은 인사를 진행했다. 협회가 산업계의 동반자가 아닌 그저 관료 조직으로 전락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협회에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업계를 대표하는 이익단체로서 최소한의 모습이 필요할 때다.
주샛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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