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금강불괴’가 쌓은 금자탑…이정현은 그렇게 KBL의 역사가 됐다

그뿐인가. 독감에 걸리면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휴식도 필요하다. 그나마 직장인들은 연차를 써서 쉬고 싶을 때 쉬거나 여행도 다녀올 수 있지만, 프로선수들은 쉬고 싶다고 쉴 수도 없다. 개인의 컨디션? 팬들도 이해할 순 있겠지만, 부진이나 결장의 면죄부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원주 DB 베테랑 이정현의 대기록도 더욱 조명을 받는 게 아닐까.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1경기도 빠지지 않고 소화했다니…. 축하의 박수와 함께 그가 걸어온 커리어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 봤다.
※ 기록은 12월 4일 기준이며, 팀명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KT&G-한국인삼공사-KGC인삼공사는 정관장으로 통일했습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과감한 선택을 한 팀들이 있었다. 2024년 대구 한국가스공사가 손준을 4순위로 깜짝 지명했고, 2021년에는 서울 삼성이 1순위 후보로 꼽혔던 이정현(소노)과 하윤기 대신 이원석을 선발하며 팀의 미래를 맡겼다.
이정현 역시 2010년 모두의 예상을 깬 지명 순위로 프로에 입성한 사례다. 이정현이 참가할 당시 드래프트 순위 추첨은 당일 오전에 진행됐다. 이후 팀별 회의를 거쳐 오후에 드래프트가 열렸는데, 안양 정관장은 순위 추첨에서 ‘로또’를 터뜨렸다. 당시 로터리픽은 이전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4개 팀에 주어졌는데, 2008-2009시즌 7위에 그쳤던 정관장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관장은 2009-2010시즌 초반 부산 KTF(현 수원 KT)에 나이젤 딕슨을 넘겨주며 도널드 리틀과 1라운드 우선 지명권을 양도받은 터였다. KTF 역시 이전 시즌 10위에 그쳐 로터리픽 확률을 갖고 있었던 상황. 놀랍게도 KTF에 2순위가 주어졌고, 정관장은 이를 통해 사상 초유의 1, 2순위 독식이라는 행운을 누렸다.
1순위로 지명한 박찬희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초교 시절부터 초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은 박찬희는 부동의 1순위 후보였다. 2순위가 궁금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됐다. 연세대 출신 이정현 역시 송창용과 함께 포워드 랭킹 1위를 다투는 유망주로 분류됐지만, 황진원과 김성철을 보유한 정관장은 빅맨 보강이 필요한 팀으로 꼽혔다.
사령탑이었던 이상범 감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정현을 선발했다. 내부 교통 정리에 대한 계획도 분명하게 세웠다는 말과 함께 이정현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었다. “그때 욕 엄청 먹었다. 심지어 연대 동문들한테도 ‘기왕 그렇게 뽑을 거면 (이)정현이를 1순위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을 정도였다.” 이상범 감독의 회고다.
다 계획이 있었다. 2009-2010시즌이 종료된 후 원주 동부(현 DB)에 황진원을 넘겨주며 빅맨 김명훈을 영입했다. 중복 자원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포지션도 보강한 것. 드래프트 당시부터 염두에 둔 한 수였고, 한편으로는 이정현이 마음껏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 ‘판’도 깔아준 트레이드였다. 덕분에 이정현은 데뷔 시즌부터 전 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
단순히 경험치만 쌓은 게 아니다. 신인 최다인 평균 13점 3점슛 1.5개(성공률 39.3%)에 2.7리바운드 2.8어시스트 1.3스틸을 곁들이며 자신을 향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신인상은 선의의 경쟁자 박찬희에게 내줬지만, 정관장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데뷔 시즌이었다.
“다른 팀에 선발됐다면 순위가 많이 밀렸을 것 같다. 가드, 센터가 필요한 팀이 왜 포워드 뽑았냐는 얘기가 나와서 본의 아니게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덕분에 독하게 마음먹고 10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2번을 소화할 수 있는 몸도 만들었다”라며 데뷔 당시를 회상한 이정현은 “느리다는 평가도 있었고, 대학 시절에 보여준 것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독을 품고 칼을 갈았다. 이후 잘 뽑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돌아보면 입단할 때 지적을 받은 게 단점을 보완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정관장이 호화 전력을 구성한 후에도 이정현의 가치는 두드러졌다. 김태술과 양희종이 전역하고, 오세근이 입단한 2011-2012시즌. 이정현의 역할은 식스맨이었다. 54경기 가운데 47경기에 교체 출전했지만, 게임체인저 역할을 도맡았다.
당시 정관장은 김태술과 박찬희를 선발로 내세워 강력한 풀코트프레스로 경기를 시작하고, 이정현을 교체 투입한 후 공격력 강화로 활기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데뷔 시즌보다 평균 6분 이상 출전시간이 줄어들었으나 김태술, 박찬희와 페어링을 이루며 정관장의 선두권 싸움에 힘을 보탰다. 2025-2026시즌 전까지 유일하게 한 자리 득점(9.5점)에 그친 시즌이었지만, 이정현은 식스맨상을 수상하며 벤치 에이스로 공인받았다.

2016-2017시즌 2라운드 MVP로 선정되며 정관장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스코어러로 공인을 받았고, 서울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역사에 남을 명장면까지 만들었다. 정관장이 3승 2패로 앞선 6차전 종료 5.7초 전. 김승기 감독이 2대2를 지시했지만, 이정현은 “2대2 하면 스위치 하니까(위치를 직접 지정하며) 여기서 1대1 할게요”라며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김승기 감독 역시 이를 받아들였고, 이정현은 작전대로 돌파 득점에 성공했다. 정관장에 V2이자 창단 첫 통합우승을 안긴 위닝샷이었다. “값진 경험이었지만 시련의 시간도 있었다. 구설수에 오르고, 야유도 받아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그걸 뛰어넘게 해준 위닝샷이었다. 경기에 임할 때의 자세나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도 셀 수 없이 많이 돌려봤다(웃음). 다시 봐도 재밌고 뿌듯하기도, 신기하기도 하다.”

