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성장시키면 나 자신도 성장합니다”

김현미 기자 2024. 10. 8. 09: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 속으로] 미용계 창업 신화에서 인생 멘토로…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 매출 3000억 대표의 애창곡 ‘내 곁에 있어주’
● 생각의 크기를 바꾸는 ‘구라뻥’과 ‘쌔벼와’
● “뭘 배웠니?” 대신 “뭘 가르칠 거니?”
● 결심하면 실행하라 ‘윤선 스타일’
● 생계형 미용을 미용산업으로 만든 창업 신화
● 해외지점 골라가며 근무하는 ‘글로벌 준오’ 시대
●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좋은 동반자를 만나는 것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는 열일곱 살에 미용을 배우고, 스물두 살에 준오미용실을 열어 올해로 창립 42주년을 맞았다. ‘준오 십계명’의 첫째가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다. [지호영 기자]
"저는요, 노래를 불러도 건배사를 해도 오직 한 가지 메시지만 말해요. 내 곁에 있어주."

이직률 높기로 유명한 미용업계에서 유독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은 이유를 묻자 강윤선 대표는 노래로 대답을 대신했다. 1970년대 중반 가수 이수미가 불러 대히트를 한 노래 '내 곁에 있어주'다.

‘나는 네가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지. 풀밭 같은 너의 가슴에 내 마음은 뛰어놀았지. 내 곁에 있어주. 내 곁에 있어주. 할 말은 모두 이것뿐이야. 내 곁에 있어주. 내 곁에 있어주.'

도대체 매출 3000억 원대 기업 대표가 왜 마이크만 잡으면 직원들 앞에서 '내 곁에 있어주, 할 말은 모두 이것뿐이야'를 외치는 걸까. 강윤선에겐 3200여 명의 '준오맨(남녀 불문 준오헤어 임직원을 아우르는 말이다)'이 함께 꿈을 이뤄나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면 나 자신도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다.

‘미용계 창업 신화' 강윤선과 '대한민국 미용 사관학교' 준오헤어는 이미 한쌍처럼 굳어진 말이 됐다. 1960년생 강윤선은 열일곱 살에 무궁화고등기술학교에 들어가 미용을 배웠고, 스물두 살에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 준오미용실 간판을 걸었다. 올해로 창립 42주년을 맞은 '준오헤어'는 국내 지점 173개, 직원 3200여 명, 연매출 3000억 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1월 필리핀 클락 1호점을 시작으로 보니파시오 2호점을 계약했고, 8월에 태국 방콕점을 열었다. 마카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두바이, 파리, 뉴욕점까지 준비 중이어서 꿈으로만 그리던 '글로벌 준오' 시대가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태어나고 보니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한 거예요"

사람들은 묻는다. 수중엔 달랑 50만 원뿐이고 미용실엔 금기와 같은 2층에 임대 보증금이 없어 2년간 일수(매일 일정 액수의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는 방식)를 찍던 그가 어떻게 매출 수천억 원대 기업을 일궈냈을까.

"태어나고 보니까 우리집이 너무 가난한 거예요. 얼마나 가난했냐면 1973년 미동국민학교 졸업생이 1000명 정도 됐는데 그중 딱 두 명만 중학교에 못 갔어요. 그중 한 명이 저고, 다른 한 명은 고아원 친구였어요."

