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금융 상반기 평가]④ 세대교체 빛 발한 박종문號 삼성증권…장수 CEO 도전 과제는
삼성증권 세대교체가 성공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역대 대표이사 중 장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장석훈 전 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은 박종문 현 대표의 부담은 한시름 덜게 됐다. '자산관리 명가' 타이틀을 유지하며 상반기 순이익 기준으로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업계 2위에 오르면서다. 자기자본순이익률(ROE) 기준으로는 상위 10위권 회사들 가운데 키움증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역대 최장수 CEO를 지낸 것으로 꼽히는 장 전 대표와 배호원 전 대표의 경영 성적표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표가 이를 뛰어넘어 삼성증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지 관심이다.
ROE, 2000년 이후 역대 3번째…장수 CEO '데자뷰'
30일 <블로터>가 2000년 이후 삼성증권의 ROE를 전수 조사한 결과, 올해 상반기 실적을 토대로 연간 비율로 산출한 15.12%는 2007년의 17%, 2021년의 16.9%에 이어 3번째로 높다. 2007년 당시에는 배 전 대표가, 2021년 당시에는 장 전 대표가 삼성증권 수장을 맡고 있던 때다. 배 전 대표는 4년여를, 장 전 대표는 5년4개월여 동안 삼성증권을 이끌면서 최장수 CEO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ROE는 자기자본을 활용해 이익을 얼마나 거뒀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ROE가 경쟁사보다 높으면 업황 대비 수익성이 좋다는 의미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상위 10위권 증권사들의 ROE를 보면 키움증권의 18.9%에 이어 삼성증권이 2위였다. 순이익 규모가 가장 컸던 한투증권의 경우 12.9%로 뒤를 이었다. 이 밖에 ROE가 10%를 넘는 곳은 KB증권(11.8%)과 NH투자증권((10.3%) 정도에 불과했다. 자기자본 규모 자체는 6조9489억원으로 증권 업계 4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자본 효율화를 이뤄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취임한 박 대표를 중심으로 삼성증권이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 역대 최고 ROE 경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장수 CEO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을지 여부도 그의 임기 동안 관전 포인트다.
삼성증권 사업부문별로 보면 올해 상반기 법인세차감전 순이익 기준으로 위탁매매(브로커리지)가 전년 대비 12% 증가한 3716억원을 기록했다. 위탁매매는 삼성증권 순이익의 54.2%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사업부문이다. 올해 3월말 기준 수탁수수료 기준 시장점유율을 보면 미래에셋증권 12.2%에 이어 삼성증권이 10.6%로 2위를 차지할 만큼 리테일 사업이 큰 축을 차지한다.
특히 자산관리(WM) 부문에서도 지난달 기준 업계 최초로 30억원 이상 자산 고객 수가 4000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작년 말 대비 500명 가량 증가한 수치다. 고객당 평균 자산은 254억3000만원으로 집계됐다. 가문별 패밀리오피스 서비스 평균 예탁자산은 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취임 후 패밀리오피스 전담 지점인 SNI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정식으로 오픈한 바 있다. 패밀리오피스 사업은 가문의 자금을 자문·운용하는 서비스로, 삼성증권은 2010년 증권사 최초로 초고액자산가 전담 브랜드 'SNI(Success & Investment)'를 도입했었다.
위탁매매에 이어 순익의 17%를 차지하는 기업금융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4% 성장한 1167억원을 나타냈다. 특히 기업금융의 순이익 비중도 지난해 15.7%에서 올해 상반기 17%로 1.3%p 늘어났다. 삼성증권은 MBK파트너스의 지오영 인수 과정에서 6000억원의 인수금융을 담당했고, 휴젤 인수금융 차환(리파이낸싱) 과정에서는 5100억원을 담당하는 등 대형 딜을 따냈다. SK리츠·하나금융티아이 등 회사채 발행과 송도국제도시개발 유동화증권도 발행했다.
이 밖에 세일즈앤트레이닝(S&T) 부문과 선물중개업 부문, 해외영업 부문은 각각 32.5%, 8.9%, 26.8%씩 증가한 825억원, 474억원, 44억원이었다. 반면 자기매매 사업 부문은 35.8% 급감한 243억원을 기록했다. 기타 사업 부문은 흑자전환한 344억원이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자기매매 부문이 감소한 이유는 펀드와 출자금쪽 분배금 수익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해외영업 부문은 큰 변화가 없는 수준으로 평가되며, 기타 부문은 외환 손익이 개선되면서 흑자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의 자본적정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NCR)도 1628%를 기록했다. NCR 최소 규제비율은 100% 이상이며, 500%선 이상으로 관리하고 있으면 적정 수준으로 본다. 이익이나 자기자본이 늘면 NCR 수치는 개선된다. 올해 3월 말 전체 증권사 평균 NCR은 775%였다.
