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친일파라고?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친일파라고?
김활란은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것은 아닙니다.

본디 민족교육운동가
그리고 여성운동가였는데,

이화학당 출신이었던 김활란은
1926년 순종 황제가 붕어한 날
이화학당 학생들 전부 데리고
망곡을 해
경찰서에 연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1927년에는 좌우합작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 규모의 여성단체 근우회 설립에 참여했으며
1932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죠.

하지만 김활란은 1936년부터
총독부 소속의 단체에 가입하며
변절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일제가 정신대를 모집하면서부터는
김활란은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여학생들을 정신대로 보내버리거나
정신대를 찬양하는 글들을 기고했죠.

김활란은
정신대에 자원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의 각오라고 묘사했는데

그 글들을 보면 파렴치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허둥지둥 감동에만 빠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어쩔지를 모르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갈래를 못 찾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반도여성은
그저 내 아들 내 남편 내 집이라는 범위에서 떠나보지를 못했다.
떠나볼 기회가 없었다.
(중략)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1941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라고 친일인사들끼리 조직한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과
민족말살정책을 홍보해주던 단체가 있었는데,

이듬해 1942년 김활란, 박마리아, 모윤숙, 노천명, 박순천 등
조선임전보국단에서
친일여성들끼리 조직한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를 만들어 친일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김활란은 해방 후 1946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이화여대로 전환시키며
이화여대의 초대 총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