중학교 원서 값 600원이 없어서라고 했지만 등록금도 없고, 교과서 대금도 없고, 교복 살 돈도 없었다. 아등바등 진학한들 어차피 계속 다니기 힘든 살림살이라는 것을 열세 살짜리도 모르지 않았다.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에게 정규학교는 사치였다. 대신 전수학교라 불리던 야간학교를 다니며 낮에는 사환으로 일해 생활비를 보탰다. 그사이 늘 허리가 아파 일하러 가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연탄 배달, 공사장 잡일까지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를 꾸렸다. 야간 여상에 다니던 윤선은 하루빨리 경리로 취직해 엄마를 도울 생각에 열심히 부기 공부를 했다. 하지만 타고난 미모에, 꾸미기를 좋아하고, 불에 달군 연탄집게로 친구들 머리카락을 말아주던 손재주 많은 열일곱 살 소녀에게 운명은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그 무렵 가수 혜은이의 '깻잎 머리'가 유행했어요. 그 스타일을 너무나 해보고 싶어서 동네 작은 미용실에 갔죠. 그날 한 손님이 미용실에 보따리를 맡아줄 수 없냐고 부탁했는데 미용실 주인이 야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봤어요.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보따리를 맡아주기만 하면 고객이 될 텐데.' 그러다 문득 '미용을 한번 배워볼까? 언제든 보따리를 맡길 수 있는 친절한 미용실을 열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결심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윤선 스타일'이다. 얼마 후 다니던 상고를 그만두고 1년제 기술학교에 들어갔다.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미용실에 나가 실습을 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기술을 연마했다. 어느새 윤선의 가슴속에는 '내 미용실을 갖고 싶다'는 더 큰 꿈이 자라고 있었다.

머지않아 구멍가게 같은 미용실을 차리고 '고추잠자리'라는 간판을 걸었다. 당시 유행하던 조용필 노래 제목에서 따오긴 했지만, 최고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는 그에게 흡족한 이름은 아니었다. 미용은 '아름다움'이 아닌가. 아름다움의 상징인 그리스신화의 여신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기왕이면 여신 중에서도 최고인 헤라를 찍었다. 1982년 헤라의 로마식 이름인 준오(JUNO)에서 딴 미용실, 훗날 준오헤어가 탄생했다. 이 무렵 미용업계에서 만난 김현철(현 준오헤어 사장) 씨과 결혼해 딸 하나, 아들 둘을 얻었다.

기술 전수는 밥그릇 뺏기가 아니라 밥상 키우기

4월 20일 서울 서초동 aT센터에서 열린 준오아카데미 60기 수료식. 상반기 트렌드 발표와 함께 60기 190명이 2년 반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식 디자이너로 데뷔하는 날이다. [유튜브 채널 준오아카데미 캡처 ]
준오헤어가 지점을 하나씩 늘리며 자리를 잡아가던 1992년 그는 '준오아카데미'라는 첫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준오아카데미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인턴을 선발해 2년 반 동안 훈련과 승급 시험을 거쳐 정식 디자이너로 키워내는 미용 전문 교육과정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준오아카데미는 한 해도 거르지 않았고 교육과정을 운영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60기 190명의 디자이너를 배출했다. 이렇게 매년 400명 가까운 디자이너가 이곳에서 배출된다. 2015년 강남구 청담동에 신축한 지하 3층 지상 8층 건물을 통째로 준오아카데미에 내준 것만으로도 강 대표의 머릿속에 교육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용은 도제식이잖아요. 선배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한 기술을 후배들에게 안 가르쳐주려 해요. 기술을 전수하면 밥그릇을 뺏긴다고 생각하죠.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후배를 키워야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가 준오의 철학이자 문화예요. 막 입사한 인턴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턴을 구한 게 아니야. 너희는 미래의 리더야'라고."

특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강 대표는 기본기를 강조한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이익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있거든요. 고객들에게 준오에 가면 적어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면 기본기가 중요해요. 미용은 과학입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그다음이죠. 기본기는 구구단처럼 정확해요. 예를 들어 단발의 일자머리 자르는 것과 머리의 '섹션' 뜨는 게 굉장히 중요한 기본기예요. 머릿결과 숱에 따라 촘촘한 빗을 쓸지 엉성한 빗을 쓸지 달라지죠. 그러려면 두상을 공부해야 해요. 커트를 한 첫날도 예쁘지만 날이 갈수록 예쁘면 그 머리는 잘한 거예요. 두상에 맞게 과학적으로 잘랐다는 얘기죠. 하나 더 말씀드리면 사람의 얼굴은 두피에서부터 늙어요. 보이지 않는 두피의 주름이 중력에 의해 흘러내리면서 얼굴 전체가 처지는 거죠. 이런 원리를 알고 나면 고객의 머리를 더 예쁘게 하기 위해 두피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카데미에선 이런 기초교육을 철저히 합니다."

