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서 일하고 장기휴가' 정부안에 … 직장인들 "현실성 떨어져"

이종혁 기자(2jhyeok@mk.co.kr), 박동환 기자(zacky@mk.co.kr), 김대은 기자(dan@mk.co.kr) 2023. 3.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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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근무 개편안
MZ직장인 왜 반발하나
노조없는 중소 IT 유독 반발
"크런치 모드 재연될까 걱정"
20~40대 '반대' 응답률 60%
尹대통령 "의견수렴" 지시에
고용부, 22일께 MZ노조 면담
유연제 큰틀 유지한채 손볼듯

◆ 근로시간 개편안 보완 ◆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 초청 오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참석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업무가 몰릴 때 한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한가할 때는 단축 근로와 장기 휴가를 통해 휴식·건강권을 지키는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을 지난주 정부가 확정 발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돌연 재검토를 지시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체로 찬성해왔던 MZ세대 노조까지 반대 기류로 돌아선 점이 배경이 됐다. 다만 정부는 유연화 정책을 뒤집거나 철회하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 근로자들의 우려를 불식하는 수준에서 보완한다는 계획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우선 윤 대통령이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에 대해 14일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대국민 소통에 충실하지 못한 관련 부처를 질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책의 전면 재검토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날 대통령과 통화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과 정부가 엇박자가 있다는 해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대통령의 뜻은 새로운 제도 개혁이 왜 젊은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보장하고 이행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검토해서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전문가 권고 등을 거쳐 주52시간근로제 개편안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지난 6일 입법예고했다. 개편안은 획일적인 주52시간제 대신 연장근로를 노사 합의를 거쳐 주,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 1년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근로자가 출퇴근과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선택근로제의 정산 단위 기간도 1개월(연구개발 업무는 3개월)에서 3개월(연구개발 6개월)까지 늘렸다.

정부안은 주 최장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늘리되, 일이 없을 때는 적극 쉬도록 하고 주 평균 근로시간은 기존대로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일본 등에서 운용하는 유연근로 제도와 유사하다. 대신 장시간 근무로 인한 산업재해 기준인 4주간 주 평균 64시간은 넘지 못하도록 근로시간에 제한을 걸었다. 또 퇴근부터 다음 출근까지 연속 11시간 휴식을 보장해야 최장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연장근로시간도 분기·반기·연 단위로 정산할 때는 산술적으로 가능한 시간 대비 각각 10%, 20%, 30%씩 감축하는 연장근로 총량제도 도입했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올해 1월 9~11일 전국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 근로시간 개혁에 대한 찬성은 45%, 반대 응답은 48%였다. 젊을수록 반발 비율이 높아 18~29세 응답자는 찬성 39%, 반대 57%였으며 30~49세는 찬성 34%, 반대가 60%에 달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력 규모가 충분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저년차 직장인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초과 근로에 따른 수당 지급이나 각종 복지제도 등이 잘돼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노동조합이 없고 구두에 의한 업무 지시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중소기업에서 판교의 대형 게임사로 옮긴 30대 남성 직장인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월 근로시간 208시간을 준수하기만 하면 자발적으로 일이 몰리는 월초에 집중적으로 근무하고 월말에는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며 "하지만 과거 다니던 중소기업에서는 강제로 '크런치 모드'에 들어가는 경우가 잦았다"고 말했다. 크런치 모드란 주로 게임 등 IT 업계에서 프로젝트의 마감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연장근무를 하는 비상근무 관행을 뜻한다. 정부는 근로시간 개혁의 취지가 국민에게 잘 홍보되지 않고 '주 69시간 근로'만 각인돼 반발이 더욱 심해졌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국내 사무직·MZ 노조 상급 단체인 '새로고침협의회'와 이르면 22일께 만나 근로시간 제도 개혁 취지를 설명하고 보완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고용부 등 당국은 입법예고 기간인 다음달 17일까지 MZ 노조를 포함한 노사, 전문가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이어 보완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른바 공짜 야근을 야기하는 포괄임금제 오남용에 대한 근절 대책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으나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두고 의견을 수렴해 근로시간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적극 홍보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혁 기자 / 박동환 기자 / 김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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