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팬알백]㊾ 8년간의 동행 마침표, 김태형 감독 시대가 남긴 것들

2022년 10월 11일.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뒤 3일 후였다. 화요일 오전 11시.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구단의 호출로 잠실야구장 내에 있는 구단 사무실을 찾았다.
김태형 감독은 사장실로 들어갔다. 전풍 대표이사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마주앉았다.
“김 감독,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재계약이 어렵게 됐습니다.”
“아, 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짧은 대화와 어색한 작별 인사. 김태형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사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계약기간이 만료된 김태형 감독과 작별한다. 두산은 11일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산은 “구단 전성기를 이끌어 준 김태형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팀의 장기적인 방향성 등을 고려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2022년 10월 11일자>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49번째 주제는 8년간 사령탑으로서 역사와 전설을 쓴 김태형 감독 시대와의 이별 이야기다.

◆KBO 40주년과 김태형 감독 계약만료의 해
2022년은 KBO리그 출범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두산이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4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2021년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새 역사를 쓴 두산은 다시 선수단 구성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우선 ‘느림의 미학’ 유희관이 1월 20일 잠실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발표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면서 선발 마운드를 지켜온 한 축. 베어스 역사상 두 번째이자 좌완 최초 100승을 넘어 101승을 기록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다.
FA 자격을 얻은 선수 중에 주포 김재환은 4년 최대 총액 115억원의 조건에 잔류했지만, 외야수 박건우는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두산은 보상선수로 NC에서 강진성을 데려왔다.

외국인 선수 재계약을 놓고 장고에 빠졌다. 가장 큰 고민은 아리엘 미란다와 재계약 여부였다.
미란다는 2021년 225탈삼진으로 전설의 투수 최동원이 작성한 KBO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223개)을 37년 만에 갈아치웠다. 그해 14승5패, 평균자책점 2.33(1위)으로 시즌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다. 구위와 기량이 검증된 에이스. 하지만 시즌 막판 어깨 부상으로 포스트시즌 내내 이탈한 뒤 한국시리즈 들어 딱 1경기(3차전)에만 등판한 점이 찜찜했다.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MVP 투수를 버리자니 아쉽고, 잡자니 부상 이력이 걱정됐다. 메디컬체크를 한 결과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는 않았다. 결국 계약금 30만 달러, 연봉 160만 달러 등 총액 19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22억6000만 원)에 재계약하게 됐다.
여기에 미란다와 짝이 될 외국인 우완 투수 로버트 스탁을 새롭게 영입했다.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그만한 외국인 타자를 데려오기 쉽지 않다는 판단 아래 재계약했다.

◆ 시범경기 꼴찌…정규시즌 개막 후 나쁘지 않은 출발
여전히 코로나19 여파로 해외 전지훈련을 가지 못한 가운데 두산은 경기도 이천의 베어스파크에서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시범경기 성적이 불안했다. 1승3무8패(승률 0.111)로 10위. 10개 구단 체제가 된 뒤 두산이 시범경기 최하위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8개 구단 체제였던 2005년 이후 17년 만의 시범경기 꼴찌. 그러나 김태형 감독은 “시범경기는 말 그대로 시범경기”라며 신경 쓰지 않고 정규시즌을 개막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여파로 시범경기를 진행하지 않은 2020년을 제외하면 두산은 앞서 최근 3년의 시범경기에서 2차례나 8위에 그쳤다. 그러고도 매년 한국시리즈에 오른 두산이었다.
에이스 미란다가 어깨 통증으로 개막 엔트리 합류가 불발된 상황. 두산은 시작부터 새로운 선발 로테이션을 짜느라 머리가 아팠다.
4월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개막전. 두산은 창단 40주년을 맞아 시대별 베어스 스타들인 박철순(1980년대)-김형석(1990년대)-홍성흔(2000년대)-더스틴 니퍼트(2010년대) 4명을 특별 시구자로 초청했다.
레전드들의 기운을 얻었기 때문일까. 두산은 한화를 상대로 개막전에서 6-4, 다음날 1-0 승리를 거두고 개막 2연승으로 산뜻하게 스타트했다.
개막 후 10경기에서 7승3패(3위).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4월 마지막에 3연패를 당했지만 개막 첫 달에 13승11패(5위)로 반타작 이상의 승률을 올렸다.