그는 "내가 늙어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직원들을 성장시켜야 한다"며 웃지만 "다른 욕심은 없어도 직원들을 키우는 데는 엄청난 욕심이 있다"는 말은 진심이다. 1993년 여름, 서른세 살 강윤선은 매장에 최소 인력만 남기고 직원 19명을 데리고 영국 '비달 사순 아카데미' 연수를 감행했다. 비행기 값과 교육비, 체류 비용은 남편 몰래 돈암동 집을 판 돈으로 충당했다. 연수를 위해 포기한 두 달치 매출까지 감안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전세살이를 할지언정 주먹구구로 미용 기술을 배운 한을 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강윤선 준오헤어 대표. [지호영 기자]

"문익점처럼 '쌔벼와' '구라뻥' 많이 까라"

누구도 못 말리는 강윤선의 두 번째 승부수 역시 통했다. 연수를 마친 직원들은 선진기술을 습득했을 뿐 아니라 헤어디자이너로서 직업적 자부심까지 충전해서 돌아왔다. 자신들이 얻은 소중한 기회를 감사히 여겼고, 그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며 더 큰 리더로 성장했다. 그들 손에서 전국 어느 매장에서나 공통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준오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교육에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는다'가 준오의 원칙이에요. 대신 저는 연수하러 해외에 나가는 직원들에게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처럼 쌔벼와(훔쳐와)'라고 해요. 그들이 돌아오면 '뭘 배웠니?'라고 묻지 않고 '뭘 가르칠 거니?'라고 물어요. 질문이 중요해요. '뭘 가르칠 거니?' '어떻게 가르칠 거니?'라고 물으면 하다못해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쌔벼오거든요. 덕분에 예전에는 우리가 비달 사순으로 배우러 갔는데 이제는 해외에서 우리한테 배우러 오잖아요."

공 들여 키운 직원이 그만두고 경쟁업체로 가거나 독립을 하면 손해가 아니냐고 묻자 강 대표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어느 동네 미용실 문 앞에 '준오 출신'이라고 붙여놓은 걸 봤어요. 흐뭇하더라고요. 이런 방식으로도 준오를 홍보해 주는구나 싶었죠."

강 대표의 입에서 '쌔비다'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말이 '구라뻥'이다.

"평소 직원들에게 '구라뻥을 많이 까라'고 해요. 구라뻥이 입에서 안 나오니까 성공하지 못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너의 꿈이 뭐니?' '너의 목표가 뭐니?' 하고 물으면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표님 우리는 그렇게 못해요. 할 수 없어요'라는 부정적인 말이 먼저 튀어나오죠. 구라뻥은 생각의 크기를 바꿔놓아요. 생각을 크게 한다고 해서 적게 하는 것보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단 입으로 나오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 태도가 바뀐다는 것을 저는 지난 40년간 경험했으니까요."

준오헤어 1호점을 내고 찾아오는 손님이 없을 때 건물 외벽에 "지구를 한 바퀴 돌더라도 저희가 매만진 머리가 결코 부끄럽지 않게 하겠습니다"라고 쓴 큼지막한 현수막을 걸 만큼 그는 배짱이 있었다. 10여 년 전 전국 매장 70여 개, 직원 2000여 명 시절에도 그는 호기롭게 "200호점을 내고 연봉 1억 원 이상 받는 직원을 300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라고 '구라뻥'을 깠다.

말로 했더니 결과가 따라왔다. 2014년 100호점을 달성했고, 2024년 연내 200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현재 직원 3200여 명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근속자만 379명, 연봉 1억 원 이상 디자이너도 300명이 넘는다. '쌔비다'와 '구라뻥'의 힘을 강 대표만큼 온몸으로 증명한 사람도 없다.

