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을 되돌린다.
정확하게 엔지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 왔습니다. 그 곳 경쟁의 레벨은 이제 그가 마주하게 될 레벨과 전혀 가깝지 않습니다.(coming from the other side of the world where you know the level of competition is
nowhere near is going to face hear.)"
그냥 평범한 발언이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나쁜 의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1월 3일. 뉴캐슬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나온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평범했던 이 발언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갑자기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 K리그 비하 발언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어 양민혁의 출전 명단 등재 여부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계속 양민혁을 흔들고 있다.
#1월 3일 토트넘 훈련장
1월 3일 영국 런던 토트넘 훈련장 내 기자회견장.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필자만 현장에 있었다.(거의 늘 그렇지만...) 어떤 상황이었을까.
새해 첫 기자회견이었다. 팀 내 부상 상황 등 '팀 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난 후 이적 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1월부터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다. 이어 토마스 투헬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의 방문 예정 소식, 여기에 따라 도미니크 솔랑키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리고 양민혁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질문 : 양민혁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요?
대답 : 현재로서는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우선 적응할 시간을 주고자 합니다. 아직 매우 어린 선수입니다.
이어 논란의 답변이 나왔다.
그는 지구 반대편에서 왔습니다. 그 곳 경쟁의 레벨은 이제 그가 마주하게 될 레벨과 전혀 가깝지 않습니다.(coming from the other side of the world where you know the level of competition is
nowhere near is going to face hear.)
이후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려고 합니다. 손흥민이 클럽 안팎에서 양민혁을 도와주는 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초기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간을 두고 상황을 지켜보며 그의 적응 과정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특별한 계획보다는 자연스럽게 과정을 밟아나가게 할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문맥을 살펴보고, 찍었던 영상을 돌려봐도 특별할 것이 없다. 다른 리그에서 온 어린 선수. 당연히 적응이 우선이다. 그에 따라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 뿐이다.
그럼에도 전후 사정을 모르는 한국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래야 포털 사이트 AI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쉬웠다. 언론의 현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필자 역시 그 중 일부이기에,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 아쉬울 뿐이었다.
확실히 말하지만 당시 상황은 단순한 일반론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당연히 어떤 선수라도 리그를 바꾼다면 적응이 필요하다. 분데스리가에서, 라 리가에서, 세리에A에서 뛰다 온 선수도 어느 정도 적응 시간을 가지는 것이 관례이다. 더욱이 아시아와 잉글랜드는 축구 스타일이나 축구 환경도 다르다. 물론 레벨도 다른 것은 사실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그러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변하지 않는 전술, 독불장군형 리더십, 손흥민 선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 이런 모습 때문에 최근 포스테코글루 감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팬들도 많다. 필자 역시 최근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팩트를 무시하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당시 양민혁에 관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발언은 '일반론'이었다.
#탐워스전 명단 제외
이후 양민혁의 출전 명단 등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기자회견 다음날 뉴캐슬전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나흘 후 리버풀과의 리그컵 4강 1차전에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나흘 후 5부리그 팀인 탐워스와의 FA컵 3라운드 경기에서는 명단에서 제외됐다. 15일 아스널 원정에도 출전 명단에 없었다. 그리고 19일 에버턴 원정 경기에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각각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뉴캐슬전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야기한 대로 적응을 위한 기간이었다. 공식적으로 팀훈련에 합류한 지 이제 4일이 된 선수였다. 아직은 적응이 필요했다. 경기장 분위기도 익힐 필요가 있었다.
8일 리버풀과의 리그컵 4강 1차전은 달랐다. 일단 선수단의 자리가 있었다. 제임스 매디슨과 파페 사르가 경고 누적으로 뛸 수 없었다. 공격진 중에서 자리를 채워야 했다. 일단 양민혁을 넣었다. 다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 와중 탐워스와의 FA컵 3라운드 원정 경기가 다가왔다. 영국 언론에서도 '양민혁의 출전 명단 등재 가능성'을 조명했다. 동시에 데뷔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예상도 내놓았다. 경기 전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팀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국 언론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상대가 5부 리그, 세미 프로였기에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릴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 킥오프 한 시간 전 선발 출전 명단이 나왔다. 선발 11명 가운데 어린 선수는 마이키 무어 한 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주전급으로 구성했다. 매디슨, 사르, 비수마가 나왔다. 전방에도 존슨과 함께 베르너를 선발로 출전시켰다. 벤치에도 손흥민과 솔랑키, 클루셰프스키 등이 있었다. 어린 선수는 도링턴과 올루세이, 랭셔 정도밖에 없었다.

#상대방 존중 그리고 현실적 이유
왜 그랬을까. 일단 영국에서 FA컵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번처럼 프로팀이 아닌 아마추어나 세미 프로팀들을 만난 1부리그 팀의 경우 선택이 애매해진다. 객관적인 전력과 로테이션을 생각해 유망주 위주로 팀을 꾸리면 주변에서 난리가 난다. 특히 '고매하시면서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영국 언론들이 '훈수'를 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면서 난도질을 하시 시작한다. 차라리 감독이 영어권 나라가 아닌, 이탈리아나 스페인, 포르투갈 감독이면 차라리 낫다. 그들은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 된다. 그러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호주 출신이다. 영연방인 호주는 멀리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잘 알고 있다. 영어도 모국어이다. 결국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두번째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어린 선수들을 임대보내야 했다. 1월 이적 시장은 쉽지 않다. 즉시 전력감을 데려오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화두가 임대이다. 특히 1부리그 팀들의 경우 어린 선수들을 임대보내면서 그들의 경험치 축적을 도모한다. 보통 잉글랜드 내 2부나 3부리그로 임대를 보낸다. 해리 케인도 2010~2011시즌 레이튼 오리엔트(당시 3부), 2011~2012시즌 밀월(당시 2부), 2012~2013시즌 노리치시티(1부)-레스터시티(2부)에서 임대 생활을 하며 경기 경험을 쌓았다.
다만 선수를 빌려오는 구단들도 아무나 데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1군 경기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선호한다. 그들 역시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들을 데려오고 싶어한다. 1군 출전 명단에 뛰지 않은 선수들을 데려오기를 꺼린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토트넘으로서는 벤치 명단에 올루세이나 랭셔, 도링턴의 이름을 올리면서 '이들은 1군 경기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를 임차하려는 구단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알피 도링턴은 탐워스 경기 다음날인 13일 스코틀랜드 아버딘으로 임대를 떠났다. 이제 랭셔의 임대 루머가 흘러나오고 있다.
때문에 1월 이적 시장까지는 이들을 임대 보내기 위한 '쇼케이스' 성격의 출전 명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임대 등 이적 시장이 정리되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 더 정리 된 출전 명단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충분히 적응을 마친' 양민혁이 제대로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취재하다보니 들은 소식이 있다. 현재 토트넘 내에서 양민혁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토트넘 내 퍼포먼스 관련자의 전언에 따르면 양민혁의 몸상태에 토트넘 퍼포먼스팀들도 상당히 만족했고, 좋은 결과에 놀라고 있다고 한다.
양민혁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