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토론 끝나자 ○○○ 주식이…위기의 K-산업?

김지숙 2024. 9.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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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지 시간으로 지난 10일,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이 열렸습니다. 토론이 끝난 뒤 해리스 후보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에 이어, 많은 주목을 받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차전지 관련한 주식 종목들의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지만, 어떤 지도자가 어떤 경제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세계 많은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라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너무 많이 투자한 한국?

최근 산업계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늘 빠지지 않는 게 불확실성, 대외 리스크, 불안 요인… 이런 말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에 기여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국 대선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대선, 그리고 아직 아무도 모르는 그 결과가 우리 산업계에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기업이 진행했던 미국에의 대규모 투자와 관련 있습니다. 우리 기업은 90년대 초부터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고 투자를 해오긴 했지만, 바이든 정부 들어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을 내걸기 시작하면서 그 액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일부는 '과투자'라며 우려할 정도였죠.

이를 집계해 보니, 대략 최근 10년 동안 완성차와 배터리, 배터리 소재 등 10여 개 기업의 대미국 투자액이 모두 1,155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53조 원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단기간에,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11월, 백악관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2년 동안 한국 기업의 투자 규모가 최소 555억 달러, 약 71조 8천억 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두 번째 원인은 이태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글로벌리스크 팀장이 짚었습니다.

"불확실성의 본질은 두 후보 간의 경제 정책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권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방향성이 비슷하다면 지금까지의 대규모 투자 결정이 불안 요인이 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두 후보와 진영 사이 드러나는 차이점이 극과 극이라, 도저히 한 쪽으로 전략을 수립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 가장 갈리는 건 '친환경·에너지'…배터리 산업의 운명은?

대표적인 게 친환경과 에너지 부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한국 기업들의 대미국 투자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 시행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친환경차, 그러니까 전기차와 거기 들어가는 배터리 제조 업체에 보조금을 준다는 게 골자입니다.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차와 배터리 업체들이 생산 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투자가 이뤄졌죠.

대선 결과에 따라 정책 기조는 그대로 갈 수도, 바뀔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일단, 민주당은 고전적으로 기후변화와 친환경 의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 청정에너지 생산 확대 등을 정강에 언급한 데다가, IRA 등 바이든 정부 정책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할 거라는 전망에 따라 해리슨 당선 시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변화는 공화당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입니다. 공화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 의제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오히려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재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을 대통령 선거 정강에 담았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는 유세 때마다 공공연히 '전기차 의무 조치 무효화', 그러니까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었던 전기차 판매 비율 확대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엔 악재인 것이죠.

이번 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자, 배터리 관련 주식 가격이 상승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도만 놓고 본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고 해도 자동차 업계는 배터리 업계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재 전기차에 대한 수요 둔화 추세에 따라, 오히려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가 증가하고 있어 생산 계획 등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토론회에서 두 사람 모두 기후 변화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이를 '제조업 일자리'와 연관 지었던 점을 고려해도 그렇습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전략 변경에 따라) 다소간 기업들의 비용을 초래하긴 하겠지만, 자동차 쪽은 배터리보단 영향을 덜 받을 것 같다"고 전망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가 그렇죠. 현대차는 지난달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하이브리드 차종을 늘리고, 판매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미·중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한국…"반도체도 영향"

반면 두 후보가 모두 같은 입장을 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중국에 대한 입장입니다.

조성대 실장은 "보통 사람들은 '동상이몽'이라고 하는데, 미국의 중국에 대한 시각은 '동몽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견제라는 큰 틀에선 같은데 방법론에서만 차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두 후보, 그리고 기존 정책을 고려하면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정부 모두 최근 대중국 견제 정책을 펼친 바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엔 대중국 관세를 올리며 이른바 '무역 전쟁'을 벌이기도 했죠. 이번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기'는 관세입니다. 정강에는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지만,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지위를 철회하고 필수 재화, 많은 공산품의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된다면 현재 바이든 정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책, 특히 첨단기술이나 안보와 연관된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등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지난 5일에도 미국 상무부는 양자컴퓨터와 반도체 제조 등 24개 품목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양측 모두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건 우리나라로선 무조건 반길 일은 아닙니다. 특히 견제의 '도구'가 무엇이 됐든, 여기에 우리나라도 동참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수출 주력 상품이면서 중국 수출이 많은 반도체에의 영향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태규 실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중국이 AI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 첨단 반도체가 아닌 레거시(범용) 반도체에 대해서도 수출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간접적인 의사를 계속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현지 시간으로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컨퍼런스에서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한국의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대해, '중국이 아닌 미국과 미국의 동맹에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이 실장은 "중국으로의 수출 성적에 따라 반도체의 전체 수출 실적이 왔다 갔다 할 정도"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지난달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반도체 품목 수출은 약 118억 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9억 달러가량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산업 전체가 대선 결과에 따라 비관적이라거나,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이같은 중국에 대한 견제는 미국이 국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 산업이 일부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는 산업도 있습니다.

예컨대 조선과 전력 산업이 그렇습니다. 특히, 전력 산업과 관련해선 인공지능 산업 성장에 따라 데이터센터 증설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라,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 확충이 필수인데 이미 중국산 변압기 등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있습니다.

조성대 실장은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도 IRA를 고치고 남는 재정을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했다"며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나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중국산 제품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서 한국 제품과 과당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 실장은 강조했습니다.

■ 속도 조절 외엔 마땅한 대응책 없어…"미 정치권 대응 비용 10% 이상 상승"

어느 정도 예견된 불확실성에,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오덕근 JR에너지솔루션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우리 같은 사업 모델이 주목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 대표의 업체는 배터리의 핵심 부품, 전극만을 전문으로 만들어 배터리 업체에 납품하는, 이른바 '배터리 파운드리'입니다. 각 배터리 회사의 규격 등에 맞는 전극을 따로 만들어서 납품하는 겁니다.

오 대표는 "많은 업체들이 투자의 효율성을 중시하고, 위험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며 "그중 하나가 내재화를 통해 모든 걸 생산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파운드리 업체를 통해 협업하는 형태"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사업을 시작했던 지난 2월보다 최근 고객사가 세 배가량 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존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기보다 그런 결정을 미루고, 외주 등을 통해서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배터리 기업 일부는 미국 공장 가동 시점을 연기하거나, 아예 건설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대기업도 마찬가지라, 최근 속속 미국 공장 가동 시점이 미뤄지고 있는데 이런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게 주된 시각입니다.

미국 '정계발' 불확실성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 기업들의 대응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전 세계 기업들의 미국 정계 대응 비용을 조사·분석하는 미국의 오픈 시크릿의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4대 그룹의 미 정계 대응 비용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올해 상반기, 모두 10% 이상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그 어려움은 커질 거란 게 조성대 실장의 분석입니다. 조 실장은 "많은 기업이 정보 수집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은 역량이나 재원이 뒷받침되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취약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된 정보를 적시에 전달하고 대응 방법을 찾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이태규 팀장도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정부와 정부 사이의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과거엔 그래도 '룰'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룰보다는 그때그때 국가 간의 힘의 역학 관계나 협력 관계에 따라 세계 경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만의 힘으론 되지 않습니다. 정부 간의 협조·협력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긴밀한 대화를 통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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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기자 (vox@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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