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아이와 만삭 아내 때문에 피난도 못 가고 월북으로 내쫓긴 예술가

화가 이쾌대는 해방 전후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군상1-해방고지>(1948년) / 제공. 한이수

서양 유화 기법으로 조선의 얼굴을 그렸고, 해방의 혼란과 희망을 담은 ‘군상’ 시리즈로 리얼리즘 회화를 남겼다.

20대 초반의 이쾌대와 유갑봉 / 제공. 한이수

하지만 6·25 전쟁이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병든 어머니와 만삭의 아내, 젖먹이 아이를 두고 피난조차 갈 수 없었던 그는 서울에 남았고, 점령군 아래서 어쩔 수 없이 선전화 작업에 동원됐다.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0년대) / 그림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이후 국군에 붙잡혀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며 좌익으로 분류됐고, 결국 포로 교환 당시 북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카드놀이하는 부부>(1930년대) / 제공. 한이수

이쾌대의 선택은 정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월북 이후에도 북한에서 주요한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고, 1965년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부인도>, 1943, 개인소장, 193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남편의 그림은 아내 유갑봉이 숨어 지키며 가족을 부양했고, 해금된 1988년 이후에야 세상에 다시 나왔다.

이쾌대, 이여성 자화상, 90.8*72.8cm

화단에서 오랫동안 지워졌던 이름. 하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도 조용히 말한다.

한 예술가가 어떻게 시대와 맞서 싸웠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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