◆ 투타 총체적 난국…5월부터 추락
시즌 개막 후 초반에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리고 있었지만, 두산으로선 미란다로 인해 한숨을 쉬는 날이 늘어만 갔다.
개막 후 보름 정도 지난 뒤 1군 엔트리 복귀한 미란다는 4월 17일 잠실 키움전(4이닝 1실점)과 23일 잠실 LG전(3이닝 2실점)에 나섰지만 자신의 투구를 펼치지 못했다. 다시 어깨 통증을 호소했다. 정밀검진 결과 어깨 근육 뒷부분 미세 손상 진단이 나왔다. 장기 이탈이 불가피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두산은 5월에도 시작과 함께 다시 10경기에서 7승3패로 잘 싸웠다.
그러나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5월 14일 대구 삼성전 패배부터 1무 포함 5연패에 빠지더니 1승 후 다시 3연패를 당했다. 이 기간 10경기에서 1승1무8패를 기록했다. 결국 21승1무22패로 시즌 처음 승패 마진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면서 순위도 7위로 떨어졌다.
5월에 11승1무13패, 6월 8승1무14패로 급전직하했다.
미란다는 6월 25일 잠실 KIA전에 시즌 3번째 등판했지만 아웃카운트 2개만 잡고 4실점하고 말았다. 이것이 미란다의 KBO리그 마지막 등판이 됐다.
선발진이 전체적으로 흔들렸고, 불펜도 과부하가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 타선도 약화됐다. 김재환이 부진에 빠지고, 페르난데스 역시 방망이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년도 트레이드 성공 사례로 꼽혔던 양석환도 주춤했고, 박건우가 떠난 자리에 김인태, 안권수, 김대한, 양찬열 등을 돌려가며 기용해 봤지만 누구 하나 주전으로 치고 나가지 못했다.
7월 초에는 순위가 8위로 떨어졌다. 결국 미란다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7월 13일 대체 외국인 투수로 좌완 브랜든 와델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두산의 7월 월간 성적은 8승11패. 이때까지 시즌 40승2무49패(6위)를 기록 중이었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막판 스퍼트를 올리면서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내는 기적의 레이스를 펼친 적이 많았다. 그런 전력 때문에 후반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그래도 두산인데”라며 곰군단의 저력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8월에도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했다. 월간 7승14패. 아무리 '미러클 베어스'라고 해도 승패 마진이 –16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기적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두산은 결국 9월에도 10승15패로 가라앉더니 10월에도 3승4패를 기록했다.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2경기마저 2연패로 마감했다.
가을 DNA도 작동하지 않았다. 4월을 제외하고는 월간 성적 기준으로 단 한 번도 5할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성적은 60승2무82패로 9위. 2015년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뒤 8년 만에 처음으로 5할 이하의 승률(0.423)을 기록했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초대장을 놓쳤다.
10개 구단 체제여서 탈꼴찌는 했지만, 9위는 OB 베어스 시절을 포함해 구단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순위였다.
힘든 시즌이었다. 2003년 이후 처음으로 10승 투수를 배출하지 못했고, 3할 타자는 페르난데스(0.309) 한 명뿐이었다. 불과 몇 년 전 두 차례(2016년, 2018년)나 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인 93승 신기록을 작성했지만, 2022년에는 구단 역대 시즌 최다패 기록인 1990년의 80패를 넘어 82패를 당했다.

◆김태형 감독 시대 8년이 남긴 것들
김태형 감독은 2015년 2년 계약(총액 7억 원의 조건)으로 처음 두산 베어스 지휘봉을 잡은 뒤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2017년부터 3년 재계약(총액 20억 원)에 성공했다. 성과에 걸맞은 대우가 뒤따랐다. 그리고는 2019년 우승한 뒤 다시 2020년부터 3년간 KBO 역대 감독 최고 대우(총액 28억 원)로 재계약했다.
하지만 2022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두산과 김태형 감독의 30년 인연도 끝났다.
사실 미란다의 어깨 부상으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두산 구단은 리더십의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10월 20일 논현동의 임피리얼 호텔 중식당에서 두산 베어스 제10대 감독 제안을 받았던 김태형 감독은 2022년 10월 11일 잠실구장 구단 사무실에서 8년간의 동행에 마침표를 찍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김태형 감독은 비록 팀을 떠나게 됐지만 베어스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1990년 선수로 입단한 뒤 2022년까지 정확히 30년간(2012~2014년 SK 와이번스 코치 기간 제외)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감독으로서 현장에서 30년간 베어스 유니폼을 입은 인물은 구단 역사상 현재까지 김태형이 유일하다.

현역 시절 '수비형 포수'였던 김태형은 지도자로 변신해 '완성형 감독'으로 야구인생의 꽃을 피웠다.
두산 감독 재임 기간 8시즌 동안 1149경기를 지휘하면서 645승19무485패(승률 0.571)를 기록했다. 베어스 역대 감독 중 통산 최다 시즌과 최다 경기수 부문에서는 김인식 감독에 이어 2위지만, 최다승과 승률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감독 데뷔 시즌부터 이어간 7년 연속(2015~2021년) 한국시리즈 진출은 가장 빛나는 업적. 이는 두산 베어스뿐만 아니라 KBO 역사에서도 최초이자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지 모른다.
김 감독은 2015년과 2016년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베어스 최초 사령탑이 됐으며, 2019년까지 3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휘했다. 베어스의 역대 6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중 절반을 김태형 감독이 이끌었다.
또한 KBO 역사상 선수와 감독으로 같은 팀에서 우승을 한 최초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김인식 감독이 인화력을 바탕으로 ‘미러클 베어스’의 뚝심 야구를 만들었다면, 김경문 감독은 그 뚝심에 ‘허슬’을 입히면서 화수분 야구의 밑바닥을 다졌다. 김태형은 그 위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베어스 왕조’를 구축하면서 구단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열었다.


“두산에서 8년간 지휘봉을 잡으면서 야구 커리어에 있어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은 기회를 준 두산 구단에도 감사드립니다. 두산 유니폼을 벗게 됐지만 팬들이 보내주신 성원을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김태형 감독이 30년 동안 입었던 베어스 유니폼을 벗고 구단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그는 팬들이 보내주신 성원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팬들은 ‘튼동님’이 남기고 간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기) '튼동님'은 OB 베어스 주장 시절 외국인 타자의 전설 타이론 우즈가 팀 분위기를 해치자 커튼 뒤로 끌고 가 혼을 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김태형 감독의 별명이다. 커'튼'과 감'동'님(감독님을 소리나는 대로 쓴 단어)에서 따온 말이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