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용성이 현재 한국 뷰티 산업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피부색이 밝은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피부색이 어두운 소비자들은 자연스러운 색상의 베이스 메이크업, 립스틱, 블러셔 등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변하고 있다. 여기에는 SNS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미스 달시는 어느 날 지인들은 모두 각자 피부색에 맞는 파운데이션을 구할 수 있는 반면 자신은 어두운 피부색에 맞는 제품을 구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꼈다.
"어느 브랜드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에게 9가지 색상으로 이루어진 한국산 쿠션 파운데이션 홍보 패키지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제 피부색에 맞는 제품이 없어 받지 못했죠."
미스 달시는 그래도 제품을 사용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패키지 중 가장 어두운 색상의 제품조차도 피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았다.
미스 달시가 올린 해당 제품 사용 후기 영상은 틱톡에서 조회수 2500만 회 이상을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한국 뷰티 브랜드들의 제품은 기능이 뛰어나긴 하나, 피부색이 어두운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해당 영상은 다양한 피부색을 고려한 선택지 확대 및 화장품 업계의 포용성에 대한 담론을 촉발했다.
미스 달시는 틱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각각 팔로워 200만 명, 359만 명, 86만7000 명을 보유한 흑인 뷰티 인플루언서이다. 미스 달시를 포함한 뷰티 인플루언서들이 올린 게시물은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피부색과 딱 맞는 색상을 찾아 '충격적'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 '티르티르'는 이러한 요구에 발빠르게 대응해 15가지 다양한 색상의 쿠션 파운데이션을 출시했다.
이후 미스 달시는 "내 피부색에 딱 맞는 쿠션 파운데이션은 처음이었다. 충격적이다"면서 "심지어 미국 브랜드에서도 내 피부색과 딱 맞는 파운데이션을 찾기 어렵다. 거의 드물다"는 사용 후기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브랜드의 이 같은 변화가 자신과 흑인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강조했다.
"한국 브랜드에서는 이러한 제품이 거의 드물었습니다. (제 영상은) 큰 관심을 받았고, 그 덕에 기업은 저보다도 피부색이 더 어두운 소비자들을 위한 색조까지 확장했습니다. 모든 일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그래서 기쁩니다. 사람들이 드디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해주는 기분입니다."
2023년 15가지 다양한 피부색의 쿠션 파운데이션을 출시한 이후 온라인 매출이 3096% 증가하는 등 티르티르의 글로벌 매출은 크게 성장했다. 2024년 글로벌 총 매출은 3000억원에 달했다.
티르티르의 글로벌 마케팅 담당자인 라일라 김은 "립 제품의 색상도 다양화할 계획"이라면서 피부색 및 인종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개인의 입술색에 맞춘 30가지 색상으로 곧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인기
포용적인 뷰티 제품에 대한 수요는 더 이상 북미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뷰티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 케냐,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관련 인플루언서 및 판매업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뷰티 제품에 대한 관심은 주로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SNS는 색상 다양화를 요구하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뷰티 브랜드를 칭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널리 퍼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케냐 나이로비 소재 화장품 매장 '글로우 시크릿'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페이루스 압디누르 압둘라는 최근 한국 업체의 쿠션 파운데이션을 추가로 요청했다. 더 많은 고객들이 각자 어울리는 색상을 찾을 수 있도록 10~15가지의 어두운 색상파운데이션을 추가로 주문한 것이다.
압둘라에 따르면 이곳 매장에서 한국산 쿠션 파운데이션은 가장 잘 팔리는 품목 중 하나다.
"다양성 (포용이) 소비자들의 신뢰 구축에 큰 역할을 했다"는 압둘라는 "손님들은 어두운 피부색을 위해 디자인된 새로운 색조를 정말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 남부 라고스에서 뷰티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오조 올루와세나요는 한국산 화장품이 제품의 색상 다양화를 통해 자신의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지 직접 경험했다.
