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재발견...일상공간 속에서 ‘현대미술’보물찾기
12월 4일까지 시내 곳곳서
15인 작가 참여...지역 탐험기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주최 행사
KTX 강릉역에 내릴 때부터 허투루 지나면 안 된다.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되는 ‘보물찾기’ 여정이 시작되니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그 실체는 차로 10분 안에 도달하는 서부시장(임영로 155번길6)에서 확인된다. 현대화된 서부시장 2층 CCC라운지에 펼쳐진 널찍한 휴식 공간. 이곳 한가운데 예술적인 손길을 더한 박경종 작가(43)의 ‘파도에 닿는 시간’(2022) 애니메이션이 펼쳐졌다. 작가는 강릉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풍경들을 5×5㎝의 나무 타일에 수백개 그린 후 모자이크처럼 모아서 파도가 치는 듯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그 작품의 재료가 됐던 작은 타일 작품 100개에 자석을 붙여 강릉 경포대나 동헌은 물론 노암터널 등 명소 인근에 숨겨두었다.
문향과 예향으로서 강릉의 역사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 올해 처음 열려 지난 4일 현장에 가보았다.
새로운 여정은 ‘말(사람)을 잇는다’라는 의미를 담은 잡지 ‘강릉연구(江陵連口 Tale of a City)’가 축제를 안내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토착민과 이주민 그리고 앞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사람들, 시간을 잇는 서사,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전문가의 이어짐을 뜻하며 지어진 이름이다.
오는 12월 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행사는 강릉시 중심부에서 반경 10km 이내 공간을 가로지르며 예술의 장을 펼쳤다. 노암터널과 서부시장, 고래책방, 대추무파인아트, 크리에이티브1230, 여행자플랫폼 강릉수월래, 강릉걷는길안내센터 등 7개 장소에서 펼쳐진다. 곳곳에 예술을 심어놓은 작가 15명 외에도 바우길 개척자 (산악인)과 소셜요리가, 그래픽디자이너, 인권활동가, 도시인류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했다.
2020년부터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젊은 창작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명주동이 주 무대다. 서부시장 상가번영회 교육관에는 싱가포르 작가 송밍앙(42)의 작품 ‘Be True to Your Scohol’을 통해 주문진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년과 노년 성인들이 교가를 기억하며 추억을 회상하는 영상이 공감대를 울린다. 박가연 작가(37)는 그림자놀이를 통해 강릉단오제를 표현한 작품으로 공간을 새롭게 했다.
서부시장 예집(임영로 157번길8)에서는 고유선 소셜셰프의 다이닝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강릉 집밥이라 할 수 있는 명주동 할매 밥상을 활용해 현지에서 공수한 감자와 두부, 가자미식해, 코다리조림 등으로 재해석한 음식이 홍이현숙 작가(64)의 주체적이지만 저항하는 신체 퍼포먼스 장면에 둘러싸여 즐기는 경험도 독특하다. 목~일요일만 진행하는 행사가 조기 마감돼 아쉽다. 폐허 같은 공간 속에서 장판지 방의 느낌을 살리니 작품의 맛이 새롭게 살아난다.
장소 특정적 예술성이 도드라지는 공간은 노암터널(노암동 200-4)이 되겠다. 한때 영동지방을 이어주던 무궁화호가 다니던 철길은 KTX노선이 뚫리면서 공원으로 바뀌었다. 강릉 입암동에서 중앙시장 월화거리까지 이어지는 노암터널은 지역민이 좋아하는 산책로이자 강릉바우길의 일부이다. 이제는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외지인들이 몰리는 곳이다. 홍승혜 작가(63)는 약 100m 남짓한 터널에 미디어 작품 ’서치라이트’를 쏘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슬픈 역사를 목격한 이 터미널 안에서 물방울 소리를 연상시키는 음향 속에서 동그란 타원의 조명이 쓰다듬듯 비추는 장면이 매력적이다. 천천히 터널을 벗어나 찬란한 가을빛과 색색의 단풍을 맞닥뜨리는 장면도 예술의 일부가 되는 기분이다.
강릉 명소 고래책방(율곡로 2848)에서도 국동완(43)의 ‘#나의 작은 예술가에게’는 어린 딸의 창조성을 따라 그린 그림과 각지에서 받은 아이들 그림을 모아 벽화처럼 보여준다. 유아들이 마치 추상화가 작품처럼 자유롭게 그린 그림들이 감동적이다. 이 공간에선 조혜진(36)이 강릉 이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모은 이주민체를 조각화한 입체 작품도 함께 있다. 축제 동안 작가들 작품과 관련해 어린이, 미술교육, 이주, 이민 등을 주제로 한 특별 북큐레이션도 선보인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강릉 토박이 작가가 만든 성산면 복합문화공간 대추무파인아트(성산면 소목길 18-21)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드넓은 들판 전망을 품고 서 있는 현대미술전시장은 조선시대 학자 김열의 손자가 유형문화재 임경당 옆에 만들었다. 이창훈 작가(51)는 인근 남대천 강물을 냉동고에 옮겨 얼려 전시하는가 하면, 그 얼음이 녹아 액체가 되는 과정을 탑처럼 설치하고 시간의 순환을 표현했고, 이소요 작가(46)는 강릉 석병산 석회암 지대에 자생하는 회양목의 모습과 현장 식물·광물을 표본처럼 채집해 보여주고 지역 시인의 글이 찰떡처럼 잘 어울린다.
구정면에 있는 지역 기반 시각예술그룹 크리에이티브 1230(구정면 칠봉로 592-7)에서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국내 작가(박연후, 배철, 수임, 정순호)와 루시아 켐커스(독일), 하라다 유키(일본) 등 작업이 함께 설치돼 있다.
박소희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 감독은 “참여자와 방문객의 발걸음으로 공간을 이어가며 만들어지는 길은 새로운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현재의 지정학적 위치뿐만 아니라 각자의 개별적 기억과 가치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더 나아가 새로운 사유로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파마리서치문화재단 박필현 이사장은 “강릉 고유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해 예술 축제로 만들어가고 싶다”며 “강릉을 방문하는 이들과 시민들이 문화 예술의 가치와 잠재적 가능성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참여하고 교류해 문화적 공감대를 구축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재생의학에 골몰해온 기업의 취지와 궤를 함께하는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은 올해 설립 5년이 됐다.
전시는 무료이고 가이드북 ‘강릉연구’(3000원)를 구매하면 편리하다. 자가용은 물론 대중교통으로도 관람할 수 있도록 안내지도를 웹사이트(www.giartfestival.com)에서도 공유해 주고, 걸어서 이동하기 좋은 구간은 강릉바우길에서 따로 안내한다. 비영리법인 다봄인권센터 통역팀과 협업해 예약제로 외국어 도슨트(해설사)를 제공하고, 이주민 가정 대상을 위한 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강릉하면 유명한 안목항 커피거리와 전국 최고 전통 가옥인 선교장, 신사임당과 이이의 얼이 깃든 오죽헌, 허균 생가 등은 물론 강원의 유일한 국보 목조건축물인 임영관 삼문목, 강릉 아르떼뮤지엄 등과 함께 주말에 둘러보기 좋은 행사다. 강릉/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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