연간 결산 배당, 역대급 기대감
상반기 실적을 토대로 올해 연간 실적도 역대 최고였던 2021년 당시 실적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올해 상반기 거뒀던 5110억원의 순이익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 5474억원과 맞먹는다. 2021년 당시에는 1조원에 육박하는 965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삼성증권의 올해 연간 순이익은 7823억원으로 관측됐다. 1주당 배당금(DPS)은 3210원으로 전망됐다. 이를 토대로 현금배당총액은 2867억원, 배당성향은 36.7%로 추정된다. 배당성향은 벌어들인 순이익 대비 배당으로 사용한 현금 비율이다. 역대 최고 규모였던 2021년 당시에는 3393억원의 현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줬다.
역대급 실적을 기반으로 주주환원책도 규모 면에서 최고치로 단행하는 등의 신기록을 세웠던 장 전 대표가 최장수 CEO로 재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도 지목된다. 이를 이어받은 박 대표의 새로운 기록이 도출될 수 있을지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 전 대표는 2018년 유령주식 사태로 구성훈 전 대표가 책임을 물고 5개월 만에 물러나게 되면서 취임했는데, 경영 공백을 최소화해 안정적인 경영성과를 펼쳐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배 전 대표의 경우 2008년 차명계좌 관련 삼성 특검이 불거지며 사임하기 직전까지 2000년대 들어 최고 실적을 쌓고 마찬가지로 배당총액도 끌어올렸다. 장수 CEO의 면면을 보면 실적 성장세와 주주환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셈이다.
삼성그룹은 잔여 임기와 상관없이 매년마다 3분기 말까지의 경영 성적표를 토대로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다.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부터는 전자를 포함한 산업 계열사들의 인사가 단행된 뒤 순차적으로 금융 계열사 인사를 실시한다.
지난해 말 취임한 박 대표의 경우 올해 연말까지 특이사항이 없다면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2000년 이후 경영 공백 최소화를 위해 상무·전무급 인사들이 몇개월 정도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았던 전례를 제외하면 삼성증권의 역대 CEO들 평균 재임 기간은 3년이다.
가장 짧은 기간은 2018년 당시 구 전 대표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유석렬 전 대표도 2000년 초 취임했다가 1년4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3년을 채우지 못했던 황영기 전 대표는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 후보에 오르면서 자발적 사임에 따른 것이었다.
배당성향 양호해도…밸류업 모멘텀 '숙제'
삼성증권의 배당성향과 배당규모는 증권업종 평균 대비 양호한 편이나, 밸류업을 위한 과제는 업종 평균 대비 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상장된 상위 증권사들 중에서도 삼성증권은 기업가치 제고안에 대해 뚜렷한 계획을 밝히진 않고 있다. 삼성증권 측은 "밸류업 관련 계획은 공시 사항이어서 미리 알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데다가 일정 자체도 아직 미정인 상태"라고 전했다.
에프앤가이드가 증권업종 대비 삼성증권 밸류 지수를 평가한 결과, 구간을 -1.5~1.5로 지표를 평준화했을 때 삼성증권은 0.54를 기록했다. 증권업종 평균 0.62보다 낮은 수치다.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주가순이익비율(PER), 주가대비 현금흐름비율 등을 토대로 기업가치 대비 주가비율을 이용한 주가의 시장 평가를 나타낸 지표다.
반면 배당성은 증권업종 평균 1.07 대비 삼성증권이 1.69로 높게 나타났다. 과거 배당성향을 시계열로 분석한 결과다. 이는 단순히 배당만 늘리기 보다는 박 대표의 중장기 주주환원책 묘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에프앤가이드의 평가 항목 중 증권업종 평균 대비 낮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기업투자 부분 정도였다. 기업투자 부분에서 삼성증권은 -1.11을 기록한 반면 증권업종 평균은 -0.91이었다. 연간 광고비 비율과 자산대비 임금, 자산대비 설비자산 등을 토대로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전배승 LS증권 연구원은 "확대된 경상수익성 창출 역량과 주주환원 관점에서 상대적 매력도는 여전히 높게 유지될 전망"이라며 "예상 배당수익률이 7%를 상회하는 가운데 타 삼성계열 금융사와 마찬가지로 밸류업 공시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임초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