올루와세나요는 "(피부색이 어두운) 나를 세상이 알아봐주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드디어 제 어두운 피부색에 맞는 색조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과 협업하고 싶습니다."
피부색이 어두운 소비자들을 위해 새롭게 출시된 한국산 쿠션 파운데이션 사용 후기 영상도 틱톡에 게시했다.
올루와세나요는 "해당 영상은 호평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드디어 이곳 나이지리아에서도 이 제품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아울러 다른 새로운 색조가 나오면 후기를 공유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피부색을 위한 제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국의 뷰티 업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문화적 차이
한국의 뷰티 브랜드 3700여 개를 위해 제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는ODM(제조자 개발 생산) 업체인 '콜마'는 현재 아프리카, 아메리카, 태평양 등 여러 지역 내 포커스 그룹과 함께 피부색이 어두운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여러 소비자들의 피부색과 맞춰보며 더 어두운 피부색에도 잘 맞는 다양한 색조를 개발 중이다.
한국콜마의 최원정 'CX(컬러 익스피리언스) 스튜디오' 센터장은 "브랜드들의 어두운 색조의 제품 개발 요청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최적의 파운데이션, 립스틱, 블러셔 제품 색조를 개발하고자 적극적으로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개인마다 기본적인 피부색이 다양하기에 어두운 피부색을 위한 색조 개발은 특히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여러 한국산 파운데이션 업체가 커버력을 위해 사용하는 성분인 이산화티탄은 어두운 피부에서는 칙칙하거나 잿빛을 띠게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문화별로 선호하는 화장품도 다르다.
한국인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밝은 피부색을 선호해, 대부분 자신의 피부색보다 두 톤 정도 밝은 색조를 선택한다.
그러나 최 센터장에 따르면 조사 결과, 흑인 참가자들은 얼굴과 목의 색을 일치시키는 화장법을 좋아한다고 한다. 즉 흑인 소비자들은 자신의 피부색을 전반적으로 보완하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커버력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 센터장은 "우리는 포커스 그룹을 대상으로 연구도 진행하고, 전 세계 소비자와 인플루언서들로부터 사용 후기를 전달 받아 데이터를 수집한다"면서 "미스 달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소비자들에게 맞는 색조를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성장
색상 다양화를 추구하는 한국 파운데이션은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흥국 소비자들의 뷰티 관련 소비가 늘어나면서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시장 데이터 분석 기업 '스태티스타'는 아프리카의 뷰티 및 퍼스널 케어 시장 규모가 2024년 661억 9000만달러에서 2027년 851억7000만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콜마의 박지연 콜마 마케팅 전략팀 주임은 "한국의 화장품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다양성 포용 트렌드와 더불어 미래 성장에 대해서도 낙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 화장품이 아프리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많은 아프리카 소비자들에게 한국 화장품의 매력은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영화와 같은 문화 콘텐츠과 깊이 관련 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글로리아 아치엥은 한국산 스킨케어 제품을 애용한다. 아치엥은 한국 드라마나 음악에 빠지게 되었고, 다른 케냐인들과 마찬가지로 화면 속 아이돌, 배우들의 빛나는 피부에 매료되었다. 이는 한국 뷰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치엥은 한국산 제품은 가격이 저렴하고, 피부에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다.
아치엥은 "이제 나이로비에서도 한국산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접근성은 개선되었을지라도, 판매자마다 가격은 크게 차이 난다.
아치엥 또한 자신은 다양한 한국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공인된 판매자를 통해 구입하지만, 판매자마다 가격이 달라 종종 확인을 해야 한다면서 "정가가 있다면 훨씬 더 쉬울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품질, 합리적인 가격, 문화적 영향력이 맞물리며 케냐 내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피부색을 인정해달라는 전 세계 소비자, 인플루언서, 판매업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의 뷰티 산업은 변화하고 있다. 어두운 색조에 대한 수요 증가는 한국의 화장품 시장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뷰티 산업 내 새로운 포용성과 대표성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