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내리막길 남양유업, 이미지 회복 요원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2024. 10.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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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인사이드] ‘비도덕적 기업’이라는 프레임 여전

● 품질은 좋은데… 갑질·위법에 이미지 곤두박질
● 신성장동력 발굴 지체, 매일유업에 실적 역전
● 새 주인 한앤코 고강도 쇄신에도 소비자 반응 냉담
● 60년 오너 홍씨 일가 이미지 털려면 시간 필요

[Gettyimage, 남양유업]
"제품력은 좋은데,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안타깝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가 남양유업을 두고 내린 평가다. 남양유업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협동조합인 서울우유를 제외하고 민간 유업체 가운데 시장 점유율 1위를 놓치지 않는 '1등 기업'이었다. 항상 매출액 선두를 지켰으며 1964년 설립 이후 2000년대에 진입하기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다. 이는 이제 과거의 영광이 됐다. 2013년 '대리점 밀어내기' 논란 이후 실적이 줄곧 내리막길을 걷게 된 탓이다.

남양유업은 업계를 주름잡던 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모범적이지 않은 기업의 대표 사례'가 됐다. 2013년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유통기한 만료가 임박한 유제품을 억지로 떠넘기는 등 이른바 '밀어내기'를 한 사실이 밝혀지며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한 녹취록까지 공개되며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

매출 1조 원 깨지고, 매일유업에 치이고

남양유업은 2009년 처음으로 매출액 1조 원을 달성한 이후, 대리점 갑질 사건으로 인한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2019년까지 단 한 차례도 매출액 1조 원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2021년 1월 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그러나 2019년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의 마약 사건으로 또 한 번 이미지가 훼손됐다. 직원들에게 경쟁업체에 대한 비방 댓글을 지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비도덕적 기업'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2020년 결국 남양유업의 매출액은 9489억 원을 기록, 1조 원 밑으로 떨어졌다.

남양유업의 몰락, 특히 오너 일가였던 홍원식 전 회장의 몰락에 쐐기를 박은 것은 2021년 불가리스 과장광고 사태다. 당시 남양유업은 심포지엄을 열고 자사 발효유 불가리스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연구에 사용된 불가리스 제품, 남양유업이 지원한 연구비, 심포지엄 임차료 지급 등을 고려할 때 심포지엄이 순수 학술 목적을 벗어났다고 봤다. 남양유업이 사실상 불가리스 제품에 대한 홍보를 한 것으로 보고 '식품표시광고법' 제8조 위반으로 판단, 행정처분 및 고발 조치했다.

결국 홍 전 회장은 이 같은 사태에 책임지고 사임하겠다며 본인과 오너 일가가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를 한앤컴퍼니(한앤코)에 매각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후 홍 전 회장 일가가 계약을 파기하고 주식을 양도하지 않자 한앤코는 주식양도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6월 21일 홍원식 당시 남양유업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 양사의 계약 불이행 관련 주식양도 소송 7차 변론기일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1심과 2심 재판부는 홍 전 회장 일가가 한앤코에 주식을 넘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홍 전 회장이 이에 불복했으나 올해 1월 4일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홍 전 회장과 오너 일가는 2022년 9월 한앤코에 주식을 넘기게 됐고, 남양유업의 60년 오너 경영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내우외환을 겪던 남양유업이 사업에서 적확한 결정을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업계는 남양유업의 신성장동력 발굴 타이밍이 경쟁사보다 더 늦었다고 평가한다. 우선 경쟁사인 매일유업과 비교했을 때 우유·분유 매출 비중이 더 크기에 저출산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적다. 올해 상반기 기준 남양유업은 우유류 매출 비중이 50.8%, 분유류 매출 비중이 19.5%로 전체 매출의 70.3%를 두 상품군에 의존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우유·분유 등 유가공 제품 매출 비중이 60.7%다.

국내 유업계가 신성장동력의 하나로 성인 단백질 시장에 집중할 때에도 남양유업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포문을 연 곳은 매일유업이다. 매일유업은 2018년 '셀렉스'를 출시해 성인 단백질 시장에 진출했다. 기존 '영유아' 대상 영양식 사업을 '생애 전 주기'로 확장한다는 전략에 따라 내놓은 신성장동력이다. 이어 일동후디스가 2020년 2월 '하이뮨'을 론칭하며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남양유업은 일동후디스보다도 3년이나 늦은 지난해 1월 성인 분말 단백질 '테이크핏 케어'를 출시했다.

매일유업은 사업 다각화를 순조롭게 이뤄냈다. 남양유업이 주춤한 시기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쌓았고, 성인 단백질은 물론 아몬드브리즈, 어메이징오트 등 대체 음료 시장을 선점했다. 이에 따라 매일유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매일유업의 최근 3년간 매출액(연결기준)은 △2021년 1조5519억 원 △2022년 1조6856억 원 △2023년 1조7830억 원이다. 매출이 꾸준히 5% 이상 증가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추세대로라면 2~3년 내로 '매출 2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미지 개선 노력에도… '비호감' 이미지 고착

매일유업이 여러 방면에서 남양유업을 앞지르는 동안 남양유업이 이미지 개선 노력에 소홀했던 것만은 아니다. 남양유업은 2020년 업계 최초로 '자율적 협력이익공유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농협 납품 시 발생하는 순영업이익의 5%에 해당하는 이익을 납품 대리점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올해 8월 기준 대리점과 나눈 상생협력기금 누적 금액은 7억6000만 원에 달한다.

