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군포] 군포의 2024 키워드는 ‘RE’… 재정비에 들썩이는 산본

노후화된 1기 신도시, 재도약 열망 더 높아
특별법 ‘새로운 기회’ 선도지구 지정 매진
동의율 높이기 주력…수면 밑 갈등 폭발하기도
군포 산본신도시 전경. 1기 신도시 중 한 곳으로 조성됐다. /군포시 제공

군포시로 출근한 지난 한 달여간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단연 재건축이다. 군포시엔 1기 신도시인 산본이 있는데 최근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점과 맞물려 산본 노후단지의 재정비 문제는 산본, 나아가 군포시 최대의 현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특별법을 가장 먼저 적용받을 시범사업 대상(선도지구)을 선정하는 문제까지 더해져 주목도가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열망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갈등 역시 첨예해지고 있다. 산본의 키워드는 지금 ‘RE’다.

■ 산본신도시

신도시 조성 전 1980년대 산본 일대 전경. /군포시 제공

산본은 성남 분당,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부천 중동과 함께 조성된 1기 신도시다. 1기 신도시 조성 계획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해당 지역 일대는 개발이 논의됐었는데, 지역 토박이들의 말을 빌리면 이는 과거 군포 일대에 대규모 기업과 공장들이 다수 소재했던 점과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3기 신도시 개발도 그랬듯 1기 신도시 개발 역시 서울 인근 지역에 대규모 주거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서울 집값 상승세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군포 일대 근로자들의 거주 수요를 고려해 이 지역 일대엔 상당한 규모의 주거 단지가 필요했다. 근거리에 놓인 평촌과 산본 개발이 함께 이뤄진 이유로도 분석된다.

한때 번영했던 군포 일대의 기업, 공장들이 어느새 문을 닫거나 이전하면서 산본은 1기 신도시 중 가장 자족기능이 부족한 도시가 됐다. 어느 1기 신도시 단지든 노후화돼 생활에 크고 작은 불편함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산본은 자족기능 부족 등으로 집값이 낮은 편이다. 1991~1992년에 준공된 분당·평촌·산본 아파트 단지의 매매 가격을 비교해보면 분당의 A아파트 73㎡의 최근 매매가는 9억3천만원, 평촌의 B아파트 75㎡의 최근 매매가는 6억5천만원이다. 산본의 C아파트 80㎡ 의 최근 매매가는 4억7천만원이다. 분당과는 2배가량 차이가 난다.

산본 일대는 단지 노후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수년 전 리모델링 수요가 증가했었다. 사진은 2022년 1월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 연합회 발대식. /경인일보DB

산본은 자연 환경이 좋고 교통 인프라가 뛰어나 정주 여건이 매우 훌륭한 곳이지만 노후화, 그리고 비교적 낮은 집값은 이곳 주민들에겐 오랜 숙제였다. 수년 전부터 산본 노후단지 곳곳에서 리모델링 바람이 불었던 것은 이를 개선코자 하는 주민들의 숙원과도 무관치 않다. 군포시에 따르면 현재 재개발 사업 구역은 15곳,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는 단지는 2곳, 리모델링 사업을 실시하는 단지는 7곳, 소규모 정비사업 중인 곳은 10곳이다. 상당수의 단지들이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두루 고민하던 중, 1기 신도시 재정비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집권했다. 새로운 기회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 특별법과 선도지구

산본지역 한 아파트에서 선도지구 지정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주민 동의를 받기 위해 게재한 현수막. 7일 현재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사전 동의율은 67%까지 높아졌다. 2024.6.7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지난달 22일 산본을 비롯한 1기 신도시 일대가 일제히 들썩였다. 이른바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선도지구 지정 기준이 발표돼서다. 상세한 기준은 각 지자체가 정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표준 평가 기준에선 100점 만점 중 주민 동의율 배점이 60점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어 통합 정비 여부, 가구당 주차 대수 등이 주요하게 평가된다.

특별법을 통해 재정비를 진행할 경우 용적률 상향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본 노후단지들은 절호의 기회라고 여긴다. 이에 특별법을 가장 빠르게 적용받을 수 있는 선도지구로 지정되기 위해 저마다 매진하고 있다. 산본 내 선도지구는 많게는 6천가구 규모로 지정될 전망이다. 2~3개 구역이 선정되는 셈이다.

단지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벌써부터 각 단지의 주차 대수나 통합 단지 수 등을 점수화해 유불리를 따지고 있다. 단지별로 SNS 단체 채팅방을 통해 연일 활발히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는 추세다. 최대 관건은 주민 동의율을 높이는 것인 만큼, 이를 위한 작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주민들끼리 후원금을 모금한 후 현수막을 제작해 아파트 곳곳에 내걸고 전단지를 만들어 각 가정에 배포하는가 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저마다 홍보글을 게시하고 있다. 아파트 안내 방송으로도 알리고 있다.

지난 5월19일 군포시민체육광장 제1체육관에서 산본 주공2단지 충무1차아파트 재건축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2024.5.19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화합이 최대 과제이지만 도리어 수면 아래에 있던 단지, 주민들간 갈등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선도지구 지정을 준비하기 위해 주민 설명회를 연 한 노후 단지에선 주민들간 고성을 지르며 다투기까지 했다. 재건축 추진 단체가 여러 곳이 있는 단지에선 단체간 통합을 타진하다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다수의 단지가 통합해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에선 각자의 동의율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추후 분담금 규모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오간다. 건설 원가가 나날이 치솟는 가운데 1기 신도시 중 집값과 매매 수요가 다른 곳보다 낮은 산본은 사업성이 어느정도일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특별법 적용에 산본 주민들의 시선이 유독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는 25일 군포시는 선도지구 선정 기준과 동의서 양식 등 관련 지침을 확정한다. 이어 오는 9월 단지별로 제안서를 접수받아 11월 특별법을 우선 적용받을 선도지구를 선정한다. 올해 내내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다. 군포시의 올해 키워드가 ‘RE’인 까닭이다.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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