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시골 근황 "아기 낳으면 축하 현수막 걸어드려요" 

[땅집고] 지난해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3리 일대에 내걸린 아이 탄생 축하 현수막들.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사랑스러운 아기천사 탄생을 축하합니다! 우리 모두 널 지켜줄게~”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3리. 총 인구가 178명인 지방 소도시인 이 곳에 지난해 독특한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문석훈·조혜진 부부의 사랑스런 둘째 아들 탄생을 축하합니다-이원면 지역발전협의회’,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만 주렴-이원초등학교 학부모·교직원 일동’ 등이라고 적힌 현수막이다.

이 같은 현수막이 하나도 아니고, 동네 곳곳에 여러 개가 곳곳에 설치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 통해 퍼지면서 네티즌 눈길을 끌었다. 한 가정에서 자녀가 탄생한 사실을 온 동네 주민들이 나서서 축하해주는 것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원면에 아이가 태어난 것이 2년 만이라 지역에서 큰 화제가 된 것.

[땅집고] 지난해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3리 진입로에 내걸린 득남 축하 현수막. /이원면

이원면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7000여명이 사는 동네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인구가 2182명까지 줄어 태안군 일대에서도 사람이 가장 적은 곳으로 전락했다. 최근 4년간 사망신고가 111건인데 출생신고는 2건일 정도로 인구 감소가 뚜렷한 지역이다. 주민 평균 연령은 55세인데, 80살이 넘지 않으면 노인회관에서 노인으로 쳐주지도 않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 2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원면 관계자들과 동네 주민들이 사비까지 들여 현수막을 걸고 일동 축하에 나선 것이다. 현수막에 적힌 게시 주체를 보면 내3리 주민 일동, 이원면 지역발전협의회, 주민자치회, 이원초등학교 학부모·교직원 일동, 이원면사무소 등 지역 구성원 모두가 ‘총 출동’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수막에 등장한 아기의 부모인 문석훈·조혜진 부부는 2020년 이원면으로 귀촌해 펜션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첫째 아들을 낳은 이후, 2023년 둘째를 출산한 것이다. 아빠 문석훈씨는 “퇴원해서 오는 길에 현수막들이 많이 걸려 있길래 갑자기 제 이름이 있는 것 같아서 ‘어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너무 붙어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은배 이원면장은 "2년 만에 우리 지역에서 아이가 출생해 지역 모두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며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땅집고] 지난해 경남 합천군 대병면 면사무소에서 열린 문재동 성리3구 이장의 넷째 딸 탄생 축하하는 이벤트. /대병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다보니, 이원면처럼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축하 현수막을 내거는 지역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남 해남군 북일면 갈두마을에서 이형민·심은정 부부의 아기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북일면에서 2년 만에 출생신고가 이뤄진 것이다. 같은 기간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선 문재동 성리3구 이장의 넷째 딸 탄생을 축하하는 이벤트가 면사무소에서 열리기도 했다.

한편 지방 소도시마다 출생률이 바닥 수준이다 보니 지역 주민센터 직원들은 웃지 못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근무하면서 출생신고 처리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자리를 바꾸는 직원들이 많아, 어쩌다 한 번 아이가 태어나 부모가 출생 신고하러 오는 경우 관련 행정 절차를 몰라 쩔쩔매는 것.

실제로 충북 단양군 단성면사무소에선 아이를 출산한 부모가 오전에 출생 신고하러 방문했는데, 담당 직원이 ‘출생아 수가 워낙 적다 보니 그동안 업무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고 고백한 사례가 알려졌다. 부모가 오후가 다시 방문하니, 면사무소 직원 서너 명이 우르르 나와 출생 신고와 함께 양육수당 등 각종 지원금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도와줬다고 전해진다. 

글=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