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의 전설 한번쯤 들어본 적 있으실 겁니다. 도플갱어를 마주치면 머지않아 그에게 생명을 빼앗긴다는 것 여기서 도플갱어는 표현하는 곳마다 약간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복제한 듯 자기 자신과 똑같이 생긴 대상을 일컫는 말인데요. 오늘 소개할 이 모델을 보고 바로 그 도플갱어의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수입차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뛰어난 가성비를 앞세워 북미만큼 치열한 국내 중형차 시장에서 선방했지만. 회사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면서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된 비운의 모델 이번 시간에는 닛산의 대표 중형세단 알티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알티마는 1993년 1세대 모델을 시작으로 현재 6세대에 이르고 있는 닛산의 대표 중형세단입니다. 앞서 다뤘던 현대 소나타가 이 알티마보다 브랜드 역사가 깊다는 게 세상 놀라운데 뿌리를 찾아보면 역사가 짧은 건 결코 아니죠.
오래전부터 일본 브랜드들은 내수시장과는 별개로 수출시장에 따른 전략 모델을 따로 준비하곤 했는데 북미 시장을 휘어잡은 이웃집 캠리, 어코드와 마찬가지로 이 알티마 역시 세단 블루버드를 북미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손 본 현지 전략형 모델이었습니다.
동급 경쟁차에 비해 십 수년은 늦은 후발 주제로 시작했지만, 브랜드를 막론하고 안정적인 품질과 가성비로 평균 이상의 신뢰도가 깔려 있었던 일본 차라는 점 모든 면에서 무난한 육각형 중형차를 표방한 캠리와는 달리 일명 기술의 닛산다운 다양한 첨단 기술과 스포츠카 DNA를 반영한 스포티한 주행 감각을 무기로 호평받았습니다.
매년 판매량이 무서울 정도로 성장해 북미 중형차 시장에서 꽤나 의미 있는 점유율을 달성했고 2002년 3세대 모델이 와서는 수많은 경쟁차를 제치고 북미 올해의 차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한편 2005년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를 먼저 선보여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했던 한국 닛산은 자국 브랜드인 혼다의 국내 성과에 자극을 받아 대중 브랜드 닛산 역시 선보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참고로 닛산뿐만 아니라 미쓰비시, 스바루 등의 일본 브랜드들이 비슷한 시기 국내의 정식으로 소개됐었죠.
다만, 아시다시피 같은 그룹 계열사이자 닛산의 모델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는 르노삼성과의 판매 간섭이 우려됐지만 다행히 르노 삼성은 후속 계획을 이전의 닛산이 아닌 르노 중심으로 개편, 닛산과의 연관성을 일부 덜어냈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닛산은 SUV라인업 '로그'와 '무라노'를 먼저 투입한데 이어 이듬해 간판 모델 알티마까지 연이어 선보였죠.
2009년 국내 시장에 정식으로 선보여진 알티마는 2006년 출시된 4세대 모델이었습니다. 첫 인상이 꽤나 친숙했는데 르노삼성 SM5, SM7의 베이스 모델인 신형 티아나와 사실상 형제 모델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당시 전기형 SM5 테일램프를 티아나의 LED 램프로 바꾸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로고까지 닛산 로고로 교체하는 일부 차량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산 닛산 차와 미국산 닛산 차가 같이 굴러다니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날렵한 사이드미러는 거울 면적까지는 날렵했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많이 생겼는데 이것 마저 닮아있었죠.
그래도 스포츠카 350G가 떠오르는 슬림한 헤드램프와 볼륨감이 돋보이는 앞뒤 펜더 독특한 클리어 타입 리어램프 디자인으로 기존 SM형제와는 다른 알티마만의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스포티한 분위기가 돋보였습니다. 또 알티마가 출시될 당시에는 SM5와 SM7이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티아나의 모습을 조금은 걷어냈죠. 실내는 확실히 차별화했습니다.
