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항구와 눈물을 생각하는 삼학도

권혁창 2025. 3.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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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목포 삼학도공원은 지금 인공섬이다. 3개의 섬 사이를 인공 물길이 흐른다.

섬이 세마리 학이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해서 삼학도가 됐다. 이름부터 비상한 이 공원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삼학도공원 전경 [사진/백승렬 기자]

K팝 원조를 찾다

K팝의 원조는 누구인지, 대중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가수가 하나 있다. '목포의 눈물'이 앞에 붙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이난영(1916∼1965)이다.

그를 일제강점기 트로트 가수로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1939∼1940년 그가 부른 '다방의 푸른 꿈', '항구의 붉은 소매', '바다의 꿈' 등은 스윙재즈, 스캣 송, 블루스 등이 가미된 곡들이다.

그룹 활동도 했는데, 이난영이 포함된 '저고리시스터즈'는 걸그룹의 효시격이다. 전통민요와 신민요에도 능했으며 뮤지컬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배우 기질도 다분했다. 폭넓은 음악적 양식을 소화한 만능 가수였다.

난영공원에서 바라본 유달산과 목포항 [사진/백승렬 기자]

프로듀서 이난영

이난영은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이 납북돼 사망한 뒤 자신의 딸들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라는 걸그룹을 키워낸다.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역할이다.

김시스터즈는 대성공이었다. 비틀스가 미국에 상륙할 때 교두보가 됐던 '에드 설리번쇼'에 22차례나 출연했다. 그 자신도 쇼에 출연해 김시스터즈와 함께 아리랑을 노래하기도 했다.

이난영은 1965년 서울 회현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 누구보다 화려했으나 이면엔 한 여성으로서 불행과 불운의 그림자를 오랜 시간 떨치지 못했다.

어려서 가난과 고생을 달고 살았고 오랜 부부 갈등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7남매를 데리고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다.

이난영의 딸, 김시스터즈의 리더 김숙자(가운데) 내한 공연 [연합뉴스 자료사진]

또 이후 사실혼 관계였던 동료 가수 남인수가 병사하자 나중에는 상실감에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난영을 말할 때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와 비교하기도 한다.

경기 파주에 있던 이난영의 묘는 2006년 목포 삼학도공원으로 옮겨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장이다. 이난영 묘역은 지금 난영공원이라 부른다. 삼학도공원 안에 난영공원이 있는 것이다.

인공섬이 된 삼학도

목포 삼학도는 '섬→육지→(인공)섬'의 운명을 밟아온 특이한 섬이다. 삼학도라 하면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3개의 섬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삼학도공원 안에 있는 이난영의 묘. 파주에 있던 묘를 수목장을 통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사진/백승렬 기자]

오래전 삼학도는 세종 21년(1439) 목포시 만호동에 설치된 수군 진영인 목포진(鎭)에서 병사들이 배를 타고 건너가 땔감을 구하던 섬이었다.

국유지이던 삼학도는 일제강점기 헐값에 일본인의 손에 넘어갔으나 해방 후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68년 간척사업으로 삼학도는 육지가 된다. 그리고 이곳에 항구가 생겨 배가 드나들고 세관도 들어섰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삼학도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공원 조성 사업이 진행된다. 들어섰던 부두 시설들이 하나씩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3개 섬 전체가 삼학도공원이 됐다. 폭 7m의 수로를 만들어 3개의 섬을 물 위로 띄웠다. 인공섬이 된 것이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 때 이곳 수로에도 바닷물이 들어갔다가 빠져나온다.

2006년 난영공원이 들어섰고, 2013년에는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과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삼학도 공원 조성사업으로 만든 수로와 다리 [사진/백승렬 기자]

바다에 빠진 세 마리 학

삼학도(三鶴島)라는 이름은 섬의 모습이 세 마리의 어린 학이 어머니 품을 떠나 영산강으로 날아가 앉은 형상이라는 데서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을에 사는 세 처녀가 유달산에서 수도 중인 한 청년을 흠모했는데 청년이 이를 거절하자 처녀들은 상사병으로 죽고 그 넋이 세 마리 학이 되어 유달산 주변을 날아다녔다. 청년이 수도를 마친 뒤 세 마리 학을 보고 활을 쏴서 맞췄더니 바다에 떨어져 그 자리에 세 개의 섬이 생겼다는 전설이다.

항구와 바다 풍경에 무신경한 사람이 아니라면 천천히 섬 전체를 돌아보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난영 묘 언덕에서부터 곳곳에 동백의 붉은 꽃잎이 자칫 단조롭게 보일 겨울 공원길을 애써 위로해준다.

낮게 깔린 잿빛 하늘 아래로 흐려서 더욱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유달산과 목포진이 흑백사진처럼 무뚝뚝하게 서 있다.

무장애길로 꾸며진 무한대 기호(∞) 모양의 수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편엔 소나무 숲과 동백꽃이, 다른 한편엔 바다와 항구, 정박한 배들이 불쑥불쑥 나타나 번갈아 눈을 즐겁게 한다.

삼학도 옛 사진과 동백꽃 [사진/백승렬 기자]

목포는 항구다

요트 계류장과 그 안에 있는 카페, 소삼학도 한편에 조성된 포장마차촌까지 둘러본 뒤 삼학도공원을 정면에서 보고 싶어 항구 건너편 목포진으로 향했다.

목포진에 오르니 목포항과 삼학도가 한눈에 시원스럽게 잡힌다.

전영자 목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목포는 수많은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는 길목 같은 곳이며 그래서 이난영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이 유명해진 것"이라면서 "목포에서 봤을 때 삼학도는 모든 섬을 대표하는 섬"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이난영의 노래 제목과 가사가 다시 보였다. 그의 대표곡 '목표의 눈물'도 왜 목포의 눈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봄이면 이곳에 온통 튤립이 만발한다고 한다. 훈풍에 튤립 사이를 걸으면 '사공의 뱃노래' 대신 튤립꽃 향기가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들지 않을까.

목포진 쪽에서 촬영한 삼학도와 목포항 전경 [사진/백승렬 기자]

※ 참고 자료

1. 장유정 '행(幸)과 불행(不幸)으로 보는 가수 이난영의 삶과 노래'(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33집, 2016)

2. 최유준 '탄생 100주년 가수 이난영의 삶과 사랑'(월간중앙, 2016)

3. 목포시 홈페이지(https://www.mokpo.go.kr)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fai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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