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개입 '뒷방서 하지말라'는 금감원...이번 승계절차는?
'중앙회 인사개입' 사실상 인정…근본 해소 역부족
내규 반영엔 시일 걸릴듯…"그래도 실행은 가능"
올 연말 임기가 돌아오는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경영승계 절차에 농협중앙회의 인사개입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원 지적 사항이 반영될지 주목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농협중앙회의 금융지주 및 자회사 인사개입 관련 수시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주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인사관여 투명성을 높이라고 주문했다.
당장 지난달부터 진행하고 있는 경영승계절차 반영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이같은 조치가 사실상 인사개입을 인정한 것이어서 경영승계와 지배구조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경고장'만 날린 금감원…이유는
금감원은 지난 4월 농협중앙회의 농협금융 인사 개입과 관련한 수시검사에 착수했다. 농협중앙회의 자회사 인사 개입이 지나치다고 지적한 데 따른 조치다. 지난 3월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NH투자증권 대표 선출 과정에서 각각 다른 인물을 지지하며 갈등을 빚었다. '신경분리' 이후에도 농협중앙회가 경영·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금감원은 수시검사 이후 곧바로 정기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농협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원인 중 하나로 농협중앙회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에 있는지 살펴보고 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개선 필요성 등을 점검했다.
이처럼 금감원이 농협중앙회의 농협금융지주 인사 개입과 관련한 문제점을 정조준하면서 검사에 착수했지만, 이달 초 발표한 수시검사 결과만 놓고 보면 '경고장'만 던진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다.
우선 금감원은 지주와 자회사 간 협의로 진행되는 자회사 경영목표 및 평가기준 마련에 농협중앙회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중앙회의 영향력 행사 내역을 문서화하고, 지주가 자회사 경영관리와 관련해 자체적인 평가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아울러 지주 대표이사가 농협중앙회 인사조정위원회 참석과 관련한 규정이 없는데도 해당 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내규 등에 참석 근거를 마련하고, 위원회 논의 내용 및 결과를 문서화하는 등 부당한 인사관여 방지를 위해 투명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중앙회가 농협금융 최대주주로서 지주나 자회사 CEO 인사에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라며 "다만 은행지주에 준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절차가 진행되는지 자기 검증이 가능하도록 기록을 남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농협중앙회의 농협금융지주 및 자회사 인사권 개입은 인정하되, 절차적 투명성에 대해서만 지적한 셈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농협중앙회가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이라는 점을 의식해 금감원이 '선'을 넘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농협중앙회에 대한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권고 수준으로만 지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중앙회 입김 줄어들까
향후 나올 정기검사 결과에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 지배구조 문제가 더욱 자세하게 다뤄질 가능성도 있다. 농협금융지주·농협은행 정기검사 결과는 제재심 등을 거쳐 내년 2~3월 중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기검사 결과가 해를 넘겨 발표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농협은행장 경영승계절차에는 이같은 내용이 반영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이 수시검사에선 절차적 투명성 개선 정도만 지적한 만큼 이번에도 근본적인 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농협금융은 지난 9월1일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수정해 적용했다. 새로운 지배구조 내부규범에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5명 이상의 이사로 구성하고 위원의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구성한다. 다만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 할 때는 비상임이사를 제외하고 구성한다'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
통상 농협금융 비상임이사가 농협중앙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이란 점을 고려하면 임추위에서 농협중앙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조항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사외이사 선출에만 적용돼 사실상 CEO 선출에는 여전히 비상임이사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금감원 수시검사 결과를 통해 중앙회 의견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후보군 확정 절차 등에서 '진일보'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농협금융 경영승계절차와 관련해 롱리스트도 확정되지 않았고 절차가 개시된 정도"라며 "구체적인 후보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중앙회의 '깜깜이 개입' 문제가 개선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농협금융은 금감원 지적 사항에 대한 수정 절차에 착수했다. 통상 조치를 받은 금융기관은 경영유의사항의 경우 6개월, 개선사항은 3개월 이내에 금감원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내규 변경 시 이사회 소집 및 결재 절차 등을 거쳐야 해 시일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승계절차가 이미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당장 내규 수정 없이도 이번 지적사항을 승계절차에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농협금융 한 관계자는 "내규 수정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승계 관련 회의 기록을 남기는 등 금감원 지적사항과 관련한 내용은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농협금융은 이와 함께 지주와 중앙회 중 어느 쪽 내규를 수정할지에 대한 협의도 진행한다. 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인사조정위원회의 경우 관련 기록 절차 정비 과정 등에 중앙회 내규 수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 한 관계자는 "금감원 지적사항에 대한 내규 수정은 현재 논의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금감원이 금융지주에 지적한 내용에 대해 절차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지수 (jiso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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