장기근속 비결? 10년 뒤 떠올리며 설레게 하는 것

강윤선 대표의 집무실은 청담동 준오아카데미에서 200m쯤 떨어진 '애비뉴준오' 5층에 있다. 복층식 구조라 천장이 낮은 편인 그의 집무실은 기업 대표의 사무 공간이라기보다 수험생의 방처럼 소박하고 아늑하다. 문도 없어서 이름만 부르면 계단 아래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인 점도 특이하다. 소파 대신 널찍한 나무 탁자를 가운데 두고 벽면의 낮은 책꽂이에는 손때가 묻고 포스트잇이 붙은 책들이 촘촘히 꽂혀 있다. 남은 벽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메모가 붙어 있다. 이 공간에서 지금 강윤선은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준오헤어에 1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많은 것은 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본 많은 어린 선수들이 스케이팅을 시작한 것처럼, 준오에서는 성공한 선배들을 보면서 안심하고 자신의 목표를 세울 수 있어요. 막연하니까 힘든 건데 준오에는 확실한 롤모델이 있잖아요. 저는 30년 전 직원들에게 10년 이상 근무하면 매장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것이 비전이었죠. 함께 여행을 다니고, 정기적으로 교육을 하고, 세계 무대로 내보냈더니 직원들의 꿈도 점점 커졌어요.

만약 너는 평생 머리만 만지고 살라고 하면 얼마나 숨이 막히고 힘들겠어요. 그런데 헤어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메이크업이나 인테리어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 가르치는 일에 더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어요. 준오에서는 경영도 할 수 있고, 교수가 될 수도 있고, 트렌드 강사가 될 수도 있고, 리더십 강의를 할 수도 있고, 프레젠테이션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외국에서 일할 기회도 있죠. 저 역시 헤어디자이너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경영을 하고 있잖아요. 이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5년 후 10년 후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며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것, 그런 설렘을 만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죠."

강 대표는 최근 해외 진출이라는 또 다른 승부수를 두었다. 올해 초 문을 연 첫 해외 직영 매장 필리핀 클락 1호점은 정식 개장 전 예약 손님만 300명이 넘었다. 하루 평균 60~70명씩 찾아오고, 월 매출은 1억8000만 원이 넘는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매장인데도 온 가족이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와 다시 두세 시간을 기다려도 불평 하나 없는 브랜드 충성도에 오히려 직원들이 더 놀란다. 클락 1호점이 딱 4개월 만에 본궤도에 오르자 곧바로 보니파시오 2호점을 계약했다.

"최고의 전략은 꾸준함, 어느날 갑자기는 없어요"

"모든 일에서 어느 날 갑자기는 없어요. 한 번의 대형 산업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29번의 경미한 재해, 300번의 작은 징후가 있다고 하잖아요.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큰 성공 뒤에는 29번의 작은 성공과 300번의 작은 징후가 있는 것이죠. 준오는 30년째 헤어쇼를 하고 있고, 30년째 독서 경영을 하고 있어요(매달 넷째 주 토요일 오전 7시에 모여 독서 토론을 하는데 책값의 절반을 회사가 지원한다). 대기업도 아니고 미용업을 하면서 한 달에 수천만 원씩 책값을 쓰는 회사가 있을까요. 월 매출 4000만 원 이상 달성하는 하이퍼포머들과의 조찬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도 400명을 돌파했어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차이와 가치를 만드는 최고의 전략은 꾸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하면 안 되는 게 없어요. 잘하고 못하고는 능력의 차이라기보다 시간의 차이죠. 4월 서울에서 열린 준오아카데미 60기 헤어쇼를 보기 위해 일본, 중국, 태국, 대만 등 8개국에서 1200여 명이 왔어요. 지난 20년간 준오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수많은 외국인들, 한 번이라도 우리 서비스를 경험한 외국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에 가면 꼭 준오에서 머리를 해라, 제품 꼭 사와라'라고 해요. 요즘 서울 명동의 우리 매장엔 90%가 외국인 고객입니다. 관광객 사이에서 필수 코스가 됐죠. 이제는 현지에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 해요."