데뷔 후 전 경기에 출전하는 내구성, 빅게임을 마무리할 수 있는 해결사 능력까지. 이정현은 정관장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며 생애 첫 FA 자격을 취득했다. 드래프트에서 자신을 선발한 이상범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DB, 전주 KCC(현 부산 KCC)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이정현은 KCC를 새로운 행선지로 선택했다.
계약 조건은 5년 첫 시즌 보수 9억 2000만 원. 이는 당시 발표 금액 기준 역대 최고액이었다. KCC는 당시 또 다른 FA 대어도 장바구니에 담아뒀지만, 이정현이 지닌 내구성은 팀이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전 시즌 하승진(2경기)과 전태풍(5경기)이 일찌감치 시즌아웃되며 시즌을 그르친 경험이 있는 만큼, 공백기 없는 이정현과 함께한다면 팀 전력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거액을 베팅했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상범 감독님이 계셔서 고민했지만, DB는 리빌딩이 필요한 팀이었다. 반면, KCC는 당장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라 고민 끝에 선택했다. 그 정도 금액에 사인할 수 있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부담감도 있었지만, 가치를 인정받아 기분 좋았다.” 이정현의 회고다.
위기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KCC와 계약을 맺은 후 4개월, 시즌 개막까진 약 1개월 남았던 2017년 9월. 연습경기 도중 착지 과정에서 무릎 부상을 당한 것. 이정현이 프로 커리어를 돌아보며 꼽은 가장 아찔한 장면이었다.
이정현은 “시즌 개막까지 6주밖에 안 남았는데 전치 8주가 나왔다. 젊었을 때라 회복이 빨랐던 만큼 빨리 복귀한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꼭 기록을 위해서 복귀하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기적적으로 개막전부터 뛸 수 있었다. 700경기를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라고 돌아봤다.

정관장 시절에 그랬듯, 단순히 꾸준히 코트를 밟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정현은 이적 2년 차였던 2018-2019시즌에 커리어하이인 17.2점을 기록했다. 여기에 3.1리바운드 4.4어시스트 1.3스틸을 곁들이는 등 수비와 팀플레이에서도 농익은 경기력을 뽐냈다. 덕분에 KCC는 시즌 초반 추승균 감독을 경질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빠르게 팀 분위기를 수습했고, 1~2라운드 부진을 딛고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며 ‘2인자’ 꼬리표도 뗐다. 이정현은 기자단 투표에서 109표 가운데 76표를 획득, 12표에 그친 함지훈과 이대성(당시 현대모비스)을 여유 있게 따돌리며 정규시즌 MVP의 영예를 안았다. KBL 출범 23년 차에 정규시즌 1, 2위 이외의 팀 선수가 MVP로 선정된 2번째 사례였다(최초는 2008-2009시즌 주희정이었다. 주희정은 플레이오프 탈락 팀 선수로는 최초로 정규시즌 MVP에 선정됐다).
이정현의 MVP 등극에 남다른 의미가 담긴 이유는 또 있었다. 식스맨상을 거쳐 MVP를 차지한 건 함지훈에 이어 이정현이 2번째였다. MVP 후 식스맨상을 수상한 주희정, 김주성과는 의미가 다르다. 벤치멤버로 출발한 선수라도 꾸준히 가치를 증명하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이정표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2016-2017시즌에 MVP(오세근)로 선정되지 못해 서운했다. 당시에는 내가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착각이자 오산이었다. 더 성숙해진 계기였고, MVP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좋은 팀에서 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신 단장님, 내 중심으로 전술을 짠 감독님, 내가 더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준 동료들 덕분에 MVP가 될 수 있었다.” MVP로 선정된 직후 이정현이 남긴 말이었다.

늘 탄탄대로만 걸을 순 없는 법. 데뷔 후 11시즌을 치르는 동안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게 3시즌(2019-2020시즌은 코로나19 여파로 미개최)에 불과했던 이정현은 삼성에서 뛰었던 3시즌 모두 최하위의 멍에를 썼다. 전성기에서 내려온 시점이었던 데다 팀 내에 부담을 덜어줄 조력자도 많지 않았던 탓에 매 시즌 3점슛 성공률도 30% 미만에 그쳤다.
기본적인 전력이 탄탄하지 않은 팀이라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이 와중에도 경기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정현은 삼성에서도 전 경기를 소화했고, 매 시즌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며 고군분투했다. 덕분에 데뷔 후 3번째 FA 자격을 취득한 후에도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다. 2017년에는 DB 대신 KCC를 택했지만, 돌고 돌아 초록색 유니폼을 입었다.

이정현은 “500, 600경기까지 채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15년 동안 700경기라고 하니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웃음). 기록이 중단된다 해도 전혀 아쉽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대한 욕심보단 이를 동기부여 삼아 운동을 더 열심히 해왔다. 농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할 수 있는 데까진 최대한 건강하게 뛰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정현은 “건강한 몸을 물려준 부모님 덕분”이라며 자신을 낮췄지만, 숱한 유혹과 위기 속에서도 코트에 서겠다는 마음가짐만큼은 잃지 않으며 15년의 커리어를 채워왔다. 이제 몇 경기 연속이라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출전 자체가 KBL의 역사다. 이정현이 자신의 바람대로 은퇴하는 순간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코트를 누빌 수 있길 점프볼도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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