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경주 개최, 천년 왕경이 세계 외교 무대로 부활한다
市민 외교·황금빛 야간 만찬으로 신라 외교 정신 현대적 계승

△ 천년 왕경, 외교의 무대.
오는 10월, 경주의 '왕경(王京)'이 다시 살아난다.
2025 APEC 정상회의의 일정이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에서 열리며, 세계 정상들의 발걸음이 신라 왕도의 골격 위에 놓이게 된다.
이들이 머무는 회의장과 이동하는 동선, 둘러보는 유적지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역사유적지구' 안에 있다.
이 유적지구는 단일 유물이나 건축물의 집합이 아니다. 이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도시 구조, 즉 천년 전 신라 왕도 경주의 공간 그 자체다.
사신이 걸었던 길, 왕이 탄 가마가 지나던 거리, 백성과 상인이 오가던 장터.
APEC 정상들은 단지 회담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로 자체가 '외교의 체험'이 되는 역사적 동선을 걷게 된다.

△ 다섯 구역과 왕경 외교 동선.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크게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월성지구(월성·첨성대·동궁과 월지), 황룡사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남산), 그리고 분황사지구다.
이들은 각기 독립된 유적이 아니라, 신라 왕경이라는 하나의 국가 시스템 안에서 기능적·상징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그것은 곧 신라 외교의 입체적 무대였다.
이번 APEC을 맞아 경주시가 설정한 정상급 방문 코스는 '왕경 외교 동선'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됐다.
동궁과 월지에서 시작해 월정교를 지나 첨성대를 거쳐 황룡사지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과거 외국 사신들이 입궐해 예를 갖추고 연회를 즐기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숙소로 돌아가던 길과 거의 일치한다.
정상이 걸으며 마주하는 공간과 풍경은 고대 외교의 상징을 반영한다.
특히 황룡사지에서는 구층목탑의 디지털 복원이 상시 상영되고, 첨성대 앞에서는 '천문 외교'를 주제로 한 야간 문화공연이 예정돼 있다.
동궁과 월지에서는 신라 사신 환대 의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국적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정상들은 단순히 회담장에서 연설하고 악수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외교를 경험'하게 된다.

△ 화랑 정신과 시민 외교.
경주의 정체성은 단지 유산이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신라 천년의 도시, 그 중심에 흐르던 정신은 '개방'과 '포용'이었다. 삼국을 통일한 힘도, 당과 왜를 넘나든 외교도 모두 이러한 개방성과 주체성 위에서 가능했다.
그 핵심에는 화랑 정신이 있었다.
화랑은 단순한 무사 집단이 아니었다. 공동체 속에서 수양과 예절, 예술과 무예를 익히며 신라 국가체계의 유연성과 생명력을 상징했다.
그 품성은 대외관계에서도 드러났다. 신라의 사신은 문명국 신라의 품격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고대 외교에서 '사람의 됨됨이'가 무엇보다 중요했음을 상기할 때, 신라의 국제 감각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번 회의의 특징은 '시민 외교'다.
경주시는 시민 사절단, 청소년 국제 외교대사단, 세계 환영 깃발 행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외국어 인사를 배우고, 황리단길 카페들은 각국 국기를 입힌 메뉴판을 제작하고 있다.
고교생들은 자원 통역 봉사단에 참여해 기본 국제 질서를 공부하며, 일부 학교에서는 신라 사신 복장을 한 플래시몹 공연을 기획한다.
지역 예술가들도 동참한다.
금관 모양의 공예품, 신라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 의상, 한지에 인쇄된 '천년의 인사말' 카드는 세계인을 맞이할 선물로 개발되고 있다.
외교는 회담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환대와 일상 속 대화에서 시작된다.

△ 황금빛 외교, 야간의 무대.
신라는 황금의 나라였다.
황남대총 금관은 화려함을 넘어 문화적 주권과 경제적 기반을 증명한다. 왕권의 상징은 금으로 표현됐고, 금은 교역과 외교의 기반이었다.
경주의 황금문화는 곧 '신라의 외교 디자인'이었다.
경주는 이번 회의를 맞아 '황금빛 외교'라는 개념을 구상한다. 도시 전체가 외교 무대가 되는 시도이며, 특히 야간에 집중된 문화 콘텐츠가 중심이 된다.
핵심은 '황금의 밤, 경주 만찬'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정상들은 전통의상과 황금 장식이 들어간 기념 스카프를 착용하고, 국악과 세계 민속 음악의 협연 속에 식사를 나눈다.
대릉원과 월정교, 황룡사지 일대는 조명으로 '황금의 길'로 재구성된다. 빛의 이동을 따라 걸으며 역사의 서사를 체험하는 '야간 외교 탐방' 코스도 마련된다.

△ 새로운 중심, 지방이 주도.
APEC의 경주 개최는 지방이 주도하는 외교라는 새로운 선언이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외교부·산업부와 협력하며 국제회의와 문화외교를 결합한 모델을 준비 중이다.
환동해권 거점도시 구상, 황룡사 복원과 연계한 포럼, 시민 1000명이 참여하는 거리 환영행렬은 경주를 '시민 외교 도시'로 만든다.
'정상의 길을 시민이 걷다' 행사도 진행된다. 시민들은 정상들의 동선을 그대로 체험하며 역사 해설과 공연을 함께 즐긴다. 이는 외교의 생활화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다.

△ 정상의 길, 미래로 이어지다.
천년 전 사신이 걸었던 길 위에 오늘의 정상이 선다.
신라는 국가 전체를 외교의 무대로 삼았고, 경주는 그 중심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 무대를 복원한다.
그 길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문이다.
'정상의 길'은 높은 곳에만 있지 않다. 시민이 걷고, 외국인이 밟고, 아이들이 뛰노는 길 위에 문명의 품격이 놓인다.
경주의 유산은 단지 보존 대상이 아니라 오늘의 외교를 비추는 지도다. 경주는 과거의 중심성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외교를 준비하는 도시로 진화한다.
세계는 지금, 다시 경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