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맛 때문에 '달애'로 불리던 한국 토종 과일

가을 산길을 걷다 보면 계곡 주변에서 덩굴을 휘감고 자라는 다래나무를 마주할 때가 있다. 작고 초록빛 열매가 송이송이 매달린 모습은 키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다래는 키위와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 한국 토종 과일이다. 오래전 달콤한 맛 때문에 ‘달애’라 불리던 이 열매는 시간이 지나 ‘다래’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고려시대 가요 ‘청산별곡’이나 ‘동의보감’에도 등장할 만큼 한국인과 오랜 역사를 함께해왔다. 오늘날 키위의 인기에 밀려 다소 잊혔지만, 최근 신품종 개발과 영양학적 가치 재조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래는 과일뿐 아니라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식물이다. 다래에 대해 알아봤다.
다래와 키위, 사촌이지만 다른 매력

다래와 키위는 같은 다래나무과(Actinidia)에 속하는 근연종이다. 키위는 ‘참다래’ 또는 ‘양다래’로 불린다. 뉴질랜드에서 개량돼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반면 다래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자생하는 토종이다.
국내에는 다래, 개다래, 섬다래, 쥐다래 4종이 분포한다. 외형부터 두 과일은 확연히 다르다. 키위는 크기가 크고, 표면에 까끌까끌한 털이 덮여 있어 껍질을 벗겨 먹는다. 다래는 대추만 한 크기에 매끈한 초록색 껍질을 지닌다. 껍질에 털이 없어 씻기만 하면 껍질째 먹을 수 있다. 껍질에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

맛에서도 차이가 있다. 키위는 새콤한 맛이 강하고 달콤함이 뒤따른다. 다래는 새콤함과 특유의 부드러운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첫서리를 맞고 잔주름이 생길 때 수확하면 단맛이 극대화한다. 키위는 후숙 과정에서 단단한 상태에서 부드럽게 익는다.
다래도 후숙이 필요하지만 키위보다 빨리 무르기 때문에 단단할 때 따서 보관하며 먹는다. 크기 면에서 다래는 키위보다 작다. 길이 약 3cm 정도로 한 입에 쏙 들어간다. 이런 특성 덕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키위가 대량 재배와 유통에 최적화된 과일이라면 다래는 소박하지만 깊은 풍미를 지닌 토종 과일이다.
다래의 맛과 영양, 그리고 나물 활용

다래의 맛은 키위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하다. 새콤달콤한 과육은 키위처럼 부드럽고 씨앗의 아삭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후숙된 다래는 단맛이 강해진다. 껍질째 먹으면 살짝 떫은 풍미가 더해진다.
이 떫은맛은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과 관련 있다. 다래는 생으로 먹거나 주스, 잼, 술로 가공해 즐긴다. 특히 다래술은 ‘미후도주’라 불리며 독특한 단맛이 돋보인다. 8월 중순 완숙 전 열매로 다래주를 담그고, 9월 하순에서 10월 초 익은 열매로 생식이나 잼을 만든다.
영양 면에서 다래는 키위를 능가한다. 비타민 A, B1, B6, C, E가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C 함량은 레몬의 10배에 달한다. 피로 회복과 괴혈병 예방에 효과적이다. 저당, 과당, 펙틴, 타닌, 단백질분해효소도 함유돼 있다. 이러한 성분들은 소화를 돕고 염증을 억제한다. 다래 과실은 간암과 자궁경부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보고됐다.

줄기는 위암 세포 억제에 도움을 준다. 다래 수액은 칼슘, 마그네슘, 칼륨이 풍부해 신장병, 골다공증, 당뇨병 예방에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다래가 갈증 해소, 결석 치료, 위장 질환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기록했다.
다래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 전통이 있다. 봄철 부드러운 새순은 살짝 데쳐 간장, 된장, 고추장 양념에 무쳐 먹는다. 데친 순은 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을 지닌다. 나물로 먹을 때는 어린잎과 줄기를 함께 사용한다. 잎은 약간 질길 수 있으니 끓는 물에 30초에서 1분 정도 데치는 게 좋다. 데친 후 찬물에 헹궈 물기를 짜고,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무치면 간단한 반찬이 완성된다.
다래 순 나물은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과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 차로도 활용된다. 어린잎을 살짝 쪄서 비빈 뒤 음지에서 3일 말리고 햇볕에 완전히 건조한다. 말린 잎 5~10g을 600ml 물에 30분 달여 하루 세 번 마시면 과식으로 인한 설사 완화에 효과적이다.
다래의 생태와 재배, 그리고 미래

다래는 한국 전역, 특히 강원도 산간과 계곡 주변에서 자생한다. 배수가 잘되고 물이 풍부한 시냇가나 계곡에서 흔히 발견된다. 내한성이 강해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 덩굴성 식물로 다른 나무에 기대어 자라거나 잔돌이 많은 지형을 선호한다.
6~7월 흰색 매화꽃 모양의 꽃이 핀다.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 피는 자웅이주 식물이다. 열매를 맺으려면 암나무와 수나무가 함께 있어야 한다. 창덕궁 후원에는 천연기념물 제251호로 지정된 600년 수령의 다래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수나무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
다래의 제철은 9월에서 10월이다. 수확 시기는 용도에 따라 다르다. 완숙 전 8월 열매는 다래주에 적합하다. 생식이나 잼용으로는 9월 하순부터 10월 초가 최적이다. 다래는 뿌리가 지표면 가까이 자라는 천근성 식물이다.
서리와 가뭄에 약하다. 건조기에는 짚이나 풀을 깔아 뿌리를 보호하고 급수를 한다. 장마철에는 배수가 중요하다. 덩굴성 특성상 지주나 선반을 설치해 줄기를 관리한다. 야생에서는 큰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다래 재배는 키위보다 쉽지만 수확량이 적고 과실이 작아 상업적 재배는 제한적이었다. 품종 개량이 이 같은 풍토를 바꿨다. 청산, 광산, 그린하트, 청가람, 새한, 대성, 칠보, 오텀센스 등 다양한 품종의 다래가 육성됐다. 이들 신품종은 맛과 크기 면에서 키위에 뒤지지 않는다.
다래는 과거 곡우 무렵 수액을 ‘곡우물’로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줄기와 잎은 구충제로 사용됐다. 나전칠기 연마용 숯으로도 활용된다. 다래 숯은 흠집 없이 매끄럽게 연마된다. 최근 신품종 보급과 영양학적 가치 재조명으로 다래 시장이 커지고 있다. 슈퍼마켓에서 쉽게 만날 날도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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