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모리 반도체 설계 기업 제주반도체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동원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다. 최근 외형 확장을 이어가면서 매출 확대에 따라 늘어난 원자재 확보 부담과 차세대 제품 개발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셈법이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반도체는 450억원 규모의 9회차 사모 CB와 각각 620억원, 100억원 규모의 BW 2건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총 117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는 셈이다. CB의 전환가액과 BW의 행사가액은 모두 4만4300원으로 책정됐다. 이번에 발행되는 주식수는 전환·행사가액 기준으로 각각 CB 101만5801주, BW 162만5281주다. 합산하면 약 264만주로 기존 발행주식 총수의 7.7%에 해당한다.
발행 조건은 회사에 유리하게 설정됐다. 이번 CB와 BW는 표면이자 0%, 만기이자 2%로 책정돼 제주반도체가 조달 과정에서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크지 않다. 이와 함께 발행 1년 뒤부터 30% 한도 내에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어 일부 물량에 대한 방어권도 확보했다. 다만 전환가액과 행사가액이 기준주가의 100%이며 리픽싱도 가능한 만큼, 주가 하락시에는 기존 주주 입장에서 희석 부담은 변수로 남는다.
제주반도체는 조달한 자금 전액을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CB 450억원은 반도체 원자재인 웨이퍼 구입 300억원, 연구개발비 150억원에 투입될 예정이다. BW 720억원도 원자재 구입 600억원, 나머지 120억원은 연구개발에 쓰인다. 단순 운전자금 확보보다 원자재 선확보와 연구개발 확대에 초점을 맞춘 조달로 해석된다.

제주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 증가를 발판 삼아 외형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간 연결 기준 매출은 3022억원으로 전년(1623억원) 대비 8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358억원, 391억원을 기록해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영업활동현금흐름 또한 2024년 97억원 순유출에서 255억원 순유입으로 양수전환에 성공했다.
매출 증가의 배경에는 자동차·5G 사물인터넷(IoT)·모바일 부문의 판매 확대가 있었다. 특히 IoT 부문의 매출은 2024년 7501만달러(약 1115억원)에서 1억946만달러(약 1627억원)를 기록해 45.9% 증가했다. 회사 측은 "제품 판매 확대와 함께 미국 관세 영향에 따른 선수요가 증가했다"며 "이와 함께 주요 공급사들의 LPDDR4X 생산 감축으로 발생한 공급 부족이 맞물리며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외형 성장의 반대급부도 뚜렷하다. 제주반도체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매출채권및기타채권은 987억원으로 전년(589억원) 대비 67.7% 증가했다. 이와 함께 단기차입금도 220억원에서 520억원으로 늘어났다. 매출이 커질수록 원자재를 먼저 확보하고 판매 대금을 추후에 회수하는 구조가 이어지며 운전자금 부담도 함께 커진 모습이다.
이번 자금 조달은 회사의 과거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한층 공격적이다. 제주반도체의 연간 연구개발(R&D) 비용은 2023년 17억원, 2024년 16억원으로 최근 2년간 20억원을 밑돌았다. 같은 기간 유형자산·무형자산 취득액 또한 각각 19억원, 29억원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연구개발 부문에만 27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특히 조달 자금 가운데 원자재 구입 예정액은 900억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현금및현금성자산 772억원을 웃돈다. 보유 현금만으로는 향후 원자재 확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CB·BW 발행은 과거 제주반도체가 발행한 메자닌 가운데에서도 대규모인 만큼, 실제 매출 성장과 수익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는다.
이동현 기자
Copyright © 블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