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이름을 가진 자동차들

인류가 역사 상 가장 먼저 사용한 동력은 '바람'으로 추정된다. 가축과 인력을 제외하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동력원은 '바람'과 '물살' 정도가 고작이었고, 최초의 동력 기계인 증기기관이 보급된 것은 수 천년에 달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고작 2~3백년에 불과하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이를 활용한 기선(汽船)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인류는 바람의 힘을 이용한 범선으로 전세계를 오갔다. 바람의 힘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갖가지 동력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가지고 있는 '힘'과 '속도감'은 자동차의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도 좋다. 바람의 이미지는 '속도', '민첩함', '자유로움', '강력함' 등을 강조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바람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차명에 사용하는 자동차 제조사는 독일 폭스바겐과 이탈리아 마세라티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 두 제조사 외에도 세계에는 바람의 이름을 빌린 자동차들이 존재한다. 바람에게서 이름을 가져온 자동차들을 간단하게 살펴본다.

링컨 제퍼
과거 링컨 브랜드의 황금시대를 시작했던 링컨 제퍼(Lincoln Zephyr)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Zephyros)에서 가져 온 이름이다. 1936년 출시된 이 차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이 차는 미려한 외관은 물론 4.4리터 V12 엔진을 탑재해 뛰어난 성능을 발휘해 링컨 브랜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차종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 링컨 브랜드의 중흥을 위해 새로 개발된 준대형 고급세단에 이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파가니 존다
파가니의 창업주 오라치오 파가니(Horacio Pagani)가 직접 개발한 하이퍼카 존다는 1999년, 하이퍼카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나 세계적으로 주목 받았다. 파가니 존다는 충격적인 외관 디자인과 더불어 강력한 AMG의 V12 엔진과  모터스포츠 기술을 집대성한 걸작으로, 공식적으로 2017년까지 생산되었다. 차명의 유래가 된 존다(Zonda)는 안데스 산맥에서 아르헨티나를 향해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바람으로, 우리나라의 높새바람과 같이 푄(Föhn) 현상으로 인해 생기는 계절풍이다.

마세라티 기블리
이탈리아의 마세라티는 전통적으로 바람의 이름을 따서 차명을 짓는 대표적인 제조사다. 마세라티는 주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의 이름들을 따서 차명을 짓는다. 그 중에서도 기블리(Ghibli)는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도 여기서 가져 온 것이다. 마세라티 기블리는 마세라티 브랜드의 E세그먼트급 스포츠 세단으로, 강력한 성능과 이탈리안 디자인의 독보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48V 전장계를 기반으로 하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모델도 출시되며 선택의 폭이 더 넓어졌다.

폭스바겐 파사트
마세라티 외에도 바람의 이름으로 작명하는 제조사로는 폭스바겐이 있다. 특히 골프를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 출시된 주요 모델들은 대부분이 바람의 이름, 혹은 거기서 모티브를 가져 온 작명법을 사용한다. 그 중에서도 파사트(Passat)는 독일어로 '무역풍'을 의미하는 'Passatwind'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 바람은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래 수 백년 간, 유럽과 전세계 각지를 오가는 범선들에게 추진력을 제공한 바람이다. 수백~수천톤의 배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하면서도 배를 전복시킬 만큼 강하지는 않은 섬세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이름은 균형 잡힌 가족용 중형세단의 이름으로 적합한 작명이라 할 수 있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람보르기니 우라칸은 2013년 가야르도의 후속 차종으로 등장한 미드십 스포츠카로, 강력한 5.2리터 V10 엔진과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로 무장하여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최근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우라칸 에보(EVO)가 등장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정식시판되었다. 현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무장한 후속차종 테메라리오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차명의 유래가 된 우라칸(HURACÁN)은 람보르기니의 전통대로, 투우 소의 이름을 빌린 것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본래 카리브 제도의 원주민 타이노(Taino)족의 언어로 '강한 바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영단어 '허리케인(Hurricane)'의 어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