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싸우던 로스차일드 후손들이 다시 뭉쳐 만든 이것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12. 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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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 심지어 와인보다도 더 진하다. 와인에 그려진 ‘로칠드’ 가문의 화살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다섯개 화살 얘기는 이미 아실 겁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금융계에선 영어 이름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와인업계에선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처럼 프랑스어 ‘로칠드(로실드)’로 통용됩니다. 일반적으로 로스차일드는 ‘단합’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와인업계의 ‘로칠드’는 대립과 반목의 상징이었습니다.

최근 로스차일드 가문이 뭉쳐 만든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Champagne Barons de Rothschild)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들고 온 샴페인 ‘콘코르디아’(Concordia)에는 고운 기포와 함께 가문의 성장, 몰락, 부활이 함께 녹아들어져 있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로스차일드 가문과 샴페인에 관련한 스토리입니다.

무통·라피트·에드먼드 로칠드의 합작품
바론 필립 드 로칠드
도멘 바론 드 로칠드 라피트
에드먼드 드 로칠드
프랑스 보르도의 5대 샤토 중 2개가 로스차일드 가문 소유입니다. 하나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도멘 바론 드 로칠드 라피트), 다른 하나는 샤토 무통 로칠드(바론 필립 드 로칠드)입니다. 둘은 같은 로스차일드 가문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분파가 다르고 심지어 와인업계에선 소문난 앙숙이었습니다. 여기에 에드먼드 로칠드 가문까지 별도로 와인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세 가문의 후손들이 2003년 모여 샴페인 하우스를 설립하는 데 합의합니다. 샴페인 하우스의 이름은 ‘바론 드 로칠드’. 샴페인 병의 뒷면에는 3개 가문의 소유주들의 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붉은 방패’의 후손들입니다.

로칠드 패밀리
붉은 방패의 다섯 아들
‘로스차일드’ 가문을 세운 마이어 암셀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전, 골동품 사업을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가문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대인 차별이 완화되며 1807년 로스차일드라는 성(姓)을 쓸수 있게 되었는데요, 붉은 방패란 뜻입니다.

마이어 암셀은 19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9명은 일찍 죽고, 아들 다섯과 딸 다섯이 남았습니다. 아버지는 다섯명의 아들들과 회사를 세웁니다. 여성은 경영에서 배제했습니다.

장남 암셀에겐 프랑크푸르트(독일)를 맡깁니다. 둘째 살로몬은 빈(오스트리아)에 보내고 삼남 나탄은 런던(영국), 넷째 카를은 나폴리(이탈리아), 막내 제임스는 파리(프랑스)의 은행을 맡아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대부업과 철도, 철강, 해운 등에서 큰 수익을 남깁니다.

로스차일드 가문 가계도
특히 영국의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쟁 때 영국 국채 투자로 큰 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뛰어난 정보력으로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의 승리를 미리 알았다는 겁니다. 영국이 전쟁에서 패한 것처럼 국채를 투매해 가격을 폭락시키고 다시 이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The House of Rothschild)이란 책을 쓴 하버드대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는 이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히려 전쟁의 장기화를 예상했다가 손실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다 - 포도주 전쟁
나다니엘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가문은 와인업계도 진출하는데요. 아무래도 프랑스에 있던 가문의 막내 제임스 로칠드의 관심이 가장 컸습니다. 당시 최고의 와인을 만들던 보르도의 샤토 라피트를 사고 싶어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먼저 포도밭을 매입한 것은 영국에서 금융업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을 일으킨 나탄의 셋째 아들 나다니엘이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근친혼이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영국의 나다니엘은 프랑스의 삼촌 제임스의 딸 ‘샬롯’과 결혼했습니다. 삼촌이자 장인 제임스의 프랑스 회사에서 일하던 나다니엘은 1853년 보르도 지방의 최고급 브랜드 샤토 브란 무통을 사서 샤토 무통 로칠드로 이름을 바꿉니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1855년 제정된 프랑스 보르도 와인등급에서 1등급을 받지 못하고 2등급을 받았는데, 영국인이 샤토의 소유주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습니다.

나다니엘과 사촌지간인 제임스의 아들들도 영국인이 프랑스 와이너리를 산 것을 시샘했다고 합니다.

결국 제임스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부추겨 1등급을 받은 샤토 라피트를 1868년 8월 거액을 주고 매입합니다. 1등급 프리미엄이 붙어 무통 보다 4배나 비싼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임스는 자신이 만든 라피트는 마셔보지도 못하고 매입 후 3개월만에 사망합니다.

필립 드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는 1등급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프랑스 와인업계에선 승급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업계에선 그 배후에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방해가 있었다고 봅니다.

결국 나다니엘의 증손자인 필립 드 로칠드에 이르러서야 무통 로칠드는 1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1973년이니 라피트와 무통은 100년 가까이 서로 ‘으르렁’ 거리며 지냈던 겁니다. 도멘 바론 드 로칠드 라피트를 공동소유하고 있던 에드먼드 로칠드가 자신만의 와인사업을 시작한 것도 1973년 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붕괴
프랑크푸르트, 나폴리, 빈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탈리아 통일,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등 정치격변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다섯 형제들이 유럽의 다섯 나라로 흩어져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부를 일구었지만 국가간 충돌로 형제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1870년 벌어진 독일과 프랑스간 전쟁(보불전쟁)이 대표적입니다. 독일 사업의 수장이던 마이어와 프랑스 사업의 수장이던 알퐁스는 대립합니다. 1차세계대전에서도 영국, 프랑스가 독일,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가문은 분열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던 로스차일드는 거의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은행만 남게 됩니다.

다시 뭉친 로스차일드 - 샴페인 콘코르디아
콘코르디아 샴페인
붉은 방패의 다섯 아들은 마이어 암셀이 죽자 가문의 문장에 아버지의 유언을 각인합니다. 유언의 내용은 콘코르디아(Concordia), 인테그리타스(Integritas), 인두스트리아(Industria)이었습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와 관련 “로스차일드는 가족적 연대(콘코르디아, concordia), 종교에 근간을 둔 덕성(인테그리타스, integritas), 근면(인두스트리아, industria)이라는 독특한 에토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Ethos)를 공동의 가치관으로 봤는데요. 기업으로 치면 기업관, 집안으로 치면 가풍 정도가 될 듯합니다.

나폴레옹 시대 탄생한 로스차일드 가문은 부와 명성을 쌓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어려움도 겪었지만 ‘로스차일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연대, 덕성, 근면이란 ‘가풍’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로스차일드와 로칠드 가문은 2003년 로스차일드 앤 코(Rothschild & Co)로 하나가 됩니다.

라피트, 무통(필립), 에드먼드 로칠드 3개 가문이 함께 모여 만든 바론 드 로칠드의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브뤼’는 가장 기본 샴페인입니다. 이 샴페인을 ‘콘코르디아’라고 부릅니다. 붉은 방패의 후손들이 마이어 암셀의 유언을 받들어 다시 ‘콘코르디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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