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가방" 손 대자 '펑' 대학생들이 용의자로… 대구서 무슨 일이[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3년 9월22일 오후 9시33분쯤 대구 중구 삼덕동 미국 문화원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미국 문화원 건물이 파손된 것은 물론이고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도 있었다.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0)과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2)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건 당일 오후 9시쯤 영남고등학교 1학년 허병철군은 방과 후 미국문화원 인근을 지나다 문화원 정문 앞에 놓인 가방 2개를 봤다. 이를 수상히 여긴 허군은 상대적으로 작은 가방을 들고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경찰서로 향했다. 김철호 순경을 만난 허군은 미국문화원 앞에 다른 가방이 또 있음을 알렸고 두 사람은 문화원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9시33분 허군은 김순경에게 "바로 이 가방이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펑'하는 강력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허병철군은 현장에서 즉사, 김철호 순경은 중상을 입었다. 가방 안에 폭발물이 들어있던 것이다.
폭발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당시 미국 문화원 외벽이 무너지고 길 건너 경북대 부속 병원의 유리창 포함 인근 건물 500여개 유리창이 파손됐다. 현장을 지나던 차량 2대의 운전자도 부상을 입을 정도였다.
특별한 근거도, 영장도 없이 5명의 학생은 경찰에 붙잡혔다. 학생들이 쉽게 입을 열지 않자 국가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까지 데려와 30여일간 신문과 고문을 반복적으로 자행했다.
결국 잔혹한 고문 끝에 학생들은 "내가 폭파했다. 내가 범인이다"라며 거짓 자백을 하기도 했다.
3개월 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부산 다대포 해안에서 무장 간첩 전충남과 이상규가 붙잡히며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은 북한 소행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충남은 "(훈련소 무전장이) 9월 말쯤 나에게 와서 본인이 전파를 감청해 암호 해독한 결과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성공이라는 내용을 감청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라며 "반미 감정이 높은 남조선 청년 학생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경북대 학생들은 진상이 밝혀진 후에도 즉시 사과받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 반공법 등 다른 혐의가 추가 적용돼 주범으로 몰렸던 박종덕씨는 징역 3년을, 나머지 4명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0년에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 사건을 '반인권적 사건'이라고 진실 규명 권고에 나섰다. 이에 박종덕씨 등은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대구지법은 3년 뒤 재심 결정을 내렸다.
마침내 2019년 10월1일 대구지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박종덕씨 등 피고인 5명에 대한 재심을 열고 원심을 깨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36년 만이다. 재판부는 "고문에 의한 자백 진술서 등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우성수씨는 자신의 무죄 선고를 지켜보지 못한 채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를 상대로 1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한 박씨는 고작 청구 금액의 30분의 1 수준인 6300만원만 인정받았다.
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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