필리핀 직영점을 내면서 그는 한국인 디자이너 15명을 파견하고 필리핀 현지 스태프도 고용했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역할은 고객 응대뿐 아니라 필리핀 스태프들을 '준오 스타일'로 교육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강 대표는 5년 정도 지나면 필리핀 스태프들이 독립적인 디자이너가 될 것을 기대한다. 10년 정도 지나면 거꾸로 그들이 한국에 와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역시 새로운 비전이다. 해외 직영점이 생긴 뒤 한국인 직원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일하고 싶다는 한 직원의 요청이 있자 그는 한국에서 20일, 해외 지점에서 10일씩 일하는 새로운 근무 방식을 도입했다.

"글로벌로 진출하는 이유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직원들이 달라졌다는 게 더 큰 이유입니다. 42년 전만 해도 미용 기술을 배우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어요. 미용사가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으면 '학벌 있네'라고 할 만큼 생계형 일터였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대학에 미용 관련 학과가 150개가 넘고 석사, 박사학위 소지자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들은 좋아서 미용에 뛰어들었어요. 공정하다고만 느끼면 밤새워 일하는 것은 문제가 안 돼요. 열정도 실력도 정신력도 다 갖췄어요. 게다가 젊은 친구들은 영어를 잘해요. 습득 능력도 뛰어나서 필리핀에 간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 고객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더라고요. 미용은 기본적으로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언어 능력이 중요합니다. 우리 직원들이 이처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리더의 좌우명 '힘든 일은 남에게'

강 대표는 자칭 '아웃소싱' 전문가다.

"‘힘든 일은 남에게'가 제 좌우명이라고 하면 모두 웃어요. 그러나 리더는 남의 지혜를 빌리는 사람이어야 해요. 리더는 다른 사람들이 따르는 사람이어야 해요.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이에요. 리더는 혼자일 때도 잘하지만 다른 사람과 일할 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리더에겐 리스크에 대한 회복탄력성도 필요하죠. 경력이 오래됐고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경영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경험적으로 보면 가만히 있어도 손님이 오고, 매출이 올라가는 입지 좋은 매장에선 '스타'가 안 나와요. 이들은 여건이 조금 나쁜 곳으로 옮기면 맥을 못 춰요. 반대로 좋지 않은 여건에서 잘 꾸려나가는 사람을 좋은 장소로 옮기면 완전히 물 만난 고기가 돼요. 리더는 냉정해야 해요. 저도 처음에는 일한 지 오래니까 미안한 마음에 매장을 맡겨보기도 했어요. 결국 회사도 개인도 모두 손해였어요. 성공 비결도 장소가 아니라 사람에게 있습니다."
1월 3일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준오헤어 시무식. 전국의 준오맨 3000여 명이 모여 대학 축제 같은 행사를 열었다. [유튜브 채널 준오아카데미 캡처]
‌올해 초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준오헤어 시무식은 대학 축제장처럼 젊음의 활력이 넘쳤다. 전국 각지에서 준오맨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강 대표는 '누구와 함께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밭에 나는 쑥'이라는 뜻으로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꼿꼿하게 자라듯이 좋은 사람과 사귀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즉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성장 궤도가 변하고 당신의 성패가 결정됩니다. 부지런한 사람과 함께하면 소극적이지 않습니다. 현명한 사람과 함께하면 평범하게 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함께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은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직장에서 좋은 선배와 일하는 것이며, 좋은 동반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우리는 오늘 강윤선이라는 동반자를 만났다. 그는 입을 떼지 못해 여전히 망설이는 이들의 등을 떠밀며 이렇게 말한다.

"스타트에서 '트'를 빼면 스타잖아요. 결심했다면 당장 실행하세요."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Copyright © 신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