2021년 6월엔 온라인에서 매일유업을 비방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남양유업은 매일유업에 재발 방지 약속과 사과 의사를 수차례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일유업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 등을 조건으로 남양유업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2022년 3월엔 9년 만에 TV 광고를 재개하며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같은 해 7월엔 창립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제도도 만들었다. 20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신청할 수 있는 희망퇴직 제도를 신설하고 빈자리는 신입사원으로 채웠다. 젊은 피 수혈과 이미지 쇄신이 절실해서다.

한앤코로 주인이 바뀌고 나선 올해 8월 '준법·윤리 경영 강화'를 골자로 한 고강도 쇄신안을 내놨다. 과거 경영 체제의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고, 투명·윤리 경영을 통해 주주와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구체적으로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선진 시스템을 도입을 골자로 한다. 또 재무·회계 분야 불법 이슈를 예방하기 위한 감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 밖에 △회사 자금 관리 강화 및 자금 사고 예방을 위한 임직원 규칙 △회사 보안 강화 및 정보 자산 보호를 위한 임직원 규칙 등을 만들어 회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최소화하고 사전 예방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도 포함됐다.

아울러 '준법통제기준'을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거래나 부적절한 행위를 탐지해 준법 경영을 강화할 계획이다. 임직원 및 이해관계자가 상시 상담하고 위반 사항을 제보할 수 있는 윤리경영 핫라인 제보 채널도 활성화한다.

공정한 기업문화를 위한 윤리 강령도 제정하기로 했다. 실천을 위해 △직무 관련 청탁 및 금품 수수·제공 등 부패 방지 △공정거래 및 국제 거래 관련 법규 준수 △회사 비밀 정보 사용·관리 및 보안 등 임직원 행동 지침 사항을 마련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한 상황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커뮤니티 등에서는 되레 "내부에서 막을 것이나 고칠 것이 많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는 남양유업이 '비호감'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홍 전 회장의 이미지를 지워내는 한편 품질과 영업 관행 개선,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이 더욱 중요하다고 분석한다. 특히 품질과 영업, 소비자 중심 마케팅은 사업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는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공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이미지 회복 시간 걸릴 듯… 품질에 더 집중해야

남양유업은 이미 품질에 집중해 위기를 타개한 전례가 있다. 2006년 산양 분유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됐을 때다. 당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남양유업이 제조·판매해 온 산양 분유 제품에서 대장균의 일종인 사카자키균을 검출했다. 사카자키균은 정상적 유아에게는 감염 위험이 높지 않지만, 면역기능이 약한 저체중아나 조숙아에겐 패혈증, 심할 경우 뇌수막염을 유발할 수 있다. 치사율이 20~50%에 이르는 치명적 균이다.

특히 당시 문제가 된 제품이 생후 3개월 미만 아기들을 위한 분유였기 때문에 여론이 더 좋지 않았다. 여기에 남양유업이 자사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더욱 안전하다며 적극적으로 품질을 강조한 광고를 펼친 후라 사정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남양유업은 사카자키균이 검출된 산양 분유 제품을 전량 회수 처리하고 소비자에게 사과했다. 이후 2007년 1월 조제분유 무균화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카자키균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무균실 속에서 생산이 이뤄지도록 공정을 개선해 균의 감염을 원천 봉쇄하고, 공장 안으로 유입되는 공기 중의 세균까지 걸러질 수 있도록 7중의 공기필터 100여 개를 도입했다.

사카자키균이 검출되기 전까지만 해도 조제분유 시장에서 남양유업의 점유율은 51%에 달했다. 그러나 사카자키균 논란이 불거진 2006년 남양유업의 조제분유 시장점유율은 43%로 8%포인트나 떨어졌다. 하지만 조제분유 무균화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카자키균 완전 제거를 발표한 2007년 점유율은 47%로 상승했고, 2009년엔 점유율 50%를 회복했다.

다만 지금의 남양유업은 이미지 추락이 10여 년간 이어져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소비자의 실망이 큰 터라 명예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카자키균 검출 악재를 털어낸 것은 제품에 유해 물질이 검출된 '단기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안팎에서는 "남양유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사명 변경이 1순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남양유업의 '남양'이 창업주 일가의 성씨인 '남양 홍씨'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좋지 않은 전 오너 일가의 이름을 그대로 달고 있으면서 쇄신을 외쳐봤자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물론 사명을 변경하더라도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남양유업은 2021년 자회사인 남양에프앤비 사명을 '건강한사람들'로 바꿨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숨기기에 급급하다"는 반응을 보여 이미지 쇄신에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또 남양유업은 60년 역사의 '장수 기업'이다. 브랜드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 새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간 쌓아온 인지도를 잃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남양유업의 새 주인 한앤코는 "경영 투명성 강화를 통해 소비자와 딜러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사랑받는 새로운 남양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남양유업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날은 당분간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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