중앙에 자리한 3개의 원형 송풍구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테리어는 닛산 특유의 심플함과 안정감이 돋보이는 구성으로 고급감과 포근함을 주제로 했던 형제차 티아나의 일명 거실 인테리어와는 달리 어두운 플라스틱과 우레탄, 금속 내장재로 꾸며 좀 더 젊고 스포티한 감각이 두드러졌어요.
오묘한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에 스포츠카에서는 볼 법한 펀칭이 더해진 것과 속도계를 가운데 배치한 계기판도 이 차의 성격을 드러내는 디테일이었습니다. 계기판 지붕 아래 자리한 스타트 버튼도 독특했죠.
이 밖에 대중 브랜드 중형 세단으로서 갖춰야 할 편의성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탑승객을 향해 툭 튀어나온 센터페시아로 각종 버튼을 조작하기 편리했고 9개 스피커의 보스 사운드 시스템도 나름 준수한 해상력을 제공했습니다. 좌우 독립식 공조장치는 르노삼성 QM5와 비슷한 다이얼 안쪽에 숫자를 표기에 직관성을 높였죠. 열선 시트 스위치도 굉장히 익숙하네요. 사이즈에 따라 최대 3개까지 꽂아 넣을 수 있는 컵홀더도 제공했습니다.
뒷좌석은 넉넉한 공간에 전용 에어벤트와 암레스트를 갖춰 패밀리카로 활용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북미형 모델답게 국산 동급 세단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6대4 폴딩을 지원, 긴 짐을 수납하기에 용이했지만 트렁크 안쪽에 경사로가 있어 널찍한 공간을 손해 보기도 했습니다. 폴딩 시 이음새가 평평해지는 건 좋았지만 시트 접고 물건 실을 일이 사실 얼마나 되겠어요.
이 언덕 때문에 물건이 비스듬하게 놓이거나 애매하게 각이 안 나오는 등 괜한 불편을 유발하는 구조였어요. 또 실내 전반이 심플함을 넘어 아예 밋밋해 보이는 것 동급 모델들과 달리 내비게이션 같은 편의장비가 빠져 있는 점도 중형세단이라는 차급을 떠올리면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파워트레인은 V6 VQ 3 .5L를 주력으로 4기통 2 .5L 두가지 가솔린 엔진에 가상의 6단 수동 모드를 지원하는 무단 변속기를 매칭했습니다. 닛산이 자랑하는 VQ 엔진을 품은 SM7과 배기량 겹치는 라인업이었지만 다 같은 VQ가 아니죠. 이쪽은 수차례 개량된 엔진이 탑재 출력과 토크가 훨씬 뛰어났고 CVT가 맞물리면서 넉넉한 파워에도 불구하고 연비까지 준수했죠.
2 .5L 모델의 성능은 비슷했지만 알티마는 연비와 토크가 좋은 대신 4기통 SM7은 6기통으로 성격이 좀 달랐기 때문에 어느 쪽이 명백히 우위라고 하기에는 힘들었어요.
앞서 몇몇 국산 모델을 거치며 국내 소비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CVT가 장착돼 소비자들을 긴장하게 했지만 이미 닛산의 수많은 글로벌 모델에 탑재되어 안정적인 품질을 검증받은 미션이었기에 다행히 말썽은 없었어요. 변속 충격 하나 없이 고 RPM을 유지하며 쭉쭉 올라가는 속도계가 독특했죠. 터보렉 따위는 없는 즉각적인 엔진의 반응과 부드럽게 전개되는 출력은 고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이 주는 분명한 매력입니다.
법에서 허용하는 최고 속도가 기껏해야 110KM/h인 우리나라 도로에서는 시각에 따라 낭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없는 힘을 쥐어짜내는 것과 넘치는 힘으로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분명 다르죠 우리가 고출력차를 사랑하는 이유에요.
평소에는 안락한 패밀리카로 혼자 탈 때는 경쾌한 가속감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었습니다. 편안함을 중시하는 북미시장을 타겟으로 한 만큼 유럽차의 쫀득한 감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의외로 핸들링이 날렵하다는 평가도 받았죠. 출시 1년 만인 2010년에는 디자인과 편의장비를 일부 수정한 뉴 알티마가 출시됐습니다. 이미 출시 당시부터 페이스리프트가 임박했던 모델이었기 때문에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어요.
