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기에 눈이 뜨이고 스릴에 감각이 일어서는 '올빼미'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2. 1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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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제공=NEW

'세자가 죽었다. 유일한 목격자는 맹인 침술사.' 슬로건부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 죽었고 그것을 누군가 목격했는데, 그 목격자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영화 '올빼미'는 이 모순된 설정부터 관객을 매료한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사극 장르에서, 기록 속 존재하는 틈에 상상을 불어넣으며 신선한 팩션(Faction)을 완성했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인조시대. 맹인이지만 남다른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류준열)는 어의 이형익(최무성)의 눈에 띄어 궁으로 발탁된다. 맹인이기에 그는 후궁의 침소에서 침을 놓을 수 있고, 한밤중에 비밀을 발각당한 원손도 경수 앞에서는 무안함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경수는 밤에는 '조금' 보인다. 주맹증이란 병을 앓는 그는 밤이면 궁 밖에 있는 아픈 동생에게 안부의 편지를 쓸 수 있고, 산더미처럼 쌓였던 약재 구분도 일사천리로 끝낼 수 있다. 조금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경수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해야 하는 궁궐 생활에서 맹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결코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보면서부터. 병자호란이 끝나고 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김성철)가 독살당하는 장면을 코앞에서 보게 된다. 

사진제공=NEW

밝은 곳에서의 시력이 어두운 곳에서보다 떨어지는 주맹증이란 설정은 '올빼미'의 스릴러를 부여하는 독특한 장치. 비밀을 목격한 경수가 진실을 알리고자 벌이는 사투가 하룻밤 안에 속도감 있게 그려지며 서스펜스 스릴러를 탄생시킨다. 밤에만 조금 보이는 경수의 주맹증을 표현하기 위한 제작진의 아이디어와 노력도 돋보인다. 카메라에 스타킹을 씌우고 물주머니를 대는 등 다각도로 촬영 방법을 고민한 덕분에 빛이 번지고 초점이 흐릿한 경수의 시야를 관객 또한 함께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두운 시야 때문에 오히려 시선을 집중하고 귀를 활짝 여는 등 몰입감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고증과 상상력이 적절히 버무려진 디테일한 미장센도 몰입을 돕는다. 밤이 지배하는 궁궐의 분위기를 거대한 감옥, 닫힌 공간처럼 보이길 바랐다는 감독의 말처럼,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압도적으로 서늘한 궁궐의 곳곳을 디테일한 소품과 조명 등으로 매혹적으로 그려낸다. 

'올빼미'는 보지 못하는 자가 본다는 스릴러적 설정으로 시작하여, 눈으로 본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알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드라마로 확장을 꾀하기도 한다. 영화 속 미천한 신분이자 맹인인 경수가 아니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또한 순간순간 삶에서 목도한 것에 침묵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면에서 '올빼미'는 후반으로 갈수록 한 편의 사회고발 영화 같은 느낌도 준다. 단, 후반부로 갈수록 경수의 행적에 이입이 떨어지면서 영화적으로 재미가 반감된다. 소현세자와 경수와의 짧은 인연은 상당히 강렬했으나 후반 경수의 행적을 좇기에는 감정 빌드업이 충분하지 못한 인상이고, 나름의 짜릿한 결말을 위해 반전과 서사가 납작해지는 점도 아쉬운 점. 순간순간 감정선보다 앞서 나가는 음악도 호불호가 있을 듯하다. 

사진제공=NEW

아쉬움을 상쇄하는 건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잘 포착해낸 캐스팅과 그에 100% 부응한 배우들의 열연.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는 조금 보이는 맹인 침술사를 연기한 류준열의 섬세한 눈빛 연기는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슬기로운' 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배우들을 재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생계형 범죄자 법자 역할로 이름을 알린 김성철은 첫 사극 도전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로 사극에 물처럼 스며든 모습이다. 아버지의 의심 앞에서도 변화를 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당당한 소현세자가 퍽 잘 어울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추민하로 사랑받았던 안은진은 실록에서 손꼽히는 악녀 중 한 명인 소용 조씨를 맡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온화하지만 강단 있는 강빈 역의 조윤서도 눈여겨보게 된다. 

가장 놀라움을 주는 배우는 역시 유해진. '왕의 남자' 조감독이었다 '올빼미'로 데뷔하는 안태진 감독은 '왕의 남자'에서 광대였던 유해진을 무려 왕으로 택했다. 왕이라고 모두 근엄하고 중후한 인상이지 않았을 것은 자명하지만(다소 옹졸해 보이는 인상인 영조의 초상화를 생각해 보라),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왕이 될 상'에 대한 무언의 선입견이 있었다. 유해진은 스스로 '살다 살다 왕까지 해본다,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라고 토로할 만큼 그간 있어온 왕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첫 등장부터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인상적인 인조를 구현한다. 드라마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의 인조를 맡은 이덕화나 영화 '남한산성'의 인조였던 박해일도 인상적이었으나 '올빼미'를 보고 난 이후에는 한동안 인조 하면 유해진이 생각날 게 분명하다.  11월 23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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