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당도' 리뷰: 달콤함의 이면에 감춰진 떫은 생존의 맛

권용재 감독의 데뷔작 '고당도'는 제목이 주는 직관적인 달콤함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한다.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둔 간호사 선영(강말금 분)과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무능한 남동생 일회(봉태규 분). 이들 남매가 마주한 현실은 당도는커녕 떫디떫은 떫은감의 그것과 닮아 있다. 영화는 '아버지의 가짜 장례식'이라는 발칙하고도 불경한 소재를 통해 현대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냉소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블랙 코미디의 외피를 입은 비극적 리얼리즘

'고당도'의 미덕은 소재의 자극성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아들의 의대 등록금을 위해 살아있는 아버지의 부조금을 가로채려는 일회의 파렴치함은 관객의 분노를 자아내기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서글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권용재 감독은 장례식장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활용해 한국 사회의 '부조금 문화'와 '가족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특히 강말금과 봉태규의 연기 앙상블은 이 영화의 실질적인 동력이다. 강말금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K-장녀의 피로감을 건조한 눈빛 속에 담아내며 극의 중심을 잡는다. 반면 봉태규는 특유의 능청스러움 속에 숨겨진 절박함을 변주하며, 자칫 혐오스러울 수 있는 '빌런' 캐릭터에 인간적인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숙성의 시간을 견뎌낸 '고진감래'의 미학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감'은 이들 가족의 메타포다. 떫은맛을 빼고 단맛을 올리기 위해 침수시키고 말리는 과정처럼, 선영과 일회 남매는 가짜 장례식이라는 극단적인 소동극을 거치며 비로소 서로의 결핍을 직시한다. 불행의 밑바닥에서 서로를 증오하던 이들이 결국 '돈'이 아닌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은 억지스러운 감동이 아닌, 짙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극장과 OTT의 극명한 온도 차: '5,000명'의 외면에서 '2위'의 반전으로

'고당도'는 개봉 당시 극장가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다. 누적 관객 수 5,000명 남짓이라는 성적표는 이 수작이 마주한 가혹한 현실이었다. 대형 상업 영화의 틈바구니에서 독립 영화 톤의 블랙 코미디가 설 자리는 좁았다.
그러나 넷플릭스 공개와 동시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공개 단 하루 만에 대한민국 TOP 10 영화 2위에 이름을 올리며 화려하게 역주행에 성공한 것이다. 이는 극장 관객수가 영화의 절대적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숏폼과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친 대중들이 오히려 밀도 높은 서사와 배우들의 정교한 연기에 목말라 있었음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떫은 인생을 견디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영화 '고당도'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화려한 미장센은 없으나,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정직한 카메라가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이 영화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비록 시작은 떫었을지언정,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느껴지는 그 미묘한 단맛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인생의 맛일지도 모른다. 그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맛에 관객의 성향에 따라 달거나 씁쓸하게 느낄수도 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부조금으로 피워낸, 가장 처절하고도 달콤한 가족의 탄생"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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