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야생, 호주 탬보린 국립공원

Tamborine Mountain

탬보린 마운틴의 트레일은 가벼운 차림으로 비교적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대부분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이로울 만큼 풍성한 나라다. 약 2만 5000종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야말로 추정일 뿐이다. 야생 식물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은 이름을 붙이거나 연구한 적조차 전혀 없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항상 새로운 식물이 등장한다. (중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숲속을 거닐어보라. 그러면 대여섯 종의 이름 없는 야생화, 쥐라기의 속씨식물 숲 그리고 10킬로그램짜리 금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 <대단한 호주 여행기> 중)

트레킹이 외롭지 않도록 종종 나타나 눈길과 정신을 빼앗는 도마뱀.

빌 브라이슨의 책을 닳도록 보던 시절, 이 문장은 나로 하여금 ‘오스트레일리아’를 꿈꾸게 했다. ‘학명도 부여받지 못한 미확인(?) 식물’,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생물이 많은 험난한 땅’ 같은 수식어는 알량한 모험심마저 자극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태즈메이니아, 카리지니 국립공원, 그레이트배리어리프 같은 곳을 종횡무진한 까닭이다. 퀸즐랜드 취재를 준비하며 그걸 경험할 수 있는 곤드와나 열대우림(Gondwana Rainforests)을 벼르고 별렀다. 지구 면적의 약 1/5을 차지했던 태고의 초대륙. 1억 8천만 년 전의 생태계,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토착 동식물의 땅. 퀸즐랜드의 자랑, 시닉 림(Scenic Rim)은 이 열대우림을 품는 지대다. 시닉 림 안에 들어선 6개의 국립공원 중 가고 싶었던 곳은 래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nal Park)이었지만 이상기후로 여름 장마가 심해 길이 막혔다.

지상에서 300m 높이에 설치된 스카이워크에선 야자수의 붉은 열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퀸즐랜드 관광청에서 제안한 대안은 탬보린 국립공원(Tamborine National Park). 브리즈번 시내에서 한 시간 안팎이면 닿는 산이다. 160km 거리의 장대하고 거친 트레일, 야생 포섬, 왈라비와 만날 수 있는 래밍턴을 기대했던 내게 거의 모든 트레일 레벨이 ‘easy’인 탬보린은 동네 공원처럼 느껴졌다. 이런 데서 과연 고대 원시림의 영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까? 주차장에서 400m가량만 걸어가면 닿는 커티스 폴스 트레일(Curtis Falls Trail) 초입에서 건방진 의심을 참회했다. 숨통을 끊어버릴 기세로, 다른 나무의 몸통을 제 뿌리로 그악스럽게 옥죄는 자이언트 스트랭글러 픽(Giant Strangler Fig)과 유칼립투스 나무 군락은 압도적이었다. 이 둘은 수백만 년 전부터 호주의 숲을 지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온 천적.

숲의 중·고층부를 탐색할 수 있는 캐노피가 설치된 탬보린 레인포레스트 스카이워크.

나무의 영토 전쟁이 유칼립투스의 승으로 끝났다는 사실은 “고대 호주는 지금과 달리 완전한 열대우림지대였다”는 안내판 속 문구와 눈앞의 풍경이 알려준다. 창을 들고 대치 중인 군사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울울창창한 고목들. 누군가 연출이라도 한 것처럼 도처에서 예고도 없이 거대한 레이스 모니터(Lace Monitor) 도마뱀이 등장하고, 붉은 대가리와 노란 목, 검은 몸통을 가진 호주숲칠면조(Scrub Turkey)가 동네 닭처럼 트레일을 한가롭게 누비며 산책자들의 심심함을 달래준다. 참, 당신이 만약 이 숲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었다면 그 소리가 진짜 차의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다른 새들의 울음소리뿐 아니라 개 짖는 소리, 사람 목소리까지 흉내 낸다는 기이한 새, 알버트 금조(Albert’s Lyrebird)가 떠드는 소리일 수도 있다.

탬보린 마운틴에선 글램핑, 모터 캠핑 등 다양한 방식의 캠핑이 가능하다.

나는 지금 고작 탬보린 마운틴의 ‘쉬운 트레일’을 15분 정도 걷고 150여 개의 단어를 쏟아내는 중이다. 현무암 절벽 위로 격렬하게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 오리너구리와 포섬, 까마귀 둥지와 사슴뿔 고사리 같은 건 앞으로 남은 15분의 여정 위에 부려져 있다. 이것이 바로 퀸즐랜더가 누리는 축복이다. 차에서 내려 30여 분만 걸어도 지구과학자라도 된 양 호들갑을 떨 수 있는 고대 원시림을 지척에 둔 삶 말이다.

탬보린 마운틴에선 글램핑, 모터 캠핑 등 다양한 방식의 캠핑이 가능하다.

탬보린 마운틴에 길게 머물고 싶다면

캐노피 위에서 숲 조망하기

탬보린 레인포레스트 스카이워크 (Tamborine Rainforest Skywalk)는 숲의 중층부에서 나무의 정수리를 조망하거나 열매와 마주하고 꽃 속 꿀을 따 먹는 나비와 새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엿볼 수 있는 캐노피가 설치된 산책로. 높이 300m, 거리 1.5km로 누구나 쉽게 열대우림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주소 333 Geissmann Drive, Mt Tamborine, QLD
문의 skywalktamborine.com


글램핑으로 하룻밤 나기

커티스 트레일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한 선더버드 파크(Thunderbird Park) 안에 들어선 시더 크릭 롯지(Cedar Creek Lodges)는 근사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캐빈과 텐트, 레스토랑과 라운지 바까지 갖춘 숙소다. 두 타입의 객실 모두 숲을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전망 데크를 갖췄다. 야외 수영장과 샤워실, 장작을 태울 수 있는 화로대 등 럭셔리한 캠핑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다.

주소 Tamborine Mountain Rd &, Cedar Creek Falls Rd, Tamborine Mountain QLD
문의 www.cedarcreeklodges.com.au


마을 구경하기

탬보린 마운틴을 뒷산으로 품고 있는 동네를 구경하고 싶다면 갤러리 워크로 향하자. 주변 지역에서 사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들을 비롯해 주얼리, 패션, 라이프스타일 숍 70여 곳이 늘어서있다. 로컬 양조장인 탬보린 마운틴 디스틸러리(Tamborine Mountain Distillery), 인센스, 크리스털 등을 파는 인스파이어 미 내추럴리(Inspire Me Naturally), 몽키 트리 바 & 레스토랑(The Monkey Tree Bar & Restaurant)이 인기 좋은 스폿.

탬보린 레인포레스트 스카이워크엔 숲의 다양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두 곳의 전망대가 있다.
커티스 폴스트레일의 종착지, 커티스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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