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깨는 다카이치…평화헌법 봉인 해제 ‘개헌 드라이브’
호주·동남아와 ‘안보 밀착’…‘힘에 의한 현상 변경’ 대중국 견제용
(시사저널=박대원 일본 통신원)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5월3일 도쿄에서는 헌법 개정 찬반 단체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4월12일 도쿄 프린스 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70주년 당대회 연설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자주독립의 권위 회복을 위해 일본인 손으로 이루는 헌법 개정은 당연한 과제"라며 헌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가운데, 여권의 개헌 움직임에 대한 찬반 여론이 명확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먼저 도쿄 린카이 광역 방재공원에서 열린 '2026 헌법대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약 5만 명이 참가했다. '스톱(STOP) 개헌-군비확장' 'NO WAR' 등 플래카드를 들고 모인 시민들은 "주권자는 우리들"이라 소리치며 개헌 발의 저지 및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 철회 등을 주장했다. 시민단체 헌법 공동센터 아키야마 마사오미 공동대표는 다카이치 내각에서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수정하고 사실상 무기 수출 제한을 해제한 것과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잘못을 반복하려 하고 있다"며 정부 움직임을 비판했다.
해당 집회에는 일본공산당, 사민당, 레이와신센구미 등 야당의 관계자도 참석했다. 입헌민주당 요시다 추지 참의원 헌법심사회 간부는 미국·이스라엘에 의한 이란 침공과 관련해 "일본이 전쟁 종결을 위한 역할을 담당할 것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며 "9조를 포함한 평화헌법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의 보물이다. 전쟁 반대, 개헌 반대의 목소리가 확산되도록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는 "전후 일본이 전쟁을 하지 못했던 것은 9조 덕분이다. '꽃밭'이라고 야유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9조는 전쟁을 저지하고 있다. 절대로 바꾸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위대 헌법에 명기 추진…'속도전' 다카이치
반면 다카이치는 헌법기념일을 맞아 보수시민단체 등이 개최한 헌법포럼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헌법은 국가의 기초이자 근간이다. 그 가치를 마모시키지 않기 위해 본래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각 당의 협력을 얻으면서 결단을 위한 논의를 추진하겠다"며 개헌 의욕을 재차 드러냈다. 해당 포럼에는 자민당 헌법개정실현본부의 신도 요시타카 사무총장, 일본유신회 헌법개정실현본부의 아베 게이시 사무국장,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가 참석해 개헌을 둘러싼 각 당의 입장을 설명했다. 현행 자민-유신 연합은 지난해 10월 연립정권 합의서에 자위대 계급을 국제 표준에 맞춰 수정하는 것을 기재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사실상의 '군대'로 간주되는 자위대를 '국방군'화하고 국내적으로도 그에 걸맞은 계급 체계를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국민의 절반 이상은 다카이치 내각의 개헌 드라이브에 찬성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3월9일부터 4월15일까지 전국 유권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헌법을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7%, 다카이치 재임 중에 국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를 추진하는 것을 기대한다는 응답자가 54%로 나타났다. 특히 헌법 9조 제2항(전력 보유 금지 및 교전권 부인과 관련된 내용)을 유지한 채로 자위대의 근거를 새롭게 기입하는 '자민당 안'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0%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같은 시기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다카이치 정권하에서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47%,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43%로 나타났다. 다만 개헌을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2%로 나타났다.
헌법기념일 직전 다카이치는 대표적 보수 매체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헌법은 국가의 형태를 제시하는 국가의 기본법"이라며 변화하는 국제 정세 및 일본 사회의 모습에 맞게 헌법을 고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합군 총사령부(GHQ)에 의한 점령기에 제정된 현행 헌법을 수정함으로써 전후 일본의 '자주성 회복'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다카이치의 개헌 드라이브는 '강한 일본' 만들기 움직임과도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가 4월21일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을 수정하고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의 수출 제한을 사실상 철폐한 후 베트남을 방문한 다카이치는 하노이 국립대학에서 주요 정책 연설을 했다. 해당 연설에서 그는 '함께, 강하고 부유하게'라는 슬로건을 제창하며 FOIP(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을 진화시켜 나가기 위한 중점 분야로 ①AI·데이터 시대의 경제 생태계 구축 ②관민 일체의 신(新)경제 영역 창출과 규칙의 공유 ③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안전보장 분야의 연대 확충을 제시했다.
일본, 호주와 방위협력 '밀착'…"호주는 준동맹국"
또 우방국 군대에 방위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부안전보장능력강화지원(OSA)의 대상국과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FOIP 구상 추진에서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하노이 방문 직후 다카이치는 호주를 방문해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호주를 '준동맹국'으로 호칭했다. 해상자위대의 모가미형 호위함 11척을 호주 해군에 공동개발 형태로 수출하기로 결정하는 등 호주와의 안보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일본 정부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필리핀과의 안보협력 강화도 모색하고 있다. 5월5일부터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하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길베르트 테오도로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방위장비 및 기술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일-필리핀 워킹그룹을 신설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필리핀 측이 일본 해상자위대의 아부쿠마형 중고 호위함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고이즈미 방위상은 "(중고 호위함의) 이전 시기 및 척수를 포함한 세부 조건에 대해서는 조만간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정력적으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매체들은 이란 전쟁으로 미국이 중동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이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안보를 포함한 안보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꾀하는 중국 정부에 대한 견제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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