더욱 날렵하게 빚은 그릴과 헤드램프, 안개 등을 분리한 범퍼로 보다 스포티해진 전면부는 인피니티의 중형 세단 G와 유사한 분위기였습니다. 측면과 후면의 디자인은 거의 그대로였지만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휠과 유려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으로 여전히 동급에서 가장 잘 달릴 것 같은 생김새였어요. 실내 역시 변화는 크지 않았는데요. 직전 모델과 디자인이 동일했고 대신 소재의 질감과 몇몇 편의장비를 업데이트해 한결 차분해졌습니다.
차를 고리타분해 보이게 만들었던 카세트 데크가 빠지고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수용해 공식 내비게이션을 도입했는데... 아주 작은 터치스크린에 지니 내비를 끼워 넣었어요. 쌍용차의 멀티AV 시스템도 화면 사이즈가 4 .3인치였는요.
다행히 2011년 연식 변경 모델에서는 옹졸했던 센터 모니터의 크기를 7인치로 키우는 등 편의 사양을 손봐 상품성을 개선했습니다. 여전히 애프터마켓 제품을 써 품질이 좋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순종에 가깝게 꾸민 점은 좋았어요. 파워트레인도 직전 모델의 구성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3 .5L 모델의 토크가 소폭 낮아졌지만 대신 실용 구간에서의 효율을 높여 연비를 리터당 10KM 위로 끌어올렸고 여전히 국산 중형 세단보다 뛰어난 주행 감각을 제공하는 것도 분명한 세일즈 포인트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작 대비 전 트림 300만원가량 저렴해지면서 동급 경쟁차 대비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습니다. 4세대 알티마는 출시 첫 해 594대 이듬해 뉴 알티마는 가격 조정의 힘으로 출시 첫 달 만에 183대가 판매되며 순조로운 출발을 하나싶었지만, 이후 제자리 걸음을 지속했습니다. 닛산는 SM세단과 완벽히 차별화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이건 그들의 바람이었을 뿐 소비자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국내 소비자들의 눈에는 그저 빠르고 비싼 SM5 정도로 인식됐는데 르노삼성이 만드는 티아나가 이미 수년 전부터 알티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를 고르는 관점이 상대적으로 투박한 북미 고객을 위해 만든 알티마보다는 당연하게도 자국시장인 일본과 동아시아 고객을 중심으로 만든 티아나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죠.
컨셉도 애매했는데 중형차의 편안함과 안락함은 이 급의 차들이라면 그저 기본이었고 고급스러움을 원했던 소비자들은 가격이 겹치는 국산 준대형 차나 어코드를 스포티한 주행 감각을 원했던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G25세단을 선택했죠.
다행히 어코드가 가격을 올리고 알티마는 반대로 가격을 내리면서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의 우위를 점하게 됐지만 하필이면 이때 도요타의 국내 진출과 함께 캠리가 가세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관심 마저 앗아가 버렸습니다. 여기에 이 급의 수입차들은 가성비, 메인터너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로 활용하는 국산 중형차에 비해 딱히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같은 강력한 한방이 있지 않은 이상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도 문제였죠.
그 사이 수입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2010년 이전처럼 '외제차'다 이러면 '와' 하는 시기도 아니었으니까 업친 데 덮친 격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부 차량 및 부품 공급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 등 회사 차원에서 위기가 왔지만 오히려 라인업을 확장하면서 견뎠고 판매량이 천천히 회복되면서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덕분에 나름의 존재감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죠. 국산차의 가격이 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동급 수입차를 고려하는 분들이 늘어났고 VQ 엔진의 경쾌한 주행 감각에 매료되어 이후 인피니티로 넘어가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여담으로 SM5와는 겉모습뿐 아니라 내용물도 당연히 비슷했기 때문에 몇몇 부품은 르노 삼성 차량과 호환이 가능했고 소모품 교체를 비롯한 간단한 경정비는 삼성차를 다루는 정비소에서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소소한 장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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