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안 팔리지”…‘오픈런’이라더니 재고 쌓이는 이것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3. 3. 1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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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대목에도 와인 위축
물가 오르자 ‘사치재’ 취급 받아
“병목현상” vs “노란불 켜졌다”

“연말까지 계속 이러면 작은 회사들부터 문 닫죠.”

국내 한 와인 수입사에서 근무 중인 직원 A씨는 최근 한국 와인시장 동향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연신 많은 물량을 해외에서 들여왔는데 출고되지 않은 재고가 점점 쌓여간다는 것이다.

A씨는 “아직 빨간불까지는 아니다. 노란불 정도”라면서도 “몇 년 동안 잘 켜져 있던 초록불이 꺼진 터라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량이 중요한 게 아니다. 출고되는 양이 많이 줄었다”며 “지금 같은 영업 부진이 이어지면 정말 큰일”이라고 우려했다.

서울 소재 한 백화점에서 열린 대규모 와인 할인 행사에서 시민들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와인 수입사 출고량 급감…고물가에 수요↓
와인 시장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확산 후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에 힘입어 급성장을 거듭했던 시장이 지난해 말께부터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요가 예년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주류업계가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13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규모 와인 수입사 B사의 이달 제품 출고량은 전년 동기보다 40%가량 감소했다.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레드 와인과 샴페인 등이 대거 출고됐어야 할 대목이지만, 도리어 재고가 쌓였다는 게 B사의 설명이다.

유통 빅3에 모두 납품하는 1세대 와인 수입사 C사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C사는 자사가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당분간 자사 제품만을 판매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에는 타사에서 수입한 제품이더라도 인기가 많으면 함께 판매해왔는데 이를 중단했다.

승승장구하던 와인 수입사들이 돌연 긴장한 건 무엇보다 고물가 현상으로 가정시장의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한 물가상승이 올해에도 이어지면서 ‘와인은 곧 사치재’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

와인은 위스키 등 가격대가 비슷한 다른 수입주류보다 관리가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위스키 마니아들처럼 장기간 비축하기보다는 구매해서 곧바로 가정 내에서 소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주류업계 관계자 D씨는 “가정에 전용 냉장고까지 있는 소비자가 아닌 이상 와인은 장기 보관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다 놓고 보는 게 아니라 마셔서 없애는 식”이라며 “체감하는 소비량이 (일반 주류보다) 더 많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반적인 생활비가 늘어난 상황에서 이상 기후로 생산량이 급감한 것도 문제다. 여기에 인건비와 원부자재 가격까지 맞물리면서 북미와 유럽, 호주 등 현지에서부터 출고가가 오른 것. 상승분이 국내 소비자가격으로 이어지면서 판매량은 저조해졌다.

지난해 11월 서울 소재 한 백화점에서 열린 대규모 와인 할인 행사에서 시민들이 와인을 고르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문 닫는 동네 와인샵…영업 부진 이어지나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건 팬데믹 기간 와인샵을 창업한 소매상들이다. 전문성 부재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와인을 대거 들여놨다가 가게 문을 닫는 일이 부지기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 D씨는 “기존에 와인샵이나 리큐르 스토어 등 소매상에 10팀이 방문했다면 지금은 3팀 정도만 오고 있다”며 “매장 규모가 큰 곳도 매출 감소로 허덕일 판이니, 우후죽순 생겨난 소매상들은 정리되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 유통 빅3가 와인 사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상품성 있는 제품들을 대거 수입하기 시작한 점도 갓 창업한 소매상에 악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해온 이들은 시장의 흐름을 읽어가며 재고를 들여오지만, 신규 창업자들은 대기업들이 남기고 간 ‘떨이’만 들여오는 구조다.

와인 수입사의 영업직 종사자 E씨는 “작년 3월에 제가 (소매상 등을 대상으로) 6000만~7000만원 정도의 월 매출을 냈었다. 이번 달에는 3000만원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저희 회사 차원에서는 월매출이 30~4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영업 부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두고 전망이 갈린다. 여러 수입사가 최근 3년여간 대규모로 물량을 들어오면서 빚어진 일시적 병목현상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외출이 늘어나면 홈술 수요가 더 줄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특히 다가오는 여름철의 경우 맥주 성수기여서 자칫하면 올 한해 역성장하는 수입사도 나올 것이란 전망도 있다. 영업직 종사자 E씨는 “해외 와이너리 사람들이 한국 시장 조사차 들어오고 있는데 데려갈 곳이 없다. 잘 팔린다고 오라 했더니 안 팔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가을까지는 회복이 어려울 것 같다. 호텔 등에 대량으로 발주하는 행사용 와인으로 급한 대로 매출을 채우고 있다”며 “대형 유통사들이 대규모 할인 행사하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50~60%까지 특가로 판매한다는 건 재고 떨이가 급하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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