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 배려·혜택 단물 빼먹는 ‘국적만 외국인’ 금수저 판친다

대출, 교육기관 입학 특혜 등 혜택 다수…정책 허점에 ‘검은머리 외국인’ 고소득층도 활용
[사진=채드윅 송도국제학교]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 특유의 다문화가정 관련 정책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단순히 ‘국적’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정책 허점을 노린 악용 사례가 끊이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정출산을 통해 이중국적을 보유하게 된 부유층 자녀, 또는 손주가 정책 지원금에 교육기관 입학 특혜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해 평범한 가정의 상대적 박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지 성격이 큰 정책인 만큼 경제력 등의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원정출산 부유층 자녀들, ‘서류상 외국인’ 신분 앞세워 다문화가정 혜택 단물만 ‘쏙쏙’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는 유독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이 큰 편이다. 특유의 폐쇄성과 더불어 한국전쟁, 남아선호사상, 인구절벽 등 역사·사회적 요인까지 겹친 결과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은 사회적 차별, 경제적 빈곤, 교육수준 저하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다문화가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겨났고 이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기업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다문화가정 지원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활동 자체를 명문화하는 작업도 함께 이뤄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문화가정 지원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긍정적 평가가 점차 줄고 대대적인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크게 늘었다. 타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사회 변화에 맞지 않는 기준에서 비롯된 악용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 결정적 이유로 꼽혔다.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데다 편법으로 외국 국적을 보유한 한국인도 늘면서 사회·경제적 약자 배려라는 취지와 거리가 먼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 한 지자체에서 실시한 다문화가정 축제 현장.(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일례로 현행 영유아보호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법인, 그 밖의 비영리법인이 설치한 어린이집 등의 1순위 입학 대상에는 다문화가족 영유아가 포함돼 있다. 최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다 보니 대기번호가 100번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1순위 입학 특혜를 받는 다문화가정 기준은 오로지 ‘국적’만 따진다. 경제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혹은 한국인이지만 원정출산 등을 통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도 다문화가정의 범주 내에 포함되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강하나 씨(34·여)는 “인근에 한 건물에 유아 수학·영어 학원이 같이 있어 영어유치원 대신 많이 가는 국·공립 유치원이 있는데 입학 확률이 로또라 부를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며 “그런데 어떤 집은 엄청 부자인데 아빠가 원정출산으로 태어나 외국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부모가정 혜택을 받아 손쉽게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서초구를 비롯해 전국 각 지역 부촌에서 비슷한 일이 빈번하다고 들었다”며 “국적 외에 부모와 조부모 등의 경제 수준도 지원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문화가정은 어린이집·유치원 입학 뿐 아니라 외국인 학교 입학, 대학입학 등에서도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기준은 오로지 ‘국적’ 뿐이다. 외국인 학교의 경우 당초 설립 목적 자체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의 교육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검은머리 외국인’ 자녀도 입학 대상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외국인 학교는 대부분 영미권 교육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또 전국 주요 대학에선 다문화가정 자녀만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특별 전형을 실시하고 있는데 경쟁률이나 커트라인이 일반 전형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국민적 관심 금리·청약도 국적만 외국인이면 파격 혜택…“경제력 등 기준강화 시급”

▲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유치원 내부.(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르데스크

오로지 ‘국적’만 따지는 다문화가정 혜택은 교육·보육 분야 외에도 수두룩하다. △은행 우대금리 지원 △주택지원(특별공급)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시중은행 상품을 이용할 때 다문화가정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더 많이 받고 돈을 빌릴 땐 이자를 더 적게 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조부모가 모두 한국인인데 아빠 또는 엄마만 외국 국적을 가진 가정에서 자녀 이름으로 적금을 드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다문화가정 우대금리 혜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주택청약’ 과정에서도 다문화가정은 혜택을 받는다. 별도의 특별공급 물량이 있기 때문에 당첨 확률이 상당히 높다.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라 국제결혼을 한 경우라면 비싼 분양가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 어려울 순 있으나 재력을 갖춘 부모덕에 편법으로 외국 국적을 딴 ‘금수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직장인 김정원 씨(34·남·가명)는 “어렸을 때 캐나다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는데 부모님이 중소기업 오너다”며 “얼마 전 이 친구가 다문화가족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돼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았고 분양대금을 증여 형식으로 지원받았다는 이야길 듣고 상당히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정 관련 정책은 폐쇄적 문화에서 비롯된 차별·편견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나 구제 차원에서 마련된 ‘복지’ 성격이 큰 만큼 ‘국적’ 기준 외에 ‘경제력’ 기준을 필수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는 이미 국제결혼 자체가 일반화됐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분류 자체가 인종차별을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로 다문화가정 혜택을 폐지하고 저소득층은 복지 정책의 대상에 편입시키는 게 형평성 제고 차원에서 옳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원정출산 등 검은머리 외국인 금수저에 대한 다문화가정 혜택 부여 논란에 대해 명지대 정지윤 산업대학원 국제교류경영학과 교수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복지정책은 현재 소득 기준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혜택이 간절한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뺏기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복지정책을 악용하는 사례를 계속해서 공론화해 법의 사각지대를 줄여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