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관하여 [프리스타일]

이한울 2024. 10. 10.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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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10개월 차, 첫 여름휴가를 받았다.

올해 1월부터 매일 유튜브 시사 라이브 방송을 제작해왔는데 숨 고를 틈이 생긴 것이다.

광화문에서부터 노들섬까지 서울 일대를 쏘다니며 50개의 수치심을 모았다.

익명의 쪽지에 적어 고백할 수준을 넘은 자기 결점이 바깥에 드러나도 반성은커녕 아예 모른 체하고 오히려 남 탓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매일 유튜브 시사 라이브 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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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이한울 PD.ⓒ시사IN 이명익

입사 10개월 차, 첫 여름휴가를 받았다. 올해 1월부터 매일 유튜브 시사 라이브 방송을 제작해왔는데 숨 고를 틈이 생긴 것이다. 이 달콤한 시간을 어떻게 쓸지 궁리하다 개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권력투쟁을 쫓는 극적인 정치 분야에서 벗어나 사적이고 말랑한 이야기를 담고 싶은 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수치심’이었다. ‘육각형 인간(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을 포함한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라는 신조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끈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누구나 흠결이 있다는 것을 조명하고 싶었다. 취약성을 드러내는 게 약점이 되는 세상에서 용기를 내어 자기 결점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당신을 애정한다는 훈훈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워서 남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익명의 쪽지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광화문에서부터 노들섬까지 서울 일대를 쏘다니며 50개의 수치심을 모았다. 코딱지를 먹는 습관, 바지에 똥을 싼 경험, 애인이 있지만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상상 등 남모르는 자신만의 비밀들이 빼곡하게 나왔다.

그런데 끝내 영상을 완성하지 못했다. 범죄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 또한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가해, 도벽, 음주운전 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수치심을 넘어 처절한 반성이 필요한 영역이라 “흠결이 있어도 괜찮아" 식으로 마무리하기가 어려웠다. 익명으로 수집한 터라 당사자의 마음 또한 추정 불가능한 상태였다. 매조지지 못한 이야기를 보며 한편으로는 수치심이라도 느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성은 어렵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명하지 않고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을 너무 많이 목도하는 요즘. 익명의 쪽지에 적어 고백할 수준을 넘은 자기 결점이 바깥에 드러나도 반성은커녕 아예 모른 체하고 오히려 남 탓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매일 유튜브 시사 라이브 